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리의 무죄를 입증할 문서가 15년 동안 잠자고 있었다.”
15년간 무고하게 복역한 게리 콘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93년 개봉된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는 폭탄 테러범으로 체포돼 감옥에 갇힌 부자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1974년 영국 길포드에서 발생한 펍 폭탄 테러 사건. 이 사건으로 아들 게리 콘론이 체포되고 이후 아버지 주세페 콘론 또한 폭탄 제조 지원 혐의로 체포됩니다. 변호사도 없이 진행된 강압적인 심문과 조작된 증거... 그들에게 선고된 처벌은 무려 무기징역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진실을 끈질기게 파헤친 인권 변호사, 개스 파커가 등장하면서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는 이미 게리 콘론이 억울하게 10년 이상 복역 중일 때 사건에 뛰어들었죠. 법적 기록을 재조사하고, 일일이 녹취록을 대조하면서 은폐됐던 결정적인 진술서를 발견합니다. 그 문서는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난 시점 게리는 런던에 있었다는 증언이었고, 1989년 15년이 지나서야 유죄 판결을 뒤집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영화는 진실을 드러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지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한지 보여줍니다. 가장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실화라는 점이죠.
진실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긴 진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현대인에게도 보이지 않는 진실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지고 재조명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힘이 절실합니다.
향수 광고에서 발견한 진실
향수 광고에는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 낭만적인 파리, 로맨틱한 밤. YSL뷰티 또한 프랑스 브랜드답게 파리에서의 남녀를 로맨틱하게 그려냅니다. 우연히 마주치는 남녀로 시작해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남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 그들, 여느 향수 광고와 다를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YSL은 묻습니다. ‘혹시 이 영상에서 데이트 폭력의 징후를 발견하셨나요?’ 영상은 앞으로 다시 되돌아갑니다.
백허그로 다정하게 여자의 휴대폰을 함께 들여다보는 장면은 ‘사생활 침해’, 우연히 마주친 듯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스토킹’, 파티에서 춤추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질투’, 파리의 다리 난간을 걷다 넘어질 뻔한 남자의 모습은 ‘조작’, 그리고 친구와의 모임에 못 나가게 막는 건 ‘고립’. 점점 여성을 통제하고 감정을 조작하면서 미묘하게 심리적 억압을 해가는 남성의 모습이 부각됩니다. YSL은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라고 결론짓습니다. 이 캠페인은 ‘Abuse is not love'캠페인으로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을 보여줍니다.
뷰티 브랜드가 늘 보여주던 모습을 오히려 반전으로 전달하는 메시지 구조는 매우 강렬합니다.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점들을 짚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일들을 의심하자고 권합니다.
슈팅을 막는 슈팅
평화롭던 거리, 총성과 함께 거리는 공포의 현장으로 변합니다. 급하게 가방을 들고뛰는 사람. 그 사람이 가방에서 꺼낸 건 카메라였습니다. 곳곳에서 위험한 현장을 취재하는 사람들. 하지만 총알은 기자라고 피해가진 않습니다. 쓰러지는 동료의 카메라까지 챙겨 펍으로 숨어드는 남자. 공포에 사로잡혀 있지만 메모리 카드를 안전하게 숨기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발소리에 숨을 죽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마주한 건 총을 든 남자입니다. 슈팅(촬영)을 막는 슈팅(총격)과의 대적. 화면이 암전 되자 총격 소리가 들리고, 영상은 전합니다.
“멕시코는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한 국가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Article19은 기자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빈번한 멕시코의 현실을 알립니다. 200명이 넘는 기자가 살해되거나 실종됐다고 말하죠. 이 영상은 자유로운 저널리즘을 공격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모두에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매우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기자가 된다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 거죠. ‘슈팅’이라는 단어가 가진 두 가지 의미를 활용해서 반전을 강하게 전하는 영상. 진실은 때로는 이처럼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화장실 휴지로나 쓰여야 할 발언
영상은 마치 평범한 화장지 광고 같습니다. 평화로운 오후,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여자는 화장지의 부드러움을 얘기하죠. 화장지는 마치 정치인의 척추처럼 부드럽다고 얘기합니다. 너무 부드러워 떨어지는 총알에 갈갈이 찢어지죠. 휴지로 닦으면 휴지가 지나간 자리엔 마치 피를 연상시키는 자국이 남습니다. 이 화장지의 이름은 ‘Thoughts & Prayers'입니다.
미국에서는 종종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린아이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죠. 많은 정치인들은 늘 ‘Thoughts & Prayers'라는 말로 애도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총기 사고를 막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총기 규제 단체인 Chage the Ref는 이 점을 꼬집기 위해 화장지를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정치인들의 행동 없는 공허한 발언을 화장지에 그대로 인쇄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이름도 함께. 그들의 발언은 이 정도 가치밖에 없다고 풍자하는 겁니다.
실제로 이 화장지는 웹사이트에서 19.99달러에 판매되고 있으며,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한 롤을 보낼 수 있는 옵션까지 있습니다. 이 날카로운 비판은 영상뿐만 아니라 OOH로도 만들어져 곳곳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변화를 촉구해도 행동으로 답하지 않는 정치인들. 이렇게 배설물이나 닦는 화장지로 격하되는 수준에 이른 거죠.
부디 이 캠페인이 실절적인 입법을 하는 데 힘을 발휘했으면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페루 팔미라의 아이들은 물이 부족해, 결석하거나 건강 문제가 생겨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까지 겪습니다. 물은 생존의 기본 조건이니까요. 그래서 Water for People 비영리 단체는 물부족과 교육의 연관성을 알리기 위해 ‘The Dehydrating Book'을 개발했습니다. 물을 뿌려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인 거죠. 물 없이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KEA Canada는 아이들의 수면빈곤을 지적합니다. 취약 계층 어린이들은 제대로 된 침대나 매트리가 없어서 또는 수면 환경이 열악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족과 공간을 공유하거나 불안을 비롯한 심리적 문제들도 수면을 빈곤하게 만들죠. 이러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부엉이 모양의 ‘Sleepless Lamp'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깨거나 깊이 잠들지 못했을 땐 깜빡이거나 불이 켜지는 구조입니다. 실제 어린이들의 수면 데이터를 반영하여 불규칙한 수면 패턴처럼 불안정하게 깜빡이며 경각심을 울립니다.
물부족은 그저 환경 문제로만 생각되고, 생활 빈곤이 수면의 빈곤함으로 연결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 점을 꼬집어 잘 보이게 만든 아이디어들. 진실을 보이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이렇게 좋은 아디어가 필요합니다. 진실은 강합니다. 대신 그만큼 대가를 요구합니다.
신숙자 CD의 해외 크리에이티브 20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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