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10 : 광고와 문화 - 우리 광고는 놋그릇? 스테인리스 냄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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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광고는 놋그릇? 스테인리스 냄비?  
 
 
한 석 희 | 내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hanimomo@ned.co.kr
 
‘뜨아~ 이것도 광고라니…’
언젠가 모 광고회사에 갔을 때 우연히 외국의 유명 광고를 본 일이 있다. 비디오가 돌아가는 내내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짜릿한 충격을 느낀 것으로 기억된다.
‘광고가 도대체 뭐지?’라는 당연한 질문을 입에 달 듯이 해대는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 같다. 공포영화(horror movie)에서나 볼 법한 화면과 잘 짜여진 스토리 전개. 언뜻 보면 그냥 광고라고
여기기에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제품을 팔기 위한 게 광고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터에 ‘이 제품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강요 섞인 메시지가 전혀 읽히지 않는 광고란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는가.
그 충격의 파장은 꽤 멀고도 깊게 울려 퍼졌다. ‘광고는 한 사회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코드’라는 그럴듯한 정의가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매일 매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광고에 부담을 느꼈던
내게는 새로운 자극제가 된 셈이다.
사실 광고업계에 발을 살짝 담근 이후, 어떤 틀에 꽉 막혀 있는 듯 정형화된 미모의 여성 모델들이 “이 제품을 쓰세요. 그러면 당신에게 무한한 만족감과 또 다른 지위를 드릴 것입니다”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마치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이메일을 열어볼
때마다 불쑥 튀어나오는 여성 모델들은 왠지 거북스러움만 안겨줬던 것도 사실이다. ‘여자는 다
저렇게 몸매가 쭉쭉 빠지고, 얼굴은 미스 월드 저리 가라는 식일까’하는 환상(?)마저 생겨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렇지 못한 여자들은 여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고개를 들곤 했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즈음, 한 광고제작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물론 나는 서슴지 않고 물었다. “우리나라 광고 수준이 외국과 비교할 때 어떻다고 생각하시죠”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대답은 뜻밖이었다. 광고제작자 왈, “광고는 수준을 비교할 수 없어요.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우리나라 광고가 못났고 다른 나라 광고가 잘났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물론 만국
공통의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에서는 수준차가 있겠지만…”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광고 수준을 비교할 수 없다는 단 한마디 대답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앞서의 외국 광고와 오버랩되면서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의 정서, 樂을 찾아주는 광고
 
지난 6월 한 달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은 단순히 축구인들만의 잔치는 아니었다. 정부와 각 기업들은 월드컵을 통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분투
했다. 그러나 지구촌에 울려 퍼진 메시지는 단순히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청앞 광장 -시청앞이 언제부터 광장으로 변했던가. 차선만 잘못 들어서면 몇
십분을 돌며 헤매야 하는 교통미로였던 시청앞이 광장으로 변한 것도 월드컵의 그 무한한 가능성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을 붉은 카펫으로 물들였던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었다. 또 한국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온 거리를 수놓았던 거리응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넥타이를 메고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던 내게도 거리응원의 전율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대~한민국’ 구호가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 거리응원을 취재하러 나온 영국 BBC방송 리포터의 얼굴에도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모든 이들에게 열광의 엑스터시를 불어 넣었던 거리응원에 담긴 메시지는 무얼까. 아마도 그 동안 억눌려 왔던 우리 민족의 응집된 힘이 분출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술을 좋아하고 가무(歌舞)를 즐겼다. ‘낙(樂)’의 정서가 우리 한민족의
핏줄 대대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낙’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한(恨)’으로 변질돼 버렸다. 그렇게 마음 속 깊은 응어리로 남은 ‘한’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무언가로 가슴 속에 남았다.
그런데 월드컵에서 힘을 발휘한 거리응원은 ‘한’에 자리를 내줘야 했던 그 ‘낙’이 제자리를 찾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월드컵 거리응원은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의 전통 마당극을 다시 화두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마당극은 춤을 추는 이와 구경꾼이 한데 뒤엉켜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客)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데에 힘이 있다. 그렇듯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 통합의 미(美)를 과시하는 마당극이 현대판 거리응원으로 승화된 것이다.
그런데 ‘낙’과 ‘마당극’을 재현해낼 수 있었던 가교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광고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월드컵 공식후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월드컵과 관련된 모든 용어·휘장·로고를
사용할 수 없었던 어떤 기업의 광고가 국민적인 힘을 촉발시키는 심지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이제 경기는 끝났다. 그러나 월드컵이 남긴 4강 신화의 여파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 아직도 퍼져
가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을 계기로 경제4강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느라 부산하고, 기업들은
‘포스트 월드컵’을 향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며 고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각종 연구소와
사회학자들은 월드컵 세대를 나름대로 ‘W세대’, ‘R세대’ 등으로 분류하며 이들을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럼 월드컵 당시 국민통합의 기치를 내걸었던 광고는 어떠한가? 신화가 떠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도 역시 광고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아니 잠시 어딘가에 맡겨 두었던 우리의 ‘낙’을 찾는 것도 광고인의 역할이 아닐까.


