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경주대 커뮤니케이션 학부교수
쉬리 - 포스터."당신과 보낸 시간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강제규 감독의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쉬리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리는 사회현상을 만들어 냈을 뿐아니라, 일본에 수출되어 일본영화 사상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일본 전국의 개봉관에서 동시 개봉되었다(2000년 1월 22일). 또 현재까지 약 2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하는 등(4월 1일 100만 명 돌파), 국내외적으로 뜨거운 호응과 함께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작금의 한일관계에 있어서, 특히 일본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시대적 담론이 뜨거운 한국의 현실에서 일본에서의 이 작품의 성공은 우리에게 문화적 자부심과 함께 세계시장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 문화상품의 세계진출을 향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 영화 <쉬리>가 일본에 상륙하여 흥행에 성공하기까지의 배경과,일본내 공동수입배급사인 종합엔터테인먼트그룹 (주)어뮤즈사의 마케팅 전략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영화산업과 시장 규모
일본의 영화시장은 일견 우리와 별 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른바 헐리우드 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일본내의 외국영화 배급은 UIP, 소니, 20세기 폭스, 워너브러더즈, 브에나비스타의 메이저 5개사와 일본 헤럴드, 쇼오치쿠후지(松竹富士), 에스픽쳐즈, 도호도와(東寶東和) 등의 독립계 배급사가 주도하고 있다. 그럼 먼저일본내 배급수입과 일본영화의 해외배급을 간단히 살펴보자.
1997년도 일본영화 배급 수입은 325억 6천700만엔으로 전년 대비 41.6%가 늘어났다. 그 이유는 1997년 일본영화 배급 수입의 32.8%를 차지한 <원령공주(宮崎 駿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흥행 성적때문이었으며, 이와 같은 히트작품이 없었던 1998년의 자국 영화 배급수입은 263억 9천 100만엔에 그쳤다. 한편 외국영화 배급수입은 1998년에 609억 6천900만엔으로 전년도의 459억 5천500만엔보다 무려 32.7%나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했지만 일본영화계에서도 <타이타닉>의 흥행 성공에 힙입어 외국영화 배급수입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쉬리의 홍보용 판촉물. "가장 격렬한 사랑, 가장 애절한 운명"
현재 일본의 한 해 영화산업의 시장 규모는 연간 매출 규모가 약 1,500억엔(한화 약 1조 5천억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국영화의 흥행 수입은 약 219억엔으로(약 2,190억원) 앞서 소개한 <원령공주>가 그 중에 107억엔의 수익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의 영화시장은 그 큰 규모에 비해 내실은 허약하며, 일본내 흥행순위 10위권은 늘 헐리우드 영화가 석권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대작(大作)이 가끔씩 일본영화의 위신을 세우는 정도이다. 이른바 일본의 메이저 3사라고 불리는 쇼치쿠(松竹), 도호(東寶), 도에이(東映)가 ‘블럭부킹 시스템’이라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전국의 스크린을 장악, 외국영화의 자국시장 잠식을 방어해 왔고,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약 40%를 차지한다는 사실로 자위해 보지만, ‘일본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일본인뿐’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영화산업의 수치는 오히려 비관적이다.
물론 일본영화의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년대부터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라는 영화사에 빛나는 3인의 거장이 일본 영화계의 정신을 지켜왔고,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으로 장르영화라는 육체를 지켜오고 있다. 더욱이 이들 사이를 비집고 성장한 독립영화는 기타노 다케시(北野武)·이와이 지(岩井俊二)·최양일(崔洋一, 재일교포출신 감독) 등의 새로운 감독들을 배출하여 일본의 영화계가 한층 더 다채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일본영화는 소문에 비해 허약하다. 더욱이 헐리우드영화에 비해 다른 외국영화의 커다란 흥행 성공은 과거에는 그 예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볼 때 제3세계의 영화가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은 실로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까 ?
