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몫
신 숙 자
CD / sjshina@hsad.co.kr
이세돌 바둑기사와 알파고의 대결.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제의 대결이었습니다. 알파고가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수를 두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인공지능을 실제로 목격하니, 인간이 설 자리를 뺏길 수 있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죠. 앞으로 로봇이 대체할 직업 리스트가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무인운전이 가능해지면서 운전기사도 없어질 거라 하고, 동시통역 및 번역가·재봉사·텔레마케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기존 일자리 710만 개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인간의 몫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죠.
하지만 많은 기업은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기술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첨단 기술이 등장하는 광고엔 그래서‘ 인간다움’이 더욱 부각되곤 하지요. 제품보다 기업의 철학, 기업의 생각이 메시지화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함께하기보다는 생각을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여성들의 자리를 찾는 일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날을 기념해 여성의 자리를 찾아주고자 했습니다.
먼저 여자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발명가가 있는지 묻습니다. 아이들은 줄줄이 이름을 댑니다. 아인슈타인·벤자민 프랭클린·테슬라·레오나르도 다빈치…. 시대도 다르고 분야도 다르지만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입니다. 또한 중요한 건 이들이 모두 남자라는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엔 기억나는‘ 여자 발명가’가 있는지 묻습니다. 발명가 이름을 줄줄 외던 아이들이 이번엔 말문이 막힙니다. 누구도 쉽게 여자 발명가를 떠올리지 못하죠.
“남자가 모든 것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 사용되고 있는 수많은 대중적인 기술들이 사실은 여자 발명가들이 만들었다고 얘기합니다. 회전톱·자동차 와이퍼·백내장 레이저 수술·최초 컴퓨터 알고리즘·해저 망원경·방탄소재·자동차 브레이크 패드·주요 의약품들…… 사람의 건강부터 실생활에 꼭 필요한 기술들까지. 남성적인 분야로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여성들이 만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위성추진장치를 만든 이본 브릴(Yvonne Brill), 회전톱을 만든 태버사 배빗(Tabitha Babbitt), 컴퓨터 알고리즘을 만든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삶의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들을 소개하며 여성들이 만든 모든 것에 감사하자는 광고를 전합니다.
영국의 교육자선단체 ‘Inspiring the Future’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초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5세부터 7세까지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처음엔‘ 소방관’을 그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그리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의사’를 그리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아이들은 총 66장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은 5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입니다. 아이들 머릿속에 의사와 조종사와 소방관은 모두 남성인 거죠. 선생님은 실제 소방관과 의사·조종사를 교실로 초대했습니다. 교실로 들어온 그들이 헬멧을 벗자 아이들 생각과는 달리 모두 여성입니다. 아이들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헬멧을 써보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꿔갑니다.
5세에서 7세는 아이들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자선단체는 남녀평등을 위해 인식을 바꾸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별을 넘어선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고자 하는 거죠.
건강을 지키는 일
방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생리현상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 재미있게 정의를 한 광고가 있습니다.
노부부가 잠든 침대,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누우면서 방귀를 뀝니다. 할아버지가 놀라서 깰 정도로 소리는 강력합니다. 광고는 이 방귀를‘ 용광로’라 정의합니다. 다음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합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깊게 숨을 내뱉으라고 합니다. 환자가 깊게 숨을 내뱉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방귀가 나옵니다. 이 방귀는 요란하게 울리기에‘ 천둥소리’라고 이름붙입니다. 경건히 기도를 드리던 수녀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갑자기 새어나온 방귀소리를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을 응용해 ‘예리코의 나팔소리’라고 합니다. 발레리나에겐‘ 스페인의 바람’, 기침을 하면서 방귀를 뀐 사람에겐‘ 은폐공작’, 버스 정류장에 서서 길게 방귀를 뀌는 사람에겐‘ 긴 작별인사’. 소리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각각의 방귀에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유머로 끝나진 않습니다. 잦은 방귀는‘ 결장암’의 증상일 수 있으니 이 영상을 지인들과 공유하고 증상에 대해 검진을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방귀는 웃기지만 웃기지만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메레디스 미라클 결장암 재단’의 메시지입니다. 이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방귀 습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겠지요. 이렇게 결장암 재단과 FCB시카고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
대선이 가까워 온 미국엔 수많은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야말로 ‘내 삶의 방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니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캠페인이 있습니다.
미국에선 매년 3만 명의 사람이 총기사건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총기폭력을 막기 위한 단체인 ‘미국총기사고예방협회(States United to Prevent Gun Violence)’는 그래서 특별한 투표를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고스트보트(Ghost Vote)’입니다.
투표를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Ghost.com에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클릭하면 그 사람의 사망 당시 나이와 간략한 소개가 보입니다.‘ 2010년 사망 당시 22세였으며,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친근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그들을 소개합니다.
모두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 희생됐지만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평범한 삶을 살던 시민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원하는 사람을 선택해 고스트보트 단추를 클릭하면 SNS 프로필 사진 프레임에 선택한 사람의 사진이 담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할 수도 있고,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총기 소유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고 위험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투표입니다. 그들은 이 투표를 실제 투표로 이어지게 하자고 합니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이며, 투표로 그 뜻을 보여주자고 합니다.
인간의 몫을 찾아주는 메시지
바둑을 알던 사람도 모르던 사람도 모두‘ 인간 이세돌’이 대단한 인공지능을 이겨주기를 바랐습니다. 인간이 아직 위대하다는 걸 목격하고 싶어 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기를 바랐습니다. 단순 반복행위를 해내는 로봇에겐 편리함을 느끼지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에게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만큼‘ 생각’과‘ 감성’은 인간의 고유 영역입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엔 디자이너도 있고 카피라이터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는 교감을 만들고 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그만큼 사람을 설득시키는 일, 인공지능도 못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광고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갑니다.
인간의 몫을 지키고 찾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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