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 동양적 상상력의 집대성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동양적 상상력의 집대성


구 선 아

BTL프로모션팀 차장 / koosuna@hsad.co.kr




‘신화’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설마 최장수 아이돌 보이 그룹‘ 신화’는 아니겠죠. 그렇다면‘ 신화; myth’는 어떠한가. 아마 대부분이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대부분 서양 신화만을 보고 듣고 읽어 왔다. 그래서인지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무언가의 컨셉트를 찾을 때, 인문학적 근거나 근원을 찾을 때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먼저 찾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웬 신화 타령인가 싶겠지만, 스토리가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요즘 상상력과 새로운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원천으로 인문학자나 크리에이터들은 신화를 꼽고 있다. 더군다나 가장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에게 살아남은 이야기들이니 어느 정도 검증된 스토리들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먼저 떠올릴까. 서양과 동양의 신화 모티브나 이야기의 키워드는 서로 비슷한 것도 많은데 말이다. 추측하건대,아마 동양과 한국의 신화나 전설 혹은 설화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상황은 머지않아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서양 신화에 비해 더 자연적이고 통합적 사고를 하고 있는 동양 신화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시작했으므로.





상상력과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한《산해경(山海經)》

한 달 전부터 EBS 인문학 특강에서는 정재서 교수가 <동양 신화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동양 신화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이 강의를 통해 요즘 흠뻑 빠져 있는 이 책을 만났다. 바로 상상력과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산해경(山海經)》이다.

《산해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 전에 엮어진 중국 신화를 집대성한 책이다. 기원전 3~4세기에 쓰인 걸로 알려져 있으며, 본래 고본은 32권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전한(前漢)의 유흠(劉歆)이 남긴 18권이다. 그 가운데 <남산경>·<서산경>·<북산경>·<동산경>·<중산경>을《 산경》이라 하고, 그밖에 <해외남경>·<해외서경>·<해외북경>·<해외동경>·<해내남경>·<해내서경>·<해내북경>·<해내동경>·<대황동경>·<대황남경>·<대황서경>·<대황북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내경>을《해경》이라 분류하고 있다. 이는 각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지리적 위치와 방향에 따라 나눈 것인데,《산경》은 산천과 광물·신괴 및 제사에 관해 기록했다. 총 26조의 산맥과 447개의 산이 등장하며, 이 중 실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140좌나 된다고 한다. 수계는 258곳, 땅은 348곳, 광물은 673곳, 식물은 525곳, 동물은 473곳에 기록돼 있으니실로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서쪽지방에 있는 화산의 산줄기는 전래산(錢來山)에서 시작된다.이 산에는 푸른 소나무와 비취빛 측백나무가 무성하고, 산 아래에는 세석이 많이 묻혀 있다. 세석은 목욕하며 때를 밀 때 편리하게 사용된다.(중략) 서쪽으로 45리를 가면 송과산(松果山)이 나온다. 관수가 이 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가서는 위수로 들어간다. 물속에는 구리가 많다.

- 《산해경(山海經)》<서산경(西山經)> -


《산해경》에는 중국의 수많은 기이한 동물과 사물·자연·인간, 그리고 신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처럼 세계를 움직일만한 능력을 가진 신의 이야기도 있고, 동물인지 신인지 모를 캐릭터들도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때로는 서양 동화 속에 등장했던 캐릭터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도 많다.


능어는 사람얼굴을 하고 있으며 손도 있고 발도 있지만 몸은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다. 이 물고기는 바다에 사는데 그것이 바로 인어다. 인어가 울면

눈물엣 진주가 떨어져 내린다. 그들은 또 육지에 사는 사람처럼 베를 짤 줄 안다. 그들은 가끔 물에서 나와 육지의 인가에 살면서 자신들이 짠 비단을

판다. 그들은 모두 아름다운 여인으로 피부가 옥처럼 희고 긴 머리를 어깨에 드리우고 있는데, 머릿결이 말꼬리처럼 검고 빛나며 5, 6척은 될 정도로 길다.

- 《산해경(山海經)》 <해내북경(海內北經)> -


이처럼 유난히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과도 관련이 있으며, 동양뿐만이 아니라 서양 신화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토테미즘은 인류가 시작된 때부터, 그리고 샤머니즘은 그 경계가 희미하긴 하나 청동기시대부터 나타났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종교의 다른 형태라 할 수도 있겠다.《 산해경》이 또 흥미로운 건 고대 한국을 상징하는 이야기도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잡아먹는다.

두 마리의 무늬 호랑이를 부려 곁에 두고 있다.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薰華草)라는 식물이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시든다.

- 《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海外東經)> -


훈화초는‘ 영원히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의 무궁화를 이르는 말이다. 이 대목을 보고 좀 놀라왔던 건 동방예의지국과 무궁화, 군자국과 호랑이라는 키워드 등이다. 몇 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컫는 단어들이 주변 국가에 존재했고, 그 쓰임과 상징하는 의미가 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이와 같이《산해경》은 신화서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리·민속·종교·역사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중국의‘ 박물지’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하고 있는《산해경》은 책 속의 정보만신뢰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엄청난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셈할 수 없는 인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거니와, 하물며 나는 이 책이 예술적으로 읽혀지기까지 하니 실로 대단할 수밖에 없다. 수백개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수백 개의 이야기가 존재하며, 수백 개의 장소가 눈앞에 그려져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책이다. 단, 아무리 재미있어도 중화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주의가 필요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책이 있다. 소중한 역사서이자 불교 문화서이며 민족 신화와 설화가 들어있는 우리 고대 문화서이자 수백 개의 이야기를 가진 문학서이기도 한, 2003년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는 고구려·백제·신라뿐 아니라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우리 민족의 오랜 시간을 담은 책으로, 참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두 권 다 양이 꽤 많아 쉬운 일은 아니며, 나도 꼼꼼히 완독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한 번쯤은 권하는 바이다.


“신화적 상상력에는 세상의 이치가 담겨 있다.

신화를 통해서 인간 중심의 자연관·세계관을 반성하고 재성찰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세상에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정재서 교수가 말한 것처럼《산해경》 혹은 수많은 신화서를 통해 진정 이 시대에 대한 반성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