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4 : 너는 어떻게 카피가 됐니? - 중구난방 카피 수칙 3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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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어떻게 카피가 됐니?
중구난방 인쇄 광고 카피 수칙

예나 지금이나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카피라이터가 돼요?”다. 카피는 실무를 하면서 카피로 크는 거란 말을 수도 없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까 계속 묻는다. 어떻게 하든 들어만 간다면 카피로 크는 길에 들어선다. 어떻게 클까?  여기 어리바리한 여자 카피라이터가 광고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전설의 카피라이터 신입교육을 받으며 커가는 과정을 소소하게 풀어본다.

"섭섭아, 섭섭아~ 어디있니? 회의한단다. 섭섭아~"
잠깐이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정신 한 개도 없는 아침을 보낸 후 매일 보는 볼일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솔직히 다들 알다시피 생리적인 현상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끊고 나갈 수도, 대답을 할 수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태다. 지금처럼 휴대폰을 몸에 꼭 붙이고 다니는 시절도 아니니. 아니, 몇 번 부르다 없으면 그냥 말지, 계속 찾는다. 복도에 나와서까지 찾는 목소리. 아궁궁〜나오다 쏙 들어가더니 감감 무소식. 얼릉 마무리하고 나왔다. 그리 애타게 나를 찾은 선배 앞에 헐레벌떡가니 하시는 말씀. “야 그렇다고 그냥 끊고 나오냐…여자애가 참 나.” 아니 그럼 복도에서 부르지나 말지 왜 찾았남. “나왔으니까 얘기해 주마. 너 자동차 광고 해라. 나나 윗분들은 자동차광고 해본 적도 없고, 네가 잘 할 것 같다. 얼굴에도 딱 그렇게 써있네. 할 거지? 할 거지?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란 말이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국장님, 섭섭이가 한답니다. 회의시간 잡고 알아서 하라고 할게요.” 국장님 왈 “섭섭아 아〜 그거 좋다. 섭섭아, 도요타는 알아서 해라. 카피 보고하지 마. 알아서 해. 디자이너는 김 차장이다. 좋지 좋지〜 기획은 새로 온 여자국장 있거든, 그 국장이야. 전화해서 시간잡고 알아서 진행해.” 국장님이 너무나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이야기하신다. 난 무조건 끄덕끄덕. 후다닥 선배와 국장님이 정자세로 자리에 앉으시더니 갑자기 열심히 일을 하신다. ‘음…무언가 있기는 있어. 수상해 냄새가 나 냄새가.’
암튼, 결론은 우리나라 최초로 도요타 광고를 한단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자동차의 정식 수입과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다. 또 그 당시에는 자동차 카피라이터가 드물었다. 자동차회사가 몇 개 없으니 그걸 담당하는 광고회사도 몇 개 없었으리라.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왜 선배님들이 자동차를 안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제작회의를 중단시킨 미친 사원카피!
이번에는 TV-CF 카피 이야기라고 상상하셨다면 너무 빤하죠.
“순서대로라면 그래야 하겠지만 TV-CF 카피 트레이닝은 쉽게 말씀 드리기가 좀 많이 아깝습니다. 그러면 너무 뻔뻔한가요. TV-CF 신입 트레이닝은 다음에 펼쳐드리죠〜”
광고를 준비해야 되는 차는 도요타 자동차 중에서 ‘아발론’이라는 브랜드였다. Made in Japan 차는 들여올 수 없으니 도요타 미국에서 만든 Made in USA 차를 들여와 판다는 계획이었다. 이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내용이고. 회의를 하니 브리프의 맨 위부터 아래까지 전부 외계어다. 도요타는 알겠는데, 듣도 보도 못한 아발론·캠리가 줄줄. 경쟁사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다.
퍼포먼스·드라이빙·스타일〜 이런 단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트랜스미션·바디·헤드·해치백 이런 단어까지 쏟아져 나오는데 대책이 없다. 선배가 그랬다. 모르는 건 끝까지 물어보라고. 단어 하나하나를 물어보니 회의진행은 물 건너가고. 무슨 배짱이었는지, 선배한테 혼날까봐 그랬는지 회의를 중단시켰다. 무조건 다음날로 미뤘다. 회의실을 나와선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자동차 정비 코너에 가서 <자동차 용어사전>을 뽑아 들고 다시 예나 지금이나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카피라이터가 돼요?”다. 카피는‘ 실무를 하면서 카피로 크는 거’란 말을 수도 없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까 계속 묻는다. 어떻게 하든 들어만 간다면 카피로 크는 길에 들어선다. 어떻게 클까? 여기 어리바리한 여자 카피라이터가 광고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전설의 카피라이터 신입교육을 받으며 커가는 과정을 소소하게 풀어본다. 회사로 왔다. 자동차라 쓰인 월간지도 다 싸 들고 말이다. 혼자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던 용기를 솟아나게 했다. 당시에는 혼(?)이 빠져서 얼떨결에 회의를 중단시키는 사고를 저질렀지만,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카피라이터가 제품을 모르면서 회의를 해서 뭐하겠는가. 필요하면 사원이든 대리든 회의 중단이나 회의 소집을 해야 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광고가 제대로 나온다. 이건 선배가 한 말이다.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 하다가 진짜 해버린 것이다. 그후로 ‘미친 사원카피’라는 말이 한동안 따라다녔다.


