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4 : 너는 매체 분석을 하도록 해, 나는…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너는 매체 분석을 하도록 해, 나는

 

매체에서 광고하기

 

박 두 현

글로벌미디어팀 차장 / doo.park@hsad.co.kr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가장 먼저, 특화 분야인‘ 인공지능이라는 머리 아픈 기술’ 자체를 대중의 이슈로 만드는 구글의 아젠다 세팅 능력에 놀랐다. 그리고 이슈가 된 아젠다를 스토리로 재생산해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인간세상을 대표하는 가장 복잡한 게임‘ 바둑’,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다루는 천재 한 사람‘ 이세돌’, 그런 그에게 겁 없이 도전한 인공지능.

누군가는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매트릭스>를 떠올릴 법한 얘기다. 영화 마니아들이 창조한 암울한 미래영화 프리퀄(Prequel)의 어딘가는 아마도 바둑이 아니었을까? 본능적인 오싹함이 먼저 생각났다.

 

 

현실 속 판타지

 그런데 여기까지가 아니었다. 구글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의 창시자가 사실 체스 챔피언이었다는 둥, 인공지능이 자가발전기처럼 자기와의 게임을 통해 경험한 대국 횟수가 몇 십 만 번에 이른다는 둥 하는 얘기는 단순히 인간과 기계의 싸움이 아니라 파면 팔수록 뻗어나가 끝없이 재생산되는 하나의 SF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바둑을 두는 컴퓨터가 인공지능이냐 아니냐는 지금으로선 차치할 문제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현실 속 판타지에 열광하고 있다.

이렇게 바둑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판타지와 별개로 언론들은 다른 각도에서 여러 형태의 인공지능 관련 기사들을 써냈다.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특정 직업을 대놓고 제목으로 만든 기사가 특히 눈에 띈다.‘ 판사들은 왜 이세돌의 승리를 간절히 원했을까’ 라는 기사는 인공지능의 영역을 인간 최고의 지성인‘ 법’으로까지 확장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아마도 근래 발생했던 법조계 안팎의 스캔들(전관예우·법조 브로커 등) 때문에 법조인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최근 상황에서 ‘사람을 믿느니 차라리 기계가 낫다’는 민초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기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인공지능으로 예견된 직업의 변화는 법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법은 인공지능이 점령할 정말 맨 나중의 분야라 생각된다. 그보다는 일반적인 직업 중에서 간단한 알고리즘만으로도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부분이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애석하게도 그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광고다.

 

 

 

 


인공지능·숫자·미디어

 인공지능의 대체 분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주로‘ 숫자’로 대변되는 영역이다. 대표적으로는 금융·회계 분야일 텐데, 이 뿐만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로 꽉 차 보이는 광고업계에도 숫자가 주로 쓰이는 업무가 있다. 바로 미디어 분야다. 방영된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시청률’, 집행 후 매체예산이 잘 쓰였는지, 혹은 전보다 나아졌는지를 가늠하는‘ 효율’, 그리고 최근에는 디지털과 맞물려 구매나 다운로드로 연결되는지를 보는‘ 전환율’ 등이 이런 미디어의 대표적 숫자들이다.

보통은 이런 식의 자료를 가지고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의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데, 이런 전쟁 끝에 나온 결과 숫자를 가지고 매체 플랜을 구성하고, 구성 결과를 토대로 매체와 구매를 협의하게 되는 일, 즉 분석과 실제 집행의 작은 괴리감을 채워 나가는 것이 미디어 담당자들의 주된 역할이다. 그러나 최근 대두되는 프로그래매틱 바잉(Programmatic Buying) 등의 매체 시스템은 인공지능처럼 해석되며 미디어 담당자의 역할에 물음표를 던진다.

 

매체 시스템의 개념은 디지털 광고에서 먼저 시작됐다. 내가 쓰는 PC 혹은 내 손 안의 스마트폰은 단지 하나의 매체 플랫폼이지만 그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매체의 수는 사람마다 달라, 수억 단위에 이를 정도다.

따라서 많은 디지털 매체는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데, 예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거대 포털이 일찍이 자리를 잡아 2010년대 이전까지 PC의 시대에는 자동화된 매체 시스템이 필요할 만큼의 불편함이 없었다. 단지 검색광고 쪽에서만 한두 가지 제한된 시스템 하에서 매체 시스템이 활용됐고, 그마저도 사용자의 실제 의도인 검색을 경매방식이 적용되는 시스템 안에 좀 더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노출시키는 데만 목적을 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데이터를 모아서 처리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제약의 해소로 속도와 저장공간의 한계가 없어지고, 원활한 매체운영을 위해 광고주와 매체 모두 시스템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매체 시스템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단순한 수요·공급의 매칭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과 기호를 판단해 단순한 노출에서 벗어나 똑똑한 노출을 획기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십만 개 이상의 알고리즘으로 페친 사이의 콘텐츠를 선별해 노출시키도록 설계돼 있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은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들을 세세한 카테고리 분류 속에서 제대로 짚어낸다. 거의 인공지능 수준의 로직이다. 이런 매체 시스템은 이제 모바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 방송 프로그램, 혹은 채널의 영역까지 적용하기 위한 시도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까지 국내 방송광고 시장에서는 개념 정도만 논의되는 수준이다.

 

 

본질은 우리의 결정이다

변화는 생각보다 매우 빠르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매체 시스템 방식의 전환 이전에 과연 매체 이용자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도 사실 큰 관심이다.

클레이 셔키(Clay Shirky)라는 미디어학자의 한마디,“ 혁명은 한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수용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습관이 사회에 확산될 때 일어난다”는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바일 혁명’이라 기억될 최근의 몇 년이 왜 모바일 매체 중심의 시대로 직행하지 못하는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사용자의 습관화’다. 아직 진행중인 얘기지만 모바일 중심의 매체 습관화가 여러 매체 시스템의 편의성에 도움을 받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다가올 경우, 방송 매체의 시스템화, 인공지능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모바일의 시스템 안으로 종속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갑자기 목이 써늘해지는 느낌이다.

글을 쓰는 와중에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알파고에 첫 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청난 환호다. 화면에 있는 모든 인간들, 그리고 나 역시 기계에 대한 인간의 승리라는 의미로 이번 게임을 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미디어 시스템을 포함해 인공지능은 나쁘거나 좋을 건 없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선입견들을 빼고 본다면 인공지능이 해야 할 일, 그리고 인간이 가져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올 뿐이다.

단순히 직업 하나 잃는 문제로 끝내지 말자. 시스템이 되고 인공지능화되는 매체의 본질은 우리의 결정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