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2 : 그럼에도 해피엔딩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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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해피엔딩


신 숙 자

CD / sjshina@hsad.co.kr


1950년대에 개봉한 이태리 영화 <자전거 도둑>. 2차 대전 후 대부분 가난했던 시절의 얘기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삐쩍 마른 가장의, 별다를 게 없는 이야기.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영화만큼‘ 해피엔딩’을 기도하며 본 영화가 없었고, 이 영화만큼 슬픈 결말을 낸 영화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스포일러를 보태자면, 어렵게 자전거를 구해 생계에 나선 아버지가 첫날부터 자전거를 도난당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으러 나서지만 실패한다. 급기야 남의 자전거를 훔치려고 시도하지만 흠씬 매만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장르일수록 해피엔딩은 뻔한 결말 뻔한 구조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오랫동안 속상해서, 작품성이고 사실성이고를 떠나 모든 얘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기도한다.

어찌 보면 광고는 ‘해피엔딩’을 만드는 작업이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상품이, 우리의 서비스가 당신을 도와 해피엔딩이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다. 춥고 쓸쓸해지는 연말일수록‘ 해피엔딩’이야기는 더욱 눈에 띈다. 올 겨울도 몇 개의 해피엔딩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동화를 만드는 John Lewis

이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누구나 존 루이스(John Lewis)의 이야기를 기다릴 듯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이야기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들 중 독보적이다. 지난 11월 초, 크리스마스 영상을 공개한 첫날 24시간 동안 5천 9백만 뷰를 기록했다고 하니, 관심으로 따지면 웬만한 영화 부럽지 않을 것이다.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존 루이스의 광고는 달달한 해피엔딩이다. 다른 게 있다면 눈사람 이야기, 펭귄과의 우정과 사랑에서 소외된 사람으로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것.

평범한 영국 가정의 여자 아이는 천체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는 게 취미인 듯하다. 그날도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다. 하지만 이번엔 새로운 걸 발견했다. 달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집 한 채. 그 집에서 쓸쓸하게 나오는 할아버지. 아이는 놀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관찰한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지만 할아버지는 소녀를 보지 못한다. 어떻게든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할 순 없을까, 화살에 편지를 말아 쏘아 보기도 하고, 비행기를 접어 날려보기도 하지만 달까지 가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게 홀로 달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할아버지에게 마침내 놀라운 선물이 도착한다. 수많은 풍선에 매달려 날아온 상자. 반가운 마음에 뜯어본 선물은 천체 망원경이다. 할아버지는 망원경으로 지구를 바라본다. 지구의 따뜻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층집 창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선물을 보낸 소녀를 발견한다. 둘은 망원경을통해 따뜻한 눈인사를 하고, 할아버지의 눈엔 눈물이 맺힌다.“ 크리스마스엔 서로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보여주세요.”

영국 백화점 존 루이스가“ 맨 오브 더 문(Man on the Moon)”이라는 타이틀로 보내는 크리스마스 메시지다.





John Lewis와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The Poke

갈수록 존 루이스의 광고가 화제가 되자 패러디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동화적인 영상을 음악과 편집을 바꿔 호러 무비로 만들기도 하고,‘ 왜 할아버지는 달에 홀로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히틀러이며 외롭게 죗값을 치르고 있다는 패러디도 한다. 개중 눈에 띄는 이야기는 유머 사이트 더 포크(The Poke)의 패러디. 아예 제목부터 존 루이스 이야기의‘ 다크사이드 버전(Dark Side Vers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음악도 똑같고 영상도 그대로다. 이번에도 아이는 천체 망원경으로 달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모습이다. 여느 때 보던 달이 아니라, <스타워즈>의 악당 다스베이더가 살고 있는 별이다. 소녀는 똑같이 천체 망원경을 다스베이더에게 선물로 보낸다. 할아버지처럼 다스베이더도 망원경으로 지구의 행복한 모습을 목격한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지구의 모습에서 감동을 찾았던 할아버지와 달리, 다스베이더는 스위치를 누른다. 순간 지구를 향해 레이저가 쏘아지고 지구는 폭발한다. 순식간에 지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광경을 어두운 달에서 우두커니 바라보는 다스베이더. 더 포크도 메시지를 남긴다.“ 자, 지금 완벽하게 작동한 백화점의 힘을 확인하세요.”

