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이라 극찬했던 곳. 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 쿠바다. 베일에 싸인 쿠바. 어느 누군가에겐 위험천만한 혁명의 나라로 알려져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지상 낙원으로 인식되어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쿠바는 생각만큼 위험천만한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고 쿠바 가이드북에 소개된 것처럼 아름다운 카리브해 등의 천국으로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극과 극의 상반된 모습을 가진 쿠바. 3주간 쿠바에 머물며 내린 나만의 결론이 있다면 ‘쿠바는 매혹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쿠바가 매혹적인 것은 정열의 춤과 깊은 맛의 재즈 등이 어우러진 그들의 문화 때문이다.
극과 극이 공존, 그래서 더 아름다운
쿠바의 첫 느낌은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거리 곳곳에 즐비한 군장비, 건물과 거리마다 무언가를 감시하는 군인, 체 게바라 등 혁명 영웅들의 동상과 포스터는 사회주의 냄새를 짙게 풍겼다. 하지만 위험한 도시라는 이미지는 반나절만 지나면 깨진다. 아바나의 명소 말레콘 방파제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들, 밤바람을 맞으며 연주하는 거리악사, 상점마다 울려 퍼지는 재즈 라이브, 화려한 볼거리의 댄스파티….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통제와 감시는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뜨거운 정열도 넘실댄다. 특히 쿠바에는 극과 극의 매력이라 할 만큼의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다. 건축문화만 보더라도 그렇다. 수도 아바나에는 오래돼 쓰러질 듯한 건물과 관광객을 위한 최고급 호텔이 나름의 조화를 이뤄내며 서 있다. 처음엔 흉물스럽게 보이던 수백 년 된 건물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이름에 걸맞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아름답게 다가올 수 없다.
흑백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올드카도 최신형 수입 버스와 함께 거리를 질주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슬픈 역사도 문화로 녹여낸 쿠바인
쿠바인들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낡은 건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허름한 곳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들이 가난의 시름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힘겨운 경제난에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지만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욕심내거나 불행해하지 않는다. 이 넉넉한 여유는 바로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예술혼에서 오는 듯했다.
쿠바인들은 힘든 식민지 시절과 미국의 강한 경제봉쇄를 춤과 노래로 헤쳐 나갔다.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즐겼던 예술은 지금의 쿠바 특유의 남미문화를 꽃피웠다. 거리 곳곳에서 음악이 흐르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춤을 춘다. 우리 같으면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경비실에 연락하고 항의하겠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빨래를 널던 아줌마도, 거리를 지나던 꼬마도, 청소하던 할아버지도 리듬에 몸을 맡긴다. 어디서 댄스 교습을 받은 것도 아닐 텐데 이들의 몸짓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어린아이가 리듬에 맞춰 흔드는 몸놀림 하나까지도 다 예술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흔적을 찾아서
쿠바 음악을 제대로 느끼려면 수도 아바나에 가야 한다. 과거 쿠바혁명 전, 아바나에는 사교클럽이 성행했다고 한다. 당시 세계적 관광도시로 유명했던 아바나에는 많은 재즈 음악가와 연주자들이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클럽을 찾았다.
이 중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곳이 ‘환영받는 사교클럽’이란 뜻을 가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전성기(1930?1940) 때 활동했던 원년 멤버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으로 제작돼 쿠바 음악의 열풍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다들 기억하리라.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70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의 열정적인 무대를….
그래서일까? 쿠바 여행 중 최대의 관심사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영화 속 원년 멤버 대부분은 세상을 떠나(현재 홍일점이었던 ‘오마라 포르투온도’만이 생존해 있다) 이들의 연주를 직접 볼 순 없다.
아바나 광장에서 만나는 열정
하지만 실망할 건 없다. 진정한 쿠바의 문화예술은 거리 곳곳에 넘쳐나고 있으니까. 특히 아바나 광장 주변을 거닐다 보면 쿠바의 다양한 음악을 무한대로 즐길 수 있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호텔 공연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낮이건 밤이건 라이브 카페 곳곳에선 흥겨운 쿠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귀를 호사스럽게 해주는 음악들은 쿠바 토속음악인 손·맘보·룸바 등이다. 관광객은 일어나 박수로 호응하고, 지나가던 쿠바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리듬에 몸을 싣는다.
고단한 삶이지만 거리엔 화가가 많다. 아바나 시민들의 쉼터이자 ‘아바나 문화의 거리’라 불리는 프라도 거리에는 숱한 화가들의 작품이 거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마치 ‘거리 갤러리’ 같은 이곳에서는 개성 넘치는 화풍과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어려운 쿠바 민중이지만 노천시장에도, 쓰러질듯 한 건물에도 많은 갤러리가 있는 걸 보면 쿠바인에게 예술은 예술 그 이상인 듯했다. 열정적인 쿠바의 춤은 또 어떤가. 세계적으로 라틴음악의 시장성을 높인 살사. ‘살사 여왕’ 셀리아 크루스가 말했듯 살사는 맘보·차차차·룸바·손 등 쿠바 리듬의 총체다.
쿠바에 머무르며 느낀 것이 있다면 쿠바인의 몸속에는 우리와는 다른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쿠바인에게 있어 춤은 만들어지고 교육된 것이 아니었다. 뜨거운 열정과 리듬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스치는 호흡’보다 ‘머무는 숨’으로
요즘 쿠바로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단지 화려한 휴양지와 보자마자 ‘악’ 소리 나는 감동만을 꿈꾸며 쿠바로 향하지 말라고…. 스치는 호흡보다는 머무는 숨으로 쿠바의 매혹적인 문화를 체험하길 바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하는 깊은 매력이 쿠바에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