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4 : 아빠, 아련한 이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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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련한 이름


구 선 아

BTL프로모션팀 차장 / koosuna@hsad.co.kr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뭉클해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삶을 가족에게 온전히 쏟아 왔던 희생의 모습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오래 전부터‘ 엄마’는 광고와 영화·문학에서 희생·모성애·가족에 대한 사랑 등의 감동 소재로 다양하게 그려져 왔다.

그러나‘ 아빠’를 다룬 콘텐츠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가부장적인 엄한 아빠의 모습 정도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는‘ 아빠’에 대해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권위적이고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빠가 아닌, 가족을 위해 무거운 짐을 어깨에 이고 살아가는 아빠, 하루하루 전쟁같이 살아가는 아빠, 친구처럼 다정하진 못해도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말이다. 국내에서는 경제위기로 가족의 해체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되던 1996년, 김정현 작가가 발표한 <아버지>라는 책이 그 시작이었다. 이어 조창인 작가의 <가시고기>가 출간되며 영화로도 제작됐다.


광고 속 우리아빠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에서‘ 아빠’를 키워드로 한 콘텐츠가 등장해 크게 히트 친 것은 BC카드 광고로 기억된다.

등장했던 CM송이 아직도 불리어지는 것을 보면 CM송의 각인효과의 무서움과 동시에‘ 아빠’ 콘텐츠에 대한 니즈와 쓰임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열풍’이라고 할 만큼 소설과 드라마는 물론, 천만 영화 <국제시장>과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를 부탁해> 등 각종 예능과 광고까지‘ 아빠’가 새로운 문화 코드가 됐다.

그리고 여기, SNS 유저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한 영상이 있다. 나의 한 지인은 이 영상을 보고 아빠한테 카메라 한 대를 사드리며 함께 여행하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캐논의‘ 아빠의 셀카’ 바이럴 영상이다.



지난 겨울, 난 아빠에게 카메라를 선물했었다. 

자긴 이제 프로작가라며 여기저기 찍어대는 바람에 가족들은 날 원망했다.

고3 용현이는 특히나 아빠가 자길 찍는 걸 싫어했다. 엄마는 몰래 찍지 말라며 김장하던 손으로 카메라를 만져버렸고 세 시간동안 아빠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렌즈를 샀다며 몰래 찾아온 아빠가 정말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빠의 사진은 생각보다 참신하고 귀엽고 아련했다.

그러다 보게 된 ‘아빠의 셀카.’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우리가 전부였던 아빠, 강한 척 늘 약하고 외로웠던 사람.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렇게 떠나는 거야? 보고 싶다. 남는 건 이 사진들 뿐이네’. 지금이 가기 전에.


아빠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보다 작지 않다.‘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 사내놈이 왜 우냐’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우리의 아빠들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혹은 쑥스러워하며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를 너무 늦게 깨달았고, 어쩌면 너무 오래도록외면했는지 모른다.



일본과 미국 대표작가가 그린 아빠

문학작품 속에서의 아빠도 온전히 따뜻하거나 무쇠팔 무쇠다리이지만은 않다.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로드(The Road)>를 보면 대재앙 이후 문명과 자연이 모두 사라진 지구에서 새로운 삶을 위해 남쪽으로 길을 떠나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예전 지구의 모습을 모르는 아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예견하고 혼자 될까 두려워하는 아들에게 아빠는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너는 불을 옮겨야 한다’라고 말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계속 말해주지만, ‘있지도 않았던 세계나 오지도 않을 세계의 꿈을 꿔서 네가 다시 행복해진다면 그건 네가 포기했다는 뜻이야. 이해하겠니’ 처럼 희망과 꿈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사냥꾼을 만나고, 갓난아기를 구워먹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매일 피가 나오는 기침을 하는 아빠, 총 한 자루에 의지해 오롯이 아들을 위해 남쪽으로 걷고 또 걷는다. 아빠는 당장 당신의 전부인 아들을 목숨 걸어 보호하지만, 위험한 상황을 지나고 나서도 안심할 수 없어 비참하다.

세상은 없지만, 아빠와 아들에게는 최소이지만 전부인 세계,‘ 서로’가 있다. <로드>는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묵시록적 비전이 가득하지만, 나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 가장 크게 그려지는 책으로 꼽는다.


남자가 소년의 손을 잡으며 씨근거렸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길을 따라가다 보면 뭐가 나올지 몰라. 그렇지만 우리는 늘 운이 좋았어. 너도 운이 좋을 거야. 가보면 알아. 그냥 가.괜찮을 거야. 


이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아들에 의해 성장하는 아빠의 모습을 담은 책이 있다. 추리소설부터 스릴러·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50여 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한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Higashino Keigo)의 <도키오>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책도 썼다니,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조금 놀라웠다. 그래서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되돌아가거나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 슬립(Time Slip) 소재라니.

<도키오>는 선천적 불치병으로 열일곱 나이에 식물인간이 된 아들이 ‘태어나게 해주어 고맙다, 행복했다’ 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스물세 살의 아빠를 만나려고 시간을 떠나 온 이야기이다. 시간을 떠나 아들이 만난 과거의 아빠는 멋진 남자가 아니라 초라하고 형편없는 남자였다. 낯선 아빠의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아들은 짧은 시간 동안 아빠의 삶을 응원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때 그가 내게 말했어. 계속 열심히 살아주세요. 분명 훌륭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하고 


아빠는 미래의 아들인지 모르고 도키오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진다.

식물인간이 되어 병상에 누워있는 도키오를 보며 젊은 날 만났던 그 젊은 청년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마 자신보다도 더 진심 어리게 바라고 응원한 그 젊은 청년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도키오>의 최고의 문장은 단연 마지막 문장이다.‘ 도키오! 아사쿠사 놀이공원에서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 문장이지만 스포일러는 아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이 가슴 먹먹해지는 문장이 어떠한 의미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테니.

요즘의 아빠들은 당신들의‘ 아버지’들과 달라지고 있다. 친구처럼, 때로는 형이나 오빠처럼 가족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나는 왜 달라지려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들이 더 아련한 것일까. 약간은 무뚝뚝한, 사랑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아빠의 모습들이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족들에게는 흔들리는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아빠. 엄마라는 단어가 애틋하다면, 아빠라는 단어에는 아련함이 있다.

오늘은 아빠에게 애교 섞인 전화 한 통을 꼭 해야겠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