<딜러가 직접 만들었다던 광고>
첫 자동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자동차 광고이다. 담당 딜러가 아는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광고로,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차 닦은 거나 카피 레이아웃을 보면 대행사 아트의 손길이 닿은 광고이다


자료 확보! 자료가 생명이다

우선, 사전과 월간지를 확보한 후에 자료실로 뛰어 올라갔다. 자동차광고를 찾아보자. 경쟁사라는 벤츠는 물론, 국내 자동차광고를 다 찾아왔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이야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자료를 수집해라.’ 자료를 모으기 위해선 많은 관련 광고를 보게 되고, 카피를 다 읽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이디어도 생각나고, 우리 제품을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주의할 점은, 모으기만 하면 안 된다. 모으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리라.
어찌 어찌 하루 동안 자동차에 대한 공부(?)를 끝냈다. 준비해야 할 광고는 한국에 도요타 자동차가 최초로 온다는 컨셉트였다. 보여주는 자동차는 아발론.시안 제시는 일주일 후. 디자이너 차장님과 내가(자동차광고는 해본 적도 없는 둘이) 지지고 볶음을 해서 들여보냈다. 세 가지 방향에 각각 2개안씩!! 일하면서 처음으로 선배와 국장님한테 보여드리지 않은 카피를 얹은 시안. 내 맘대로 하면 기분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닥치니 좌불안석. 제대로 한 건지 걱정걱정. 하도 걱정을 하니 선배가 “카피 봐줄까? 언뜻 보니 잘했더만” 이러신다. 갑자기 기운백배!! 그때 집행되었던 광고다.


도요타 아발론 첫 광고(위)와 두 번째 광고(아래)              도요타 아발론 세 번째 광고



한글과 일어·영어의 늪에 빠지다
광고주에게 시안이 팔리고 열심히 집행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걸린 브레이크! 일본 도요타 본사가 광고를 감수하겠다며 나섰다. 본사가 끼자 광고 보고는 상당히 복잡해졌다. 이때, 글로벌 회사의 광고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맛을(호된 맛?)을 보았다. 먼저, 컨셉트 일본이나 미국 광고와 같은 것으로 하란다. 세상에! 시장상황이 완전 다른 두 나라의 컨셉트를 가져오라니. 며칠간의 설득 끝에 어찌어찌 ‘컨셉트는 다르게’로 결정. 다음엔 시안을 미국 공장과 일본 본사 두 곳의 컨펌을 받으란다. 우리는 모두 쉽게 생각했다. ‘지네들이 한글을 알아? 모르니까 쉽게쉽게 결정 나겠지〜’ 아뿔싸!!
도요타는 세계 곳곳에서 광고를 진행해 본 경험이 많았다. 나름 매뉴얼도 따로 만들어서 가질 만큼. 기획이 아무 생각 없이 시안을 팩스로 도요타 일본에 보냈다. 바로 연락이 왔다. 시안에 대한 설명과 카피를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 공장 컨펌을 받으란다. 그럼 그곳에서 다시 일어로 번역해 일본 본사로 보낸단다. 으에엑〜. 영어 쫌 하는 기획이 없어서 마케팅이 한글 카피를 영어로 번역해서 시안에 얹어 보내고 며칠 후, 일본에서 시안 하나가 뿅 날아왔다. 일어 헤드라인에 친절하게 한글 번역까지 첨부해서 미국 공장에서 일본으로 보낸 일어 번역까지. ‘아이고〜 하늘과 땅님〜.’ 원래 한글 카피는 직역 수준의 영어 번역으로 미국에선 이해 못했고, 자기네 식으로 이해한 카피를 또 자기네 식으로 일어 번역을 해서 보낸 것이다. 일본 본사에서 받은 건 미국식으로 쓴 일어니 뭔 이해가 되겠나. 한국에선 전혀 이해안 되는 일본식 한글 카피가 컨펌 카피로 온 것이다. 그때부터, 회사에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을 찾아 번역을 맡겼고, 필요에 따라선 합작사인 일본 광고회사의 한국 직원을 통해 일어 번역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카피를 썼다고 하자, 영어로 직역하면 뭔 말인지 모른다. 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의 비슷한 속담을 찾아 쓰는 게 더 낫다. 영어에서 일어로 바꿀 때도 역시 마찬가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동안은 헤드라인 중 한두 개는 영어로 쓰는 전략을 가지고 갔다. 쉽게 팔리더라…나 한글 카핀데.


