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4 : 인간이 개보다 나은 존재일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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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일 | 팀 프리뷰 대표 / micael72@hanmail.net
대안공간 ‘팀 프리뷰’ 대표 및 디렉터로 활동중입니다. 국내 미술계 신진작가 발굴 및 교류, 새로운 미술 유통 시스템을 통한 시각예술 대중화 인프라 구축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행복한 희망과 사랑을 전하고 나누고자 노력중입니다.
 
 


기호, ‘편견 없는 시각’으로 봐야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나 기호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기호란 인간의 지식·의지·감정을 어떤 물리현상을 통해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방식’이라고 정의된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지금 내가 여기 쓰고 있는 문자도 하나의 기호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언어기호를 통해 지식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분노할 경우 표정에 그 감정이 드러나는데, 이 때 분노하는 ‘표정’을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 창작과정에서 기호의 적용과 작품의 전개 속에는 인간 내부세계의 경험에 의한 관념과 이미지 등의 여러 요소가 들어있다. 예술가는 이곳에서 기호 요소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것을 구상하는 자신만의 개성적, 필연적 방식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호는 예술가의 관념과 개인적인 내면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편견 없는 시각이 필요하다.
결국 기호는 사용자의 마음대로 연결된다는 자의성을 지닌다는 것인데, 예술가의 자의에 의해 기표가 설정되며, 이러한 자의성에 의해 다른 무수한 기호들이 생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호는 단일하거나 다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술가가 만든 시각예술작품의 기호가 보는 사람의 과거 문화적 경험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인식·해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윌리엄 웨그만 작품’ 감상법
윌리엄 웨그만의 작품 <엄마와 딸(1994년)>의 경우 자신의 애완견 만 레이를 모델로 사진작업을 하는데, 여기서 보이는 1차적인 기호는 단연 ‘애완견 만 레이’이다. 그리고 2차적인 기호로 만 레이가 보통 개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고, 사람의 옷을 입고 마치 사람인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만 레이를 의인화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개를 마치 사람처럼 표현해 기존에 인간이 동물에 갖고 있는 우월감을 전복시키는 효과를 낳은 것이다. 특히 <산책하는 사람(1991년)>에 ‘개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귀여우면서도, 개를 다스리는 인간을 개로 표현했다는 부분에서 관람자들에게 과연 인간이 개보다 결코 나은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상상력을 체험케 한다.
회화에 있어 중요한 조형요소인 색채와 형상은 ‘감각의 기호’라 할 수 있다. 즉 평면 공간 위에 예술가 자신의 내적 갈등과 정신적 감동을 색채와 형상의 기호로 대신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듯 회화의 기호는 실용적이거나 기능적인 기호보다는 내적인 표현요소의 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볼 때 회화의 기호는 주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에 ‘비언어적(언어·문자를 제외한 그 밖의 모든) 기호’로 볼 수 있다. 대중들이 흔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현대미술을 기호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가 보면 예술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앤디 워홀의 작품 <메릴린 먼로 이면화(1962)>을 보면 하나의 이미지가 무한 반복되고 있는 형상을 볼 수 있다. 여기 쓰인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메릴린 먼로를 따왔지만, 그 인물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매스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작품에 등장시킨 것이다. 즉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는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의미하는 기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메릴린 먼로(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의 이미지)→복제→대량소비되는 현대사회’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대 미술작품을 볼 때 ‘일단 드러난 형상이 무엇인가’하는 1차적인 부분을 살펴본 후 그 형상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우선 파악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시각예술작품의 기호는 관람자의 과거 문화적 경험이나 체험에 따라 다의적이고 가변적으로 재해석이 가능하다.

