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 너는 어떻게 카피가 됐니? - 헤드라인 한 줄만 쓰면 돼!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너는 어떻게 카피가 됐니?  
집 나간 광고 카피 쓰기 

 

1년이 넘게 연재됐던 ‘너는 어떻게 카피가 됐니?’가 시즌 1의 마지막회를 맞이 했습니다. 아직 원고를 넘기지 않은 상태니, 첫 문장을 본 저희 회사 사보 담당자 분께서 기겁을 하시겠네요. "마지막이라니, 그럼 다음부터 이 코너 자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미리미리 상의를 해야지 무작정 원고에다 이렇게 질러도 되는 겁니까?” 항의전화가 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시즌 1의 마지막 회’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시즌 2는 계속됩니다〜.

 

집 나간 광고!
카피라이터가 진짜로 헤드라인 한 줄만 쓰면 되는 광고를 하기도 한다. 바로 집 나간 광고의 카피를 쓰는 것. (집 나간 광고가 뭐냐고요? 어려운 영어로 하면 OOH: Out of Home, 일명 ‘집 나간 광고’입니다). 보통의 제작팀에선 OOH 광고의 카피를 쓰는 일은 드물다. BTL팀이나 프로모션팀에서 알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피라이터 입장에서 보면 카피보다는 비주얼이 더 임팩트 있게 보이는 OOH 광고가 매력적일 리 없다. 나 역시 ‘카피가 무슨 OOH를 해!’ 하는 마인드였다. 그러다 우연히 외국 광고를 보았다. '우와〜 죽인다. 카피도 크리에이터다. 비주얼 아이디어를 내자!’ 그러면서 해보니 매력적이다. 아주 푹 빠져서, 드디어는 OOH를 많이 하는 팀으로 옮겼다. 3년 정도 OOH의 끌을 팠다. 기존 TV나 인쇄들과 다른 카피의 틀도 나름 만들었다.

 

카피를 버려라! 브랜드 네임으로 충분하다
여기 XNOTE광고가 있다<그림 1, 2>. 건물 위, 야립광고다. 야립광고는 고속도로·국도·지방도 등의 도로변에 간판을 설치해서 차에 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법률적인 용어로는 어찌되나 찾아보니 ‘기금조성용 옥외광고’라 한다.
XNOTE 야립광고는 카피가 없다. 흔히 카피의 마지막 보루이자 정수라는 슬로건도 없다. 오직 브랜드 네임만 있을 뿐이다. 야립광고는 카피가 많이 필요 없다. 아니 카피를 되도록 없애야 한다. 시속 60km의 속도로 지나가면서 바디카피 읽을 일 있나요? 아니죠〜. 아이디어가 확실하다면 카피는 브랜드 네임으로 충분하고도 차고 넘친다. 여기서 카피라이터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 하나! 직종상 무언가 카피를 마구마구 써 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슬로건이라도 넣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럴 필요 없다.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카피를 읽을 것이냐. 브랜드 네임이라도 읽어주면 다행!
모든 지하철에는 둥근 기둥이 있다. 통행하는 사람들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지하철 역사를 지지해주는 것이다. OOH 광고 아이디어를 내는 크리에이터들은 그 기둥도 매체로 본다. 하루 유동인구가 몇 천 명이 넘는 지하철의 커다란 기둥을 그냥 놔두는 것은 죄악이다. 바닥에 XNOTE를 래핑하고 기둥은 마치 노트북에서 입체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이 나는 느낌으로 래핑했다. 카피는 역시, 필요 없다<그림 3>.

 

 

슬로건까지는 용서!
OOH광고를 제작할 때는 원판을 먼저 만든다. 실제 집행할 크기로 만드니 한 번 매킨토시에서 열려면 길게는 30분까지도 걸린다. 데이터 양이 크기 때문이다. 비주얼의 작은 디테일까지도 고해상도로 작업해야 한다. 원판을 먼저 작업하고 그걸 출력해서 부착한다.
카피는? 브랜드 네임만 들어가기도 하지만, 슬로건까지 쓰는 경우도 많다. 브랜드의 네임과 브랜드의 컨셉트까지 알리는 광고목표를 가졌다면 슬로건까지 넣는다. 메르세데스-벤츠 M-Class 광고처럼 슬로건은 최대한 짧고 간단명료할수록 좋다<그림 4>.

