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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에 한 '딴짓'


간섭 안 하는 분야가 없고, 참견 안 하는 장르가 없다는 것이 광고하는 일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피곤함이기도 하다. 매일 같이 남들이 일궈 놓은 성과들을 훔쳐보느라 여기저기 손품, 발품 팔고 다니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런 수고와 노동을 예전 어느 자리에서는 '광고란 일종의 통섭학입니다'라고 점잔빼며 말한 적도 있다. 며칠 전부터는 무슨 일 때문에 여러 나라의 글들 중에 묘사력이 뛰어난 문장들을 채집하고 있는바, 문인들의 위대한 유산들을 읽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그런데 한 장 두 장 재미에 빠져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어느새 목적은 멀리 사라져가 버리고, 장시간 딴짓만 하게 된 꼴이 되어 버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사실 온종일 딴짓에 정신이 팔려 외도만 하다 '아니 벌써 밤이 됐네'라며 회사를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데드라인에 목이 졸려 끝내는 당일치기 수험생 신세가 되어버리니, 가끔은 고객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직업인으로서 양심에 어긋난 일을 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럴 만큼 대범한 인간도 아니다. 사실 어떨 때는 오히려 데드라인을 이용하기도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왜냐하면, 데드라인이라는 놈은 정말 '데드'를 요구하기 때문에 막다른 시점이 되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것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까지 해마를 몰아붙이다 보면 뇌의 항복을 받아내어 끝내는 유레카를 선물로 줄 것이라는 가설에서 나온 행동이다. (순전히 근거 없는 구라이오니 현혹되지 마시기를 바람.)

또 삼천포로 빠졌다. 원래 '내가 요즘에 한 딴짓'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이쯤 되면 정신감정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요즘에 할 일을 뒷전으로 한 채 헤매고 돌아다녔던 곳은 하이쿠의 숲이다. 짧게 말하기가 직업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하이쿠는 로렐라이 언덕의 사이렌이다. 강렬한 유혹이지만 가까이해서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못 들어가면 현실로의 복원이 힘에 부친다. 사무실이 절간이 되는 환상에 빠지고 카피가 도를 닦게 된다. 이런 점만 명심한다면 가끔은 하이쿠의 숲에 들어갔다 오는 건 본질적인 나에게도 직업적인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술 한잔 마시듯 하이쿠 한 줄 하이쿠 두 줄 홀짝이다 보면 잃어버렸던 혹은 잊어버렸던 것들이 손에 잡힌다.

그런데 하이쿠의 숲속을 돌아다니다 불현듯, 우리 몸에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면 특정 음식을 먹고 싶듯이 우리의 정신도 충만과 균형에 대한 갈구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인 나의 정신생활에도 불균형의 징후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달 동안 몸과 마음에 못 할 짓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고 일은 일로 잊는다는 해괴한 모토를 내 건 채 여백의 시간을 내동댕이친 지 꽤 오래됐으니 말이다.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것은 눈을 감아야 보인다고 했는데… 어느 철학자 말대로 우리 현대인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깊은 심심함'인 것 같다.

내가 요즘에 한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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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