크리에이티브 집단 어뮤즈그룹의 역사
어뮤즈는 일본의 연예인 양성기관으로서 그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와타나베프로덕션(渡プロ)에서 20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오사토 요키치(大里洋吉, 현 회장)가 독립하여 1977년 설립한 회사이다. 오사토는 일본의 전설적인 여성 아이들(idol) 그룹인 캔디즈의 고별무대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킴으로써 그 명성을 일본 대중 음악계에 떨친 또 다른 전설적인 인물로 통하는 사람이다. 그는 1978년, 무명의 록밴드 ‘사잔 올 스타즈(SAS, Southern All Stars)’를 발굴하여 20년이 넘도록 일본 록의 대표로 군림시키고 지금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도록 종합적인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다. 어뮤즈는 해외 지사를 포함 15개의 자회사로 이루어진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한국과는 한국의 뮤직 프로듀서인 김창환이 프로듀싱한 ‘클론’의 일본 공연을 계기로 알게 되어 자사의 신인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을 맡기는데, 올해 칼라스(COLORS : 4인조 여성댄스 보컬그룹)라는 이름의 그룹을 데뷔시키기도 하였다. 어뮤즈는 소속 아티스트가 약 200여 명에 이르는데, 뮤직 아티스트를 비롯하여 탤런트, 영화배우, 감독, 연극인, 방송인, 작가, 스포츠선수, 문화인 등의 육성 및 매니지먼트를 주된 사업으로 하고, 음악, 영화 , 연극, 드라마 제작 및 판권사업, 영상 소프트의 기획, 제작 및 판권사업, 출판, 레코딩 및 스튜디오 운영 등을 사업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쉬리>를 수입한 (주)어뮤즈·시네콰논은 영화부문의 사업을 위해 설립한 회사로서, 파트너인 시네콰논(cineQuanon)은 재일교포 이봉우 씨가 1988년 설립한 회사이다.
아사히TV - 쉬리는 정말 재미있어요.
한국영화에 대한 편견 일본에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는 얼마 안된다. 과거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일시적인 한국붐을 타고 일본에 일찍 상륙한 한국영화는 <어우동>, <씨받이>, <뽕>, <애마부인> 등이 주류를 이루어, ‘한국영화 = 에로영화’라는 이미지가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심어져 있었다. 주로 극장상영보다는 비디오를 통해 전해진 한국영화의 이러한 이미지가 조금씩 변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 <서편제>,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의 작품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미 고정화된 한국영화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어뮤즈가 <쉬리>를 일본에 수입, 배급하면서 영화 흥행의 성공을 위해 세운 최우선 전략은 이러한 한국영화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데 있었다. 그러면 어떠한 전략을 택하여 흥행에 성공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후지 TV - 사상최초로 한국영화가 1위를기록 했습니다.
어뮤즈의 선전 전략 어뮤즈의 선전부가 스태프 회의를 통해 도출한 <쉬리>의 흥행 성공을 위한 최우선 전략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기존의 한국영화에 대한 편견과 인지도가 여전히 낮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 홍콩의 액션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장르의 한국영화를 알리는 데에는 철저한 선전전략이 중요하다고 판단, 먼저 <쉬리>의 선전 컨셉을 첫째, 남북문제를 다룬 사회성 강한 영화, 둘째, 헐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는 박력의 액션, 셋째, 애절한 러브스토리등의 세 가지로 설정하였다. 그 다음으로 일본어 제목(シュリ·SHURI)과 캐치 프레이즈, ‘가장 격렬한 사랑·가장 애절한 운명 - 당신과 보낸 시간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를 정하여 팜플렛, 포스터, 전단 등의 인쇄물 제작을 개시하였다. 이와 동시에 각 신문사와 잡지사에 적극적으로 PR 활동을 전개하는데, <쉬리>의 경우에는 일본 사회에서 관심도가 높은 남북문제 등을 전면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다른 한국영화도 소개하면서 ‘지금 한국영화가 뜨겁다’라는 기획을 입안하여 신문, 잡지, TV 등의 매체에 광고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액션이 대단합니다.
일본관객 100만명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