빅모델의 거봉을 넘어서
 
우연찮게도 월드컵과 때를 같이해 광고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그 동안 결코 쉽사리 떨쳐
버릴 수 없었던 빅모델에 대한 유혹이 조금이나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광고의 최대 안전판이
었던 빅모델의 성벽에 구멍이 뚫려 누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광고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햄버거 광고에 할머니가 등장해 기분 좋은 미소를 띠게 만든다. 그 뿐 아니다. 힘에
겨운 할머니가 길거리에 내려 놓은 수박을 할아버지가 가로채 드리블하는 유머 광고도 등장했다. 어렸을 적 꼬마 여자애와 개구쟁이의 쫓고 쫓기는 장난 같다. 이에 앞서 세인에게는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각계 전문가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이렇다하게 자랑할 게 없는 일반인들도 광고 모델로 명함을 내밀고 있다.
사실 우리 광고계를 가로막고 있던 커다란 장벽은 빅모델이 아니었나 싶다. 몇몇 여성 빅모델은
거부할 수 없는, 광고의 포인트 아닌 포인트로 자리잡아왔다. 몸매는 쭉쭉 빵빵에다 얼굴은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할 정도의 미모를 갖춘 여성 모델은 ‘뜨는 광고’를 위한 가장 주효한 수단이었다. 남성 모델은 또 어떠했던가. 여성 모델에 뒤질세라 뽀얀 피부에 건장한 체격, 여자 얼굴 뺨칠 정도의 앳된 얼굴이 그 전형을 이뤘다.
이들이 내뿜는 섹스어필은 분명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사실 섹스어필도 천박하지만
않으면 반역할 수 없는 ‘멋’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광고가 ‘백설공주’에다 ‘왕자’를 내세
우며 섹스(?)를 어필한다면… .
 
 
광고, 그대는 무죄
 
한 편의 외국 광고가 나에게 준 충격과 한 광고제작자의 말은 지금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아마도 외국 광고로부터 받은 충격은 그 문화에 대한 충격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TV를 통해 무수히 많은 광고를 접하는 외국인들은 무엇을 느낄까. 그들도 과연 내가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 광고에 정녕 우리 문화가 있었나’ 하는 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최대 안전판이라는 빅모델만을 찾아 헤매지는 않았나 반성해 볼 기회를 갖는 것도 좋으리라.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월드컵은 우리에게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응집력과 전통적인 마케팅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만으로도 월드컵 신화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월드컵 신화가 떠나간 빈
자리, 그 빈 자리를 메우는 것도 광고의 몫이 아닐까.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이 광고가 아니라면 광고의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광고는 제품, 그리고 기업을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가교이다.
월드컵을 통해 발휘된 우리의 응집된 힘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동안 잊었던 우리 문화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광고가 그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스테인리스 냄비가 아닌 놋그릇이 되어야 한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시대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다. 광고는 그 순간 순간
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간에 예속된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에서의 불협화음은 광고를 명백한 유죄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광고가 월드컵 당시 보여준 그 힘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날,
광고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남녀차별이니, 소수 1% 광고니, 섹스니 하는 주관적인 잣대도 없어지리라 믿는다. 물론 먼저 광고주가 바뀌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가 남아 있지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