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속 그 음악 #15 멜로디 빚던 EDM 장인, 아비치(Avicii)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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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6일, 4만 5천 명이 모여 뜨겁게 달아오른 ‘서울월드디제이페스티벌’ 현장은 갑자기 고요해졌습니다. ‘Rest in peace, We will miss you’와 함께 메인 스크린에 떠오른 아련한 알파벳 여섯 자 때문이었죠. 2018년 4월 20일,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스웨덴의 EDM 천재 ‘아비치’(Avicii)의 이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꼬마, 프로듀서 아비치로 변신하다

▲ 아비치와 콘래드 스웰이 코카콜라와 협업해 만든 (출처: Coca-Cola Official YouTube 채널)

콜라병을 든 북극곰의 이미지로만 코카콜라를 기억하던 대중에게 친구, 대화, 음악, 열정 등 코카콜라와 함께 하는 가치를 말하는 2016년의 코카콜라 CF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비치와 콘래드 스웰(Conrad Sewell)이 함께 한 원곡 <Taste the Feeling>이었는데요. 이 노래는 콘래드 스웰의 달콤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기존 EDM의 이미지를 깨고 멋진 일렉트릭 소울 넘버로 프로듀싱한 아비치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아비치가 공식적으로 활동명을 정하기 전, ‘팀 버그’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음원 (출처: datarecordsuk Official YouTube 채널)

이전까지 기타나 피아노를 조금씩 연주하던 10세 소년 ‘팀 버글링(Tim Bergling)’은 친구의 소개로 음악 제작 프로그램 ‘FL Studio’를 만나면서 프로듀싱에 푹 빠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팀은 그의 트랙을 하나씩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2008년 DJ 피트 통이 주최하는 프로듀싱 대회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때 팀은 활동명으로 당시 유행하던 커뮤니티 서비스 ‘마이스페이스’ ID를 활동명으로 정하는데, 그것이 바로 ‘Avicii’. ‘아비지옥’을 뜻하는 불교용어 ‘Avici’에 ‘i’를 하나 더 붙인 이름입니다.


세계에 뿜어낸 월드클래스 뮤지션의 아우라

▲ 2015년 영국 ’T in the Park’에서 열린 ‘Levels’ 공연 실황 (출처: BBC Three Official YouTube 채널)

이후 아비치와 팀 버그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1년 데이비드 게타와 함께 작업한 <Sunshine>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싱글 <Levels>가 유럽 15개국 차트 10위 안에 들면서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이후 2012년 EDM 그룹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와 함께 스웨덴의 EDM 스타일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죠. 우리에게는 2AM 조권의 솔로 앨범 수록곡의 작곡과 편곡에 참여한 아티스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140국 4,199명의 뮤지션이 참여하고 아비치가 프로듀싱한 ‘Avicii X You’의 스토리텔링 영상 (출처: Avicii Official YouTube 채널)

2013년 2월 공개된 Avicii X You도 아비치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Avicii X You는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전 세계 어느 뮤지션이나 음악 파트를 만들어 서로 평가하고, 반응이 좋은 파트를 모아 아비치의 프로듀싱을 통해 음원을 발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전 세계 140국 4,199명의 뮤지션이 참여했으며, 2019년 현재 기준 150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아비치와 볼보가 진행한 캠페인 ‘A new beginning’의 사운드트랙 (출처: Avicii Official YouTube 채널)

또한, 스웨덴 자동차 볼보(Volvo)의 새로운 캠페인 ‘A new beginning’에서 아비치가 모델과 음악을 맡기도 했습니다. 사운드트랙 <Feeling Good>은 니나 시몬의 원곡에 있는 고급스러운 보이스 샘플링과 미드템포의 진득한 리듬, 가족과의 여행 스토리를 담은 영상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죠.