도요타 진출 1주년 광고 - 영어 H/L                                      도요타 할인혜택 광고 - 영어 H/L


부품과 자동차? 타이어와 자동차? 어떻게 구별을 합니까?
부서를 옮겨도 자동차 광고주는 끈질기게 쫓아온다. 자동차 말고 다른 품목도 해보고 싶다며 팀장님에게 끈질기게 어필한 끝에 옮기게 된 팀. 분명 자동차 관련 품목이 없던 팀이었다. 얼마 있다 모비스를 하랄 때는 ‘어머니나! 어머니나! 차를 빠져 나왔더니 부품을!! 나 여자카피 걸랑요. 부품이라니!’ 하늘을 보고 부르짖어봤자 뭐합니까. 현대정공이 현대모비스로 이름이 바뀌고 나서 1차 고지광고 후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첨단 부품광고를 진행했다. 타이어광고를 해보면 도대체 비주얼이 자동차광고와 뭐가 다른지 헷갈린다. 부품 광고도 마찬가지다. 부품만 보여주면 첨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퇴짜. 차만 나오면 차 광고냐고 퇴짜. 비주얼에선 모비스의 붉은 색 O을 아이덴티티로 가져가면서, 카피에서는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현대모비스라고 다이렉트로 말해주는 전략을 썼다. 아니면 방법이 없었다. 참, 카피라이터가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바다카피에 부품에 대한 설명을 쓰려면 부품연구소 연구원과 하루 3〜4시간 통화도 불사하는 열의가 있어야 되는 일이다. ‘모듈’이란 단어를 이해 못해서 외국 부품회사 사이트에 들어가 동영상 비디오까지 봐가며 카피를 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이 광고하는 제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카피를 써야 제대로 된 카피가 나온다는신념을 확실하게 심어준 광고다. 흔히 말하는 B2C 광고가 아닌 B2B 광고 담당 카피라이터의 슬픔이기도 하지만….


현대모비스 Print                                                                                                       현대·기아차 신문광고

15초 만에 카피로 첨단부품을 다 설명해 달라!
그것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때로는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광고주가 준 자료와 사전에 나온 설명을 그대로 쓰자니 소비자들은 이해를 못할 것이고, 쉽게 이야기를 하자니 무작정 길어지고. 딜레마에 빠진다. 경험상 그럴 때는 카피를 쓰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이야기해도 모른다. 3박 4일 공부한 카피에게 어려우면 15초를 힐끗 보고 지나가는 소비자는 절대 절대 알 수 없다. 현대모비스 CF가 바로 자동차 안의 첨단 컨트롤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카피를 쓰다가 모든 사람들의 100% 만장일치로 카피를 완전히 거둬낸 경우이다. 슬로건만 들어간 케이스.


현대모비스 TV-CF         여: 모비스 남NA : 자동차 안에 첨단기술 Inside Your Car 현대 모비스

한 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
한 번 자동차 카피는 영원한 자동차 카피다!!!
첫 번째 회사를 옮겼을 때, 자동차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것도 재미난 소형차나 아반떼급이 아닌, 그랜저 언저리의 자동차를 말이다. 기업PR도 담당한다는 뜻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을 하게 되셨다. 분명 대통령의 방북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전날 새벽 5시 기획으로부터 온 전화 한 통. “자동차 본사 가서 카피 써야 하니까 지금 회사로 나와라.” 멍한 상태에서 들어간 광고주. 헉!! 사장님 앞에서 차장님과 앉아 아이데이션을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광고주 앞에서 카피를 써 봤다. 카피라이터는 시장을 보는 눈도 라이팅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때에 따라선 강한 담력과 순발력이 더 좋아야 할 상황도 생긴다. 한 시간 동안 앉아서 쓴 수많은 카피 중에 선택된 헤드라인은 ‘대통령 할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디자이너가 그림을 쓱쓱 손으로 그려서 컨펌 받고, 촬영에서 원고출고까지 7시간 걸린 광고다. 마지막에 헤드라인과 서브헤드가 바뀌어서 집행된 광고.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 카피다.

 

심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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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기가 제일 어렵다. 특히, 크리에이터들은.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