 

 

발걸음에 카피를 맞춰라!
가만히 앉아서 순서대로 펼쳐보는 신문도 아니고, 틀어 놓으면 알아서 나오는 TV가 아니라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춘 카피라이팅이 필요하다. 특히 목표가 ‘카피 읽는 재미를 주겠다’면 더더욱 그렇다. LG U+ 부산역사 래핑 광고다<그림 5>.
기분Zone 서비스가 부산에서 시작되면서 다른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들이 부산을 떠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밀항을 한다는 컨셉트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서 역사 밖으로 나올 때까지의 발걸음을 쫓아 이야기가 전개됐다. 다행히 래핑을 할 공간이 많아서 스토리텔링 형식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보는 카피는 크기가 커야 한다. 되도록 짧고 구호성이 좋다. 슬쩍 보고 지나가는 카피가 아닌가.
개찰구에서 나오는 입구<그림 5의 1>의 카피는 ‘기분Zone 없는 기회의 땅으로 간다!!’ 밀항의 시작을 알린다. 밖으로 걸어 나가다보면 밀항하던 타 이동통신사가 경찰들과 대치한다<그림 5의 2>. '생존담보 극한대치!’ 카피의 위치는 걸어가는 사람들의 눈 높이가 좋다. 앉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서 밑으로 내려갈 수록 가독성이 떨어지고, 뭔말을 하는지 모르게 된다. 계속 걸어 나가면 밖으로 나오게 된다<그림 5의 3>. '집단밀항 완전실패!’ 밀항은 불법으로 실패하게 된다는 스토리를 전하고 완전히 역사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문을 만나게 된다<그림 5의 4>. 그 때, 종지부를 찍어주는 카피! '기분Zone 강력추천’이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동선에 맞춰 아이데이션을 하고 카피를 쓰는 것. OOH 광고를 진행하는 카피라이터는 직접 매체가 집행될 장소에 가봐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곳을 바라보고 눈높이는 어디에 두는지, 실제 움직이는 동선이 어떤지를 알아야 카피를 쓸 수 있다. 또 가보면 매체에 맞는 타깃이 나온다. 아줌마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에 10대 제품 광고를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저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에 20대 초반 여성이 사용하는 어투로 카피를 쓴다면? 완전 잘못된 카피라이팅이 나온다. OOH 광고는 아이데이션을하기 전에 직접 가서 보라! 컴퓨터 앞을 떠나 바깥 공기를 쐴 기회이기도 하지 않은가?

 

변기로 세상을 도배하라!
TV광고를 캠페인으로 만들면 돈이 든다. 비싸다. 비싼건 힘들다. 카피라이터도 힘들다. 개수가 많을수록 힘든 건 당연한 일! 캠페인 하나 끝내고 나면 죽을 둥 살 둥 한다. 악명 높은(?) 심의 생각해서 표준어 지켜야지, 문법 지켜야지 참 힘들다. OOH는 아니다. 최소한 나 할 때는 그랬다. 컨셉트에 맞게 신나게 써 볼 수 있는 광고다. 재미있게 말이다.
<플러쉬>라는 어린이 영화광고를 준비했었다. 화장실에 빠진 쥐가 하수구를 거쳐 세상으로 나와 겪는 초유치 액션 애드벤처 영화다.
‘오호라〜 재미있겠다!’ 절로 환호가 나온다. 키 비주얼은 변기다<그림 6>. 다른 광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키 비주얼이다. 카피도 신나게 쓴다. 포스터 기본 포맷 카피는 ‘2006년 11월, 별난 세상으로 떠나는 변기뚜껑이 열린다. ’변기뚜껑을 열면‘ 찍 소리 못하고 빠진 쥐〜 빠졌쥐’ 재밌게 말장난도 한다. 다른 하나는 ‘요 변기통 아래 별난 세상에 있쥐〜’ 아니, 언제 이런 카피를 써 보랴! 카피가 최대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매체가 OOH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 골목골목의 집 외부로 돌출된 하수구도 훌륭한 매체다<그림 7>. 하수구로 빠지는 모습으로 랩핑했다. 카피는 매체에 맞춰야 한다. '우리집 변기통 아래 별난 세상으로 빠진 쥐’ 하하하 쓰면서도 신난다!
극장 의자도 마찬가지로 좋은 매체! 재미나다. 변기를 깔고 앉다니. 카피가 필요 할까요? 정답은, 아시죠? 학교 앞 문방구 장난감들 옆은 어떨까? 베리베리 굿 매체다<그림 6>.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리오. 아예 변기를 갖다 놓고 래핑했다. 뚜껑을 실제로 열어보면 역시나 변기통 속으로 빠지는 쥐다. 카피는 많이 써도 된다. 정지된 매체다. 저 문구점 이름은 원래 빵빵이 아니다. 시뮬로 갖고 있으려니 이름을 ‘빵빵문구’로 임의변경 했다. 엘리베이터 아이디어! 문이 닫혀있을 땐 그냥 변기다<그림 8>.
카피도 제목만 심플하게 적어 놓는다. 문을 열면 <플러쉬>의 주인공들이 다 나온다. 영화의 줄거리를 알 수 있게 카피를 정리해서 넣는다.
이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른다. 그 때 읽으라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할 때는 카피를 맘껏 써라! 다 읽는다. 극장 밖 기둥도 역시 매체다<그림 9>. 하수구로 보면 된다. 카피는 짧게 ‘아니 이런 변이!!’ 크하하하〜 그 변 나도 한 번 보고 싶다.

