개와 고양이와 신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이 재치 있는 문장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상상력 유발 요소가 들어있다.
첫째,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화의 상상력이 있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적인 감정으로 자신에게 제공되는 식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 이야기를 이루는 상상력의 근본적인 부분이다.
둘째, 그런 상상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부분,‘ 관찰에 의한 상상력’이 있다. 사료 봉지를 부스럭거리거나 사료를 준비하는 장소로 가기만 해도 벌써부터 꼬리를 흔들며 안달을 하는 개들의 습성, 그리고 주인이 자신의 그릇에 내려놓거나 주인이 음식을 자신에게 내밀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고양이의 습성을 유심히 관찰하며 만들어낸 상상력인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 <상상력 사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자면서 꾸는 꿈은 대부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지만 사실은 대부분 본인이 겪은 혹은 목격한, 때로는 대리 체험한 장면들로 구성된다. 평생 화산 폭발을 하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없는데 그것을 꿈으로 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꾸는 사람은‘ 화산이 때로 폭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화면이나 텍스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화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고 또한 그것이 폭발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이들이 화산이 폭발하는 꿈을 꿀 수는 없다는 얘기다.
상상력의 출발은 꿈과 같다.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상의 출발은‘ 목격’이다. 그리고 그 발전은 관찰이다.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J.M. 배리가 쓴 <피터 팬>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소년 피터, 요정 팅커벨 등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전까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본 적 없었던 J.M. 배리가 동네 미망인의 아들들을 만나고, 특히 그 중에서 막내인 피터와 가깝게 지내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어린이 피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노는지를 관찰해 소설 속의 피터를 만들어냈다. 이전까지는 어른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만 만드는 극작가였던 배리가 <피터 팬>을 상상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소년 피터를 만났고 그 아이와 우정을 쌓으며 관찰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너무 깊이 알지 않아도 된다
‘실제와 다를 것을 두려워하는’ 강박관념은 상상력 역시 결박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스타워즈>시리즈에는 물리학 법칙으로부터 몇 광년 떨어져 있는 수많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조지 루카스가 물리학적 원칙을 먼저 생각했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르익고, 펼치고 싶은 상상의 나래가 이미 필요한 만큼 펼쳐져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직 그 분야의 전문가와 인터뷰를 하거나 자문을 구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완전히 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낸 실제 사실이나 전문적 지식들은 오히려 상상력을 펼치는 데 있어서 제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재를 통해 구성해야 할 다큐멘터리성 콘텐츠가 아니라면 전문분야 자문은 창작의 마지막 단계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J.M. 배리 작 <피터팬> 조지 루카스 감독 <스타워즈`III>
'그의 자리'부터 바꿔보자
어느 날 인간이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출력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정말 놀라운 일일까? 그것은 단지 인간이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뿐이다. 카메라가 있다면 굳이 필요 없는 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눈으로 본 것을 자유롭게 변형하고 또한 편집해 출력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인간은 이미 그런 능력은 갖추고 있다. 관찰한 것을 새롭게 변형하고 편집하는 능력은 결국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베르베르가 의인화를 했던 것처럼 사물을 새로운 자리에 배치하고 다른 자격을 부여하는 기초적인 상상력과 사물에 대한 깊은 관찰은 결국 뛰어난 상상력으로 무장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조원희
영화감독 | owen.joe@gmail.com
1994년부터 크고 작은 지면을 통해 대중문화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왔고, 2010년 영화 <죽이고 싶은>을 감독하면서 영화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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