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제일 서글픈 게 뭔지 아나?… 꿈을 이뤘는데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거야."
한때 몰입하며 봤던 어떤 드라마의 대사다. 회한의 상념과 통찰이 묻어나는 대사에서 어떤 이는 공감의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이게 무슨 피카츄 전기세 내는 소리냐며 옆에 베개라도 있으면 집어 던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에 다가가기는커녕 점점 멀어지는 꿈을 보며 또 하루를 보내야 하는 젊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신은 꿈을 이뤘잖아… 그건 '세금을 왜 이렇게 많이 내야 하는 거야. 이러다가는 애들 유학비도 감당 못 하겠어' 같은 배부른 소리로 들리는 거 아슈!"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멘토링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을 할 만큼 떳떳하지도 않지만, 혹여 나도 모르게 내가 한 말이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올드보이처럼 들릴 것 같기 때문이다. 청춘들은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환자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지금 병동이다.
영화를 하려고 음식점 알바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일어나보니 영화는 사라지고 음식점 알바가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다고 허탈하게 웃어대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사랑을 잊으려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사랑은 금세 잊히고, 그 자리에 소주 없이 못 사는 인생이 들어와 버린 셈이다. 자본의 논리는 가혹할 정도로 촘촘해지고 루저들의 설 땅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거 참, 루저라는 말은 또 얼마나 참담한 말인가. 언제부터 이런 단어가 우리 사회와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던 걸까. 깜빡 잠든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뀐 것 같다. 사람을 밟고 올라가고 또 밟고 올라가 더 높은 탑을 쌓는 경기를 보는 것 같다. 꼭대기 한 사람의 득의양양을 위해 인간 벽돌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아름답지 않다. 나쁜 자본주의다. 나쁜 자본주의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창출한다. 그리고 나쁜 자본주의는 위너 대 루저의 이념을 강요한다.
올해도 신입사원들이 들어왔다.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이르러야 할 곳에 이른 자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박수받을 자격이 충분한 얼굴들이다. 합격의 통보를 받았을 때 나의 기쁨을 돌이켜보면 지금 그들의 기쁨은 나의 열 배, 스무 배쯤 될 것이다. 신입사원들의 입사 소식을 온라인으로 접할 무렵, 한 친구가 커피를 사 들고 내 방에 들어왔다. 오늘이 5개월 알바 생활의 마지막이란다. 어떤 친구들은 들어오고 어떤 친구는 떠난다. 회의할 때 자주 봤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말 한번 건넨 적이 없다. 표현에 익숙지 않고 다감하지 못한 내 성격 때문이리라. 뭐라도 얘기를 해주려 했지만, 멍청한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만 보냈다. 회사에는 예전과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알바생들이 많아졌다. 그들을 볼 때마다 말은 안 하지만 괜스레 안쓰럽다. 그래도 여기서 알바를 하는 친구들은 나름대로 선택받은 친구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입사원 중에도 많은 친구들이 그런 알바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문제는 어느 분야에서건 꿈에 도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데 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밟고 올라가야 이기는 게임의 법칙에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 모두가 어느새 그 게임에 너무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좋은 사회는 뒤돌아볼 줄 아는 사회다. 신입사원들의 입사를 격렬하게 축하한다. 그리고 여전히 힘든 경주를 하고 있을 대다수의 청춘에게 미안함과 함께 지면으로나마 깊은 허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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