일렉트로니카 DJ로 활약한 아비치의 존재감도 독보적이었습니다. 프로듀싱 이외에 디제잉 실력도 뒷받침해야 참여할 수 있는 DJ 페스티벌에는 이미 20대 초반부터 초청받았고, 2014년 기준으로 그가 페스티벌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280억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인기 뒤에 숨겨진 부담감

▲ 아비치의 마지막 라이브 퍼포먼스를 가득 채운 관중들(출처: ‘Music is my Love’ YouTube 채널)

하지만 엄청난 인기와 대조적으로 그는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6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총 813회, 주 3~4회가 넘는 무시무시한 공연 일정을 소화했고 심지어 수술 후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도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해요. 2014년 UMF 마이애미 공연에서는 아픈 아비치 대신 ‘deadmau5(데드마우스)’가 대타를 뛰었을 정도입니다. 2016년 3월에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라이브를 그만두겠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8월에 열린 DJ 은퇴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했죠.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던 아비치는 2017년 인스타그램과 SNS를 통해 새 앨범을 내겠다는 뜻을 비치며 복귀를 암시합니다. 3월 31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다큐멘터리 <Avicii: True Stories>를 공개해 팬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었죠.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2018년 4월 20일,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의 호텔방에서 그는 생을 달리했으며 유서 등은 따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사후 아비치의 가족은 그의 본명을 딴 ‘팀 버글링 재단’을 만들어 아비치의 온라인 수익을 정신병 및 자살 예방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웰메이드 멜로디를 선보인 하우스의 제왕

아비치는 EDM, 특히 하우스 장르에 있어서는 ‘스웨디시 하우스’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엄청난 기여를 한 뮤지션입니다. 게임의 BGM이나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 아비치의 음악이 쓰이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디제잉과 프로듀싱 실력도 뛰어나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질적인 멜로디와 하우스 사운드와 어우러진 아비치의 싱글 <Wake Me Up>(출처: Avicii Official YouTube 채널)

하지만 아비치의 가장 큰 업적은 그가 남긴 ‘멜로디’일 것입니다. 아비치의 트랙에서 들을 수 있는 개성 있는 멜로디는 매니악한 장르였던 EDM의 진입장벽을 확 낮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멜로디 빚는 장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비치의 멜로디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이것은 그의 작업 방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DJ가 비트를 먼저 쌓은 후 그것에 맞게 멜로디를 직조하는 데 반해, 아비치는 자신이 흥얼거린 멜로디를 정제해 만든 뼈대에 비트와 악기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기에 멜로디가 음악 전체에 이질감 없이 잘 묻어납니다. 그의 히트 싱글 <Wake Me Up> 역시 컨트리 스타일의 멜로디에 하우스 리듬과 간결한 신디사이저가 착 붙어 기분 좋은 상쾌함을 선사하는 곡입니다. 


▲아비치의 첫 정규 앨범 ‘True’의 수록곡 를 다시 아비치가 믹스한 트랙 (출처: Avicii Official YouTube 채널)

아비치의 무대 역시 그만의 필살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비치는 EDM 계의 다작왕으로도 유명하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곡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만들어 놓은 수많은 음악들을 발매하지 않고 숨겨두었다가 그가 서는 무대에서만 플레이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무대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미발매곡이 발매곡보다 많기도 하고 그 버전도 모두 다르다 보니, 수많은 팬들은 신곡을 듣기 위해 계속해서 그의 공연장을 찾게 됩니다. ‘True:Avicii by Avicii’는 그의 첫 번째 앨범 ‘True’를 모두 다르게 리믹스한 트랙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비치의 유족은 그가 작업했던 미공개 데이터를 담은 유작 ‘Tim’을 기일인 2019년 4월 20일 전 세계에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생전의 아비치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4월 20일, 발매 시간에 맞춰 그의 마지막 작품을 감상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커트 코베인, 프린스, 마빈 게이, TLC의 레프트아이 등 수많은 뮤지션이 생을 마감한 4월은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처럼 잔인한 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남긴 수많은 명곡 덕분이 아닐까요?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