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대화 방식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내 주위에도 입으로 하는 대화보다는 손으로 만드는 대화가 더 자주 보인다. 상대방이 멀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공간, 바로 옆 사람에게조차 말보다는 카톡이 편하다고 하고, 전화 오는 걸 무서워하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는 단순히 매체의 변화와 발전만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상호 교류하는 메시지가 증가하면서 언어의 오독을 피하고,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문자는 말보다 분명 장점이 크다.
특히 요 근래 들어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상대방의 시간을 점유해 실시간으로 전달해야 하는 말보다, 문자는 더욱 선호된다. 또 상대방이 부재 시에도 남겨둘 수 있고 지금 당장 메시지를 전달하겠노라 사전에 양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렇게 문자로 만들어지는 메시지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양은 압축되고, 짧아지고 있다. 음성 중심으로 듣는 즉시 수용되는 말보다, 시각 중심의 문자를 구성하고, 해석해야 하는 2차적인 방식은 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PC통신 시절부터 타이핑 언어의 기본은 줄임 말이었다. 지금 만들어지는 웹용 신조어 대부분도 전달이 용이하도록 줄임말 형태가 기본인 건 당연하다. 물론 책이라는 두꺼운 문자의 매체가 여전히 있지 않냐고 하지만, 그 오랜 시간 수용됐던 대표적인 문자 매체인 책도 최근에 나오는 것들을 보면 과거보다 분명히 얇아지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단순히 언어의 커뮤니케이션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문자와 마찬가지로 시각 중심인 영상 매체도 짧아지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인스타그램의 릴즈, 유튜브 쇼츠 등은 다른 영상들에 비해 더 빨리 소비되고, 확산된다. 유튜브를 가볍게 즐기는 이들은 대부분 연이어 재생되는 쇼츠나 릴즈를 통해 트랜디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마주하고, 빠르게 감염되는 감정을 소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릴레이 형태의 콘텐츠를 어떤 이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늪”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는 언급된 몇몇 매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짧음”의 익숙함 때문인지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몇몇 VOD 사업자들은 1.2배나 1.5배속의 영상 플레이 기능을 제공하고, 실제 이런 방식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소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한쪽에서는 이것조차도 낭비라며 아예 콘텐츠를 잘 다듬어 요약한 해설과 하이라이트만을 소비하기도 한다.
많은 것들이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배워 온 현대 사회에서, 짧은 콘텐츠는 매우 적합한 방식이다. 또 이런 방식은 광고 분야에 있어서도 역시 효율적으로 해석되고, 보고가 가능하다는 데서 이점을 더 잘 드러낸다. 예를 들어 60초 1번의 노출에 필요한 광고 단가가 정해져 있다면, 30초로는 2번, 15초로는 4번이나 광고 노출량을 늘릴 수 있다. 또한 노출 이외에도 추적이 가능한 전환 실적 역시 이런 노출 효율을 근거로 산정되어 더욱 좋은 전환 효율을 얘기할 수 있게 한다. ‘트랜드’와 ‘효율’, 이것이 종종 광고 대행사의 제안에서 특정 매체의 기준에 맞춘, 짧은 6초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제시됐던 근거다. 그러다 보니 최근 광고계에서 언급되는 용어들 중 많은 수가 매체의 특성에 주목한 것들이다. 짧아진 메시지 안에서 광고의 전략적 변별력을 따지기보다는, 매체의 효율성을 강조하여 성과를 내는 방향 탓이다. 과거에 비해서 최근 광고 경쟁 PT에서 미디어의 중요성이 그래서 부각됐고, 대표적인 상징이 된 것이 퍼포먼스 마케팅이다.
이러한 매체 특성 기반의 마케팅은 지난 몇 년간 유효하게 소비자의 반응을 끌어냈다. 종종 광고를 통한 기업의 메시지를 소비자와의 ‘대화’에 비유하곤 하는데, 긴 설득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쿡쿡 찔러 대는 짧은 자극과 같은 메시지에 소비자가 반응해 준다니, 그 것만으로도 방송 광고가 지금껏 하지 못했던 기술 혁신이 성공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짧은 메시지의 반응은 여느 자극도 그러하지만, 빠른 피로감으로 인해 효과가 일시적일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메시지의 변주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소비자가 원할 것 같은 것을 자동화된 시스템까지 동원하여 끊임없이 발굴하고, 제시했다. 이 프로세스의 요체가 아마도 퍼포먼스 마케팅일 것이다. 이에 반해 사람들을 구매하도록 설득하고, 구매의 이유를 마련해주고, 또 그것들이 쌓여 하나의 기업을 브랜드로서 받아들여지게 하는 총체적인 ‘광고의 본질’은 너무 시간이 걸리고, 수치적인 증명이 더딜 수밖에 없는 구식의 마케팅 방식처럼 여기는 경우도 생겨났다. 자연스레 기업이 만들어가던 대화 형태의 광고는 자극을 위한 광고로 많은 부분 대체되었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내년의 전망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떤 업종이 광고비를 많이 집행하게 될지, 어떤 매체, 어떤 콘텐츠가 더 효율적인 광고 결과를 만들어낼지.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 솔직히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불분명한 미래 속에서 어림짐작할 수 있는 변화는 아마도 “자극”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다시 “대화”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은 조심스러운 예상 정도다.
전반적으로 내년은 이미 올라간 물가, 경기침체의 우려만큼, 소비를 위한 설득이 말초 자극적인 형태로만 유지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점쳐 본다. 자극을 통해 반응이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지갑을 열도록 준비된 태도가 필요하다. 만약 이런 태도가 준비되지 못한 채, 소비자가 자극 위주의 짧은 광고 메시지에 노출된다면 이는 과거 스팸 메일처럼 전환 효율은 떨어진 채, 짜증 나는 인상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아마도 기업들이 새롭게 시작될 소비자와의 대화의 첫 마디가 무엇이어야 할까의 고민이 아닐까?
그러면서 매체 역시 그 대화를 어떤 매체를 통해 전달해야 할지, 아무리 대화의 트렌드가 짧은 메시지로 주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들에게 좀 더 수용도가 있고, 믿을 만한 매체를 통해,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매체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어느 매체든 더 잘 전달되고, 보여지는 효율만 따진다면, 대화 자체가 멈추는 것은 물론, 그 매체에 대한 외면도 커지면서 정말 무엇도 광고라 부르기 민망한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도 한편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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