백화점에서 산 선물을 받고 행복해진 할아버지에 비해,‘ 다크사이드’에선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선물이 오히려 지구를 없애버린 계기가 됐다. 선물이 악당까지 착하게 하지는 못한 듯하다. 존 루이스 백화점에서 고른 선물은 늘 해피엔딩의 시작이 됐는데 패러디에선 오히려 반대가 됐다.

얘기는 또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포크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긴다.“ 친애하는 조지 루카스와 존 루이스 백화점이여, 우리를 고소하지 말아주세요. 크리스마스니까요. 사랑을 담아, 더 포크.”

백화점의 광고도 스타워즈 캐릭터도 모두 허락을 받지 않고 만들었다고 하니, 그들의 관계는 또 어떤 엔딩이 될지 궁금해진다. 다행인지 그들은 아직은 고소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화를 무참히 깨버렸지만 유머 사이트가 할 수 있는 가장‘ 웃긴’ 패러디이기도 하다.



캐나다 구스가 전하는 다섯 가지 해피엔딩

58년의 역사를 가진 고급 아웃도어 브랜드, 캐나다 구스. 그들은 극한의 추위에서 해피엔딩을 만들어낸 다섯 명의 모험가 이야기를 담았다. 북극의 극한의 추위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어왔다는 캐나다 구스. 캐나다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로리 스크리스렛(Laurie Skreslet),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서 네 번이나 챔피언이 된 랜스 맥키(Lance Mackey), 스포츠 부문 최우수 선수를 가리는 ESPY에 두 번이나 후보에 오르며 걸어서 지구를 횡단하고 있는 칼 부쉬비(Karl Bushby), 캐나다 퍼스트에어(First Air)의 베테랑 파일럿 패디 도일(Paddy Doyle), 구조 헬기의 간호사 마릴린 호프만(Marilyn Hofman). 북극에서의 모험담을 가진 다섯 명의 이야기를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감독, 폴 해기스(Paul Haggis)와 함께 영상에 담았다.

암 선고를 받고도 1,600km 이상을 달려야 하는 개썰매 경주를 마침내 완주하고 아내와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남자의 모습, 북극곰을 만나 위기를 맞는 순간, 걸어서 눈보라 속을 횡단하다 지역 군인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히기도 한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는 죽을 고비를 맞고, 경비행기가 고장 나 빙하 위에 불시착하기도 하고, 극한의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영상은 4분 길이지만, 웹사이트에서 해당 영상 부분을 클릭하면 실제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때의 모험담이 사진과 함께 차례차례 보인다. 얼마나 큰 위험을 견뎌냈는지, 추위는 그들을 얼마나 위협했는지, 당시의 상황이 진솔하게 이어진다. 굳이 캐나다 구스라는 브랜드를 강조하지 않아도 극한의 상황에서 캐나다 구스의 존재감은 그들의 생명줄처럼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캐나다 구스 CEO 대니 레이스(Dani Reiss)는 “진정한 럭셔리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고, 좋은 아이디어, 예기치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Out There’ 캠페인으로,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판에 박힌 이미지보다는 새로운 럭셔리를 제시하며 모험과 용기를 권하고 있다. 그들의 모험담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해피엔딩’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공감의 크기가 해피엔딩의 크기

유독 엔딩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다. <빌리 엘리어트>·<노킹 온 헤븐스도어>·<시네마 천국>·<스틸 라이프>…. 누군가 왕자님을 만나고, 큰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마음속까지 가득 차는 얘기들. 아들의 공연을 보러 시골에서 런던으로 올라온 촌부의 모습이, 천국에 가서‘ 바다’를 얘기하기 위해 바다에서 시한부 인생을 마감하는 두 남자의 모습이, 선물로 남겨진 영화 명장면들을 보며 사랑과 우정의 깊이를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이, 외로운 남자가 외롭지 않게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 엔딩은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결국 얼마나 공감되고 이해되느냐의 크기. 진솔할수록 따뜻할수록 인

간적일수록 해피엔딩은 더욱‘ 해피’하게 와 닿는다.

광고가, 나아가 마케팅이 그런 웰메이드 이야기가 주는 ‘엔딩’의 느낌을 낼 수 있을지 의아해지긴 한다. 어쨌든 광고는 짧고 상업적인 메시지여야 하니까. 어떻게든 ‘상품’이 개입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나는 아름다운 엔딩이 있어, 마치 동화처럼 영화처럼 광고도 회자되곤 한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