‘상징’은 기호 이상의 연상 유도
현대미술의 또 다른 중요한 표현 방법적 요소 중 하나는 ‘상징성’이다. 기호의 경우 그 대상, 즉 표현물과 의미가 1:1로 대응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상징의 경우에는 의미가 좀 더 포괄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대상을 의미언어로 상징화 또는 포괄적 구성화를 시킨다는 것이다. ‘고양이’라는 낱말은 실제 어떤 고양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양이라는 관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기호와 상징이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사회의 주관적인 보편 집단학습규율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다.
‘상징’은 그리스어의 동사 ‘집합하다(심발레인; Symballein)’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일로 헤어지게 되면 동전을 나누어 갖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때 그들은 동전조각을 맞추어 봄으로써 징표로 삼았다. 이 징표는 ‘무엇을 대신하는 상징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상징은 원래의 ‘집합하다’를 의미하지만, 하나의 징표로서 어떠한 의미를 나타내는 형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원적 의미로 본다면 상징(Symbol)은 기호로서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개념이 단순한 낱말과 동일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나 설명으로 직접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호일 것이다. 그러나 상징은 그것을 매개로 하여 기호 이상의 감정적 생각이나 상상력·욕망·문화적 의식·종교적 제의 등 많은 연상을 하게 만든다.
현대 미술작품 속에서 상징은 어떤 사물 자체의 의미를 유지하지만,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1:다(多)의 암시적, 다의적 특징을 가진다. 정사각형을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은 네 변의 길이가 모두 같고, 네 각의 크기가 모두 같은 사각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함·안전성 또는 숫자 4를 나타낸다. 직사각형은 때때로 가장 이성적으로 가장 안전한 것을 상징하며, 그것은 지면에 서있는 확고한 대상물에 적용된다. 이처럼 상징은 단순히 대상물을 지시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내면의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념’이란 구체적 대상물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되는 표상·상념·개념을 일컫는데, 그 관념은 대상물과의 공통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상징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상징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성별, 문화적 배경, 정치적 성향, 종교, 그리고 성적 편애, 경제적 수준과 같은 요인들을 기준으로 다양하게 읽혀진다.

‘니키 드 생팔 작품’ 감상법
유명한 프랑스 현대미술작가 니키 드 생팔(Nicky de St-Phalle)의 <춤추는 흑인 나나(1981)>는 여성의 신체 변형을 통해 아름다운 몸에 대한 ‘상징성의 고정관념’에 도전한 미술작품이다. 나나의 형태는 분명 여성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 가슴과 엉덩이·허벅지가 매우 강조되어 있고,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옷은 화려한 원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트·꽃 등의 예쁜 무늬들이 그려져 있다. 경쾌한 느낌이 드는 이 작품은 오를랑(Saint Orlan)의 충격적이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표현방식과는 달리 매우 밝고 유쾌하게 보인다. 비록 기존질서에 대한 강한 부정의 메시지로서의 역할은 약할지 몰라도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현대 여성의 신체에 관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날씬한 몸, 우아한 여성’의 이미지는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춤추듯 다가오는 나나는 이미 그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국내 젊은 작가인 김지민의 작품 <The desire #(2008)>은 상품의 ‘라벨’을 소재로, 대중적 아이콘 작업으로 일반인들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을 설치작업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진`-`디아섹이라는 매체로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세대별 사람들이 열광해 있는 대표적 기호품을 하나의 커다란 원을 만들어 사진으로 제작했다. 맥도날드·해피밀·닌텐도 게임·스포츠카 등은 현대인의 소비욕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인류가 사물을 만들어 문명을 일으킨 후 물질 위주의 환경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는 무언가에 ‘홀릭’되어 미친 듯이 추구해 가는 물질만능주의 삶이 결국 모두를 사라져 가게 한다는 덧없음을 상징화하고 있다. 그리고 눈처럼 보이는 동심원의 형상은 우리가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물질에 빨려들어가는 탐욕적인 소비유형을 비웃는 듯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 일상 속 예술작품에 차용되어지는 기호와 상징에 담긴 의미를 은유적으로 해석하고 읽어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현대 예술가들은 우리 삶 주변의 전반적인 관심사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적극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외형적으로 드러난 부분을 살피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보면서 해석해가다보면 예술가가 의도한, 또는 의도치 않았지만 그 이상의 재미있는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