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2 : 완성도는 ‘결말’에서 나옵니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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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는 ‘결말’에서 나옵니다


신 숙 자

CD / sjshina@hsad.co.kr


유독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고전문학이나 철학서가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필독서로 추천되는 데다 워낙 유명해 읽어야 할 의무감마저 들기도 하지만, 여느 책처럼 술술 읽히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길이가 세 권 네 권으로 이어지면 들여야 할 시간도 길어져, 인내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끝까지 읽어내는 데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주인공이 과연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 저자의 이야기는 어디서 어떻게 끝을 맺을지, 내 기대와 생각과 맞아 떨어질는지…. 결말은 그 책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간혹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잘 이어지다가도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플랫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경우, 이야기는 실망으로 끝납니다. 여운이 남고 누구에게나 생각할 화두를 새롭게 던지는 결말이라면 걸작이 되지요.

영화도, 책도, 그리고 광고도 그렇습니다.‘ 이야기’라는 속성을 지닌 것은 모두‘ 결말’이 잘 끝나야 완성도 높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스릴 넘치는 이 광고는 무슨 광고일까요?

광고는 <저수지의 개들>을 패러디한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어둑한 지하실로 보이는 장소. 경비원은 의자에 묶여 있고, 입에는 테이프까지 붙여졌습니다. 갱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 경비원에게 석유를 들이붓습니다. 긴박감 넘치는 음악은 경비원이 위험에 빠졌음을 알리죠. 경비원은 두려움에 떱니다. 남자는 그런 경비원의 모습을 즐기듯 여유롭게 담배를 피워 뭅니다.담배 연기가 남자의 어깨 위로 자욱해집니다. 그리고 여느 영화장면이 그렇듯 입에 물었던 담배를 석유가 흥건한 경비원을 향해 던지죠. 곧 큰 불길과 함께 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의외입니다. 석유 위에 던져진 담배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 거죠. 놀란 경비원과 남자는 서로를 마주봅니다. 그 남자가 던졌던 담배엔 불이 붙지 않았던 거죠. 그때서야 남자는 셔츠 주머니를 뒤집니다. 남자는 뒤늦게 라이터를 찾는 듯 계속 자신의 몸을 두리번거리고, 의자에 묶인 경비원은 묶인 채로 뒷걸음질 치며 탈출을 시도합니다. 스릴러에서 갑자기 코믹으로 바뀐 순간입니다.

과연 이 광고는 어떤 제품의 광고일까요? 라이터가 필요 없는 전자담배 광고입니다. 남자기 피웠던 담배는 전자담배라 위험한 결말을 이끌어낼 수 없었던 거죠. 라이터가 없이 즐길 수 있는 전자담배의 특성을, 예측할 수 없었던 반전으로 전달합니다. 인상적인 결말로, 인상적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있습니다.‘ 7 Stripe’의 광고였습니다.



티셔츠들은 왜 하늘을 날아가는 걸까요?

해가 뉘엿뉘엿 지는 바다, 그 위를 날아가는 평화로운 새떼들. 새들은 바다를 지나 눈 쌓인 언덕을 계속해서 날아갑니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철새 같습니다. 불어오는 칼바람을 피해 잠시 언덕에 내려앉는 새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새가 아닙니다. 새처럼 도열해 하늘을 난 건, 티셔츠들이었던 겁니다. 마치 새들의 움직임을 보듯 정교하게 움직이는 티셔츠들은 혹독한 겨울 숲을 지나고 겨울 강을 지나며, 총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가 하면 뱃고동 소리에 하늘로 흩어집니다. 그 움직임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며 날아가는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합니다.

티셔츠의 항해는 웅장합니다. 그렇게 몇날며칠을 여행한 셔츠들은 마침내 영국의 한 마을에 도착하죠. 그리고 열려 있는 어느 집 창문으로 떼지어 들어갑니다. 오랜 항해를 자축하듯 방안을 한 바퀴 돈 후 나란히 옷장 속에 들어가 정돈됩니다.

이 광고는 ‘joy of storage’를 얘기하는 이케아(IKEA)의 옷장 광고입니다. 멀리서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런던의 이케아 옷장으로 날아온 옷들. 이야기의 완성도를 더하는 옷들의 섬세한 움직임과 묘사, 웅장한 그림, 그리고 광고가 주는 반전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IKEA는 늘 높은 완성도로 보는 즐거움까지 주는 광고를 만듭니다.


맥도날드의‘ loving’엔 어떤 결말이 있을까요?

“I’m lovin’ it”

맥도날드의 오랜 슬로건입니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든 소비자를 대할 때‘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기업은 없습니다.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누구든 고객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죠. 하지만 맥도날드는‘ 실천’과‘ 관심’,그리고‘ 애정’이라는 노력을 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맥도날드엔 맥도날드 간판 아래 사인보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Boston strong’,‘ Open’,‘ We remember 911’,‘ Pray for the rescue of the Miners’……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듯한 것도 있고,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숨은 내용을 살펴보면 맥도날드의 노력은 놀랍습니다. 폭발이 일어난 보스턴에 힘을 주기 위해 음식과 커피와 물을 제공하는 등 위기 대처에 함께했던 보스턴 맥도날드.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강타했을 때, 24시간 매장을 열고 그 지역과 함께했던 인근 베로비치(Vero Beach)의 맥도날드.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911을 함께한 뉴욕의 맥도날드. 실제로 복구기간 동안 2만 개의 물, 60만 개가 넘는 식사를 제공했으며, 피해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복구에 힘쓰는 소방대원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꾸준히 지역 커뮤니티와 희생자 가족을 후원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서머셋(Somerset)의 맥도날드는 홍수로 갇힌 광부들의 구조작업이 진행되자 구조대원과 가족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며 커뮤니티를 도왔다고 하고요. 이 외에도 맥도날드 매장들은 수많은 메시지와 행동으로 지역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인보드에 짧게 올린 몇 줄의 단어들이 더욱 진정성 있게 보입니다. 광고 캠페인으로 시작하고, 짧은 응원글로 시작했지만 말로 끝나지 않고 실천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 미국의 맥도날드는‘ 진짜’ 미국인의 맥도날드인 듯합니다.


좋은 결말로 가는 길


기대하는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결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합니다. 영화뿐아니라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습니다. 결말을 알고 보면 과정이 시들해지고 힘이 빠집니다. 해피엔딩이 정해져 있다면 그 과정에 그만큼 노력을 쏟지 않을 것이고, 새드엔딩이 기다린다면 그 결말을 향해 가는 지금부터 힘이 빠지겠지요. 누구나 결말을 모르기에 노력하고, 결말을 모르기에 다시 일어섭니다. 사람을 평할 때도 끝이 좋아야‘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고, 과정이 좋았어도 끝이 좋지 않으면 외면하게 됩니다. 그만큼‘ 결말’은 모든 것의 완성도와 가치를 결정짓는 역할을 합니다.

광고는 짧습니다. 때론 기승전결을 다 담기엔 무리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말로 가는 기대감 혹은 호기심을 충분히 담을 수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충실하게 완성도 높은 결말을 내는 광고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어떤‘ 결말’을 낼지, 그 결말을 위해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지……

좋은 광고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인 듯합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