 

극장을 통째로!
강남의 모 극장을 통째로 래핑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극장 하나가 모두 매체다. 진짜 통 큰 광고다. 브랜드는 차애인. 타깃은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다. 차애인은 4가지 종류의 제품이 나온다. 네 제품을 다 광고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차애인이라는 브랜드 하나로 묶이는 컨셉트를 잡아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은 ‘4가지색 사랑.‘ ’차애인(차를 사랑하는 사람)’과 절묘하게 맞지 않는가? 4가지 테이스트별로 각기 다른 사랑의 컨셉트를 잡았다.
으흐흐, 브랜드 네임만 들어가는 OOH 광고도 있지만, 카피가 전체를 끌고 가는 광고도 있다. 바로 이 경우다. 여자들의 마음을 살살 녹여야 하는 광고. 극장 안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할 일 없을 때 읽도록 하는 광고. 카피의 중요도가 장난 아니었다. 몰래 숨어서 읽던 로맨스(?) 소설을 대놓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었던 시기이다. '카피 쓰려면 사랑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보는 거니까 뭐라고 하지 말아요〜’ 솔직히 나중엔 패턴들이 똑같아서 몇 권 읽지도 못했지만, 잠시의 일탈은 소중합니다.
암튼, 사랑에 대한 책을 섭렵한 후에 카피를 정리했다. 초록은 시월애 보성녹차로 순수한 녹차 맛이다. 순수하고 낭만적인 동갑내기 닭살 커플의 사랑 이야기로 풀었다. 파란색은 사랑애 자스민녹차로 뒷끝 없이 쿨한 계약연애 커플의 사랑을 썼다. 붉은 겨울에 다즐링 홍차는 연상연하 커플의 열정적 사랑으로, 노란 시월애 국화차는 남자의 헌신적인 짝사랑을 애잔하게 전개했다<그림 10>. 죽는 줄 알았다. 스스로가 쓰면서 닭살이 돋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가 쓰면서 이걸 계속 써야 하는지 고민도 했었던 광고다. 원판 16개가 모두 완성되는 순간, 책 한권을 보는 느낌이었다. 4커플의 4가지 사랑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비주얼의 힘도 크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게 바로 카피의 파워다.’
카피라이터들이여, OOH를 외면하지 마라. 카피의 힘이 필요한 곳은 아직도 많다. 극장의 동선에 따라 16개 원판이 래핑된 걸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이걸 해 내다니!’ 웬만해선 쉽게 감동하지 않는 연차였지만 눈물이 잠시 글썽였다. 감동 그 자체였다<그림 11>.


카피라이터가 카피를 말하면서 OOH를 예로 들기는 처음인 듯합니다.
저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지만, 카피치고는 참 많은 OOH를 했습니다.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라디오·TV·인쇄의 카피라이팅은 나름의 정리내용이 확실했지만, OOH는 아직 덜 익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매체와 경우의 수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다음, 시즌 2에 몇 번에 걸쳐 제대로 정리해드리죠. 그 때는 한창 이슈가 되는 소셜 네트워크 카피라이팅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드릴게요. 그럼 시즌 2에 뵙죠.


심의섭
Chie Copy | adel@hsad.co.kr 

나를 사랑하기가 제일 어렵다. 특히, 크리에이터들은.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