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2 : Special Edition - 문화로 본 2002 광고 - '재미'가 주도하는 문화와 소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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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마음도 지갑도 열리지 않는다  
 
 문화코드로 본 2002 광고 - 2. '재미'가 주도하는 문화와 소비
 
이 승 일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yi@mail.lgeri.co.kr
 
플레이스테이션2, 메모리 스틱 내장형 휴대폰, 쌍방향 웹TV, 조깅복 속에 내장된 MP3 플레이어. 모두가 첨단 IT기술을 활용하여 개발된 것으로, 지난 몇 년간 주요 전자박람회 등에서 소개되자마자 화제가 된 제품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잘 살펴보면 비록 구현된 모습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가치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혹은 ‘재미(fun)’라고 하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결같이 단순히 기계적인 기능만을 제공하기보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개발되거나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제품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기 분야에서 과거의 제품들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수준 높은 화면 및 구성으로 재미를 더했을 뿐 아니라, 이메일 기능 등 웬만한 PC 역할까지 수행함으로써 복합 엔터테인먼트 기기로서의 성능을 갖추었다.
 
최신 휴대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생활에 휴대폰이 침투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지만 벌써 음성통화만 하는 것은 구시대 제품이 되고 있다. 기본 기능만으로는 더 이상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의 대부분은 컬러 화면을 갖추고 메모리 기능을 강화하여 게임이나 음악 등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용도가 강조되고 있다. 더구나 앞으로 본격 출범이 예정되어 있는 3G 환경에서는 동영상을 무선으로 다운받아 즐기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전화라는 원래의 기능은 부(副)가 되고 재미와 관련된 기능이 오히려 주(主)가 되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욕구의 표출, 경쟁시대의 반작용으로 확산
이러한 제품들은 모두 유행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것들로서 앞으로 개발·출현될 제품이 구현할 특질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재미 추구 현상이 단지 제품 개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각종 문화 활동·광고 등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재미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직장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먼저 신(新)경제의 주역인 주요 기술 기업들은 일 자체를 재미로 생각하는, 이른바 ‘괴짜’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 괴짜들은 일체의 관료성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오로지 일 자체의 성과와 성취감을 통해 동기 부여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일념도 있지만, 애초에 일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성공한 벤처기업들의 기업가 정신과 몰입이 과연 가능했을까.
 
 
최근에는 일반 기업들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항공 같은 기업들은 전통 기업에 해당하지만, 딱딱하고 기계적인 조직 운영보다는 개인이 일 자체를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 생일파티나 핼러윈(Halloween) 파티 때 변장한 채 조직원 앞에 나타나 깜짝 쇼를 보여주는 CEO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직장 만들기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일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조직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직의 성과도 향상된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에서도 재미있는 직장 만들기에 적지 않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높은 업무 강도 속에서도 일을 즐기며 성과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이다.
이쯤 되고 보면 재미라는 가치가 사회 및 경제 전반에 걸친 하나의 문화 코드로서 확산되고 있음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트렌드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재미 추구 경향의 근본 배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재미라는 것이 사람이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누구나 생활이나 소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 관심이나 재사용 의욕이 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재미없는 일, 진부한 제품에 대해서는 아무리 돈벌이가 되거나 기능이 괜찮다고 해도 관심이 낮아지고 싫증을 내게 마련이다. 그만큼 재미 추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더구나 디지털 시대에 높은 소비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소비자층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두 번째로, 날로 복잡하고 심각해지는 생활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치열한 경쟁, 늘어가는 근로시간, 스트레스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단순하고 재미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서 요즈음 영화·드라마·광고 등 대중문화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매체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난히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재미 중심’의 것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일하는 재미를 강조하는 ‘펀(fun) 경영’이 대두되고 있는 배경 역시 연봉제 도입 등으로 성과 경쟁 위주로 바뀌어 가고 있는 팍팍한 조직 분위기를 해소한다는 목적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재미를 부여하기 위한 네 가지 과제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러한 사회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제품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전자 분야의 많은 제품들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정도의 단순 기능만으로는 높은 수익을 올리기가 힘들게 된 상황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저가격 모방 제품으로 추격해 오는 중국 등 후발국의 도전이 거센 형편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재미라는 가치를 제품화하여 차별화하는 것은 그만큼 더 중요해지게 된다.
 
두 번째로 새로운 상품의 개발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 메이커였던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X박스를 통해 본격적인 게임기 생산자가 된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울러 장래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 분야에서 재미 추구 제품들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까지 본격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e-book(전자책)’이라는 포맷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아 새로운 <해리 포터> 시리즈나 스티븐 킹의 신작 소설을 웹패드나 PDA 같은 기기를 통해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예로 영국의 버진(Virgin) 항공이 브리티시 항공이라는 거대 기업에 대항하여 후발로 출범했으면서도 재미를 중심 가치로 하여 차별화에 성공한 것을 들 수 있다. 버진은 기존 항공사의 딱딱한 분위기와 정반대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비행 여행’이라는 컨셉트를 내세웠다. 일반석 자리에도 개별 디스플레이 화면을 부착, 원하는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은 이러한 컨셉트 하에 도입된 차별적 서비스 중 하나였는데, 그 결과 버진은 단시간 내에 소비자의 마음 속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마케팅에 있어서도 단순한 기능만의 소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성적 만족을 파는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다. 제품 개발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사용 혹은 소유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재미를 하나의 가치로 생각해서 이 점을 세일즈 포인트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의 경우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피부 보호 등과 같은 기능에 대한 만족은 기본적인 충족 요건이 되고, 특정 상품이 제공하는 이미지나 우월감, 자신감 등이 심리적 만족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선행적 체험의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곧 소비의 재미가 될 것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 강조하는 것이 매우 유용한 마케팅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재미있게 일하는 조직, 신나는 직장 만들기에 보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나친 경쟁 위주의 조직 분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재미 장치들을 고안해 내는 것뿐 아니라, 개인이 일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다 도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달성한 결과에 대해 격려, 지원해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조직원의 일하는 재미와 조직의 성과가 모두 달성되는 윈윈(win-win)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재미라는 단어는 ‘노는’ 것과 동일하거나 관련이 높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또한 결과적으로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한 상황에서 일과 재미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로 간주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보다 전문화, 복잡화해 가는 사회 경제적 환경 하에서는 이 같은 구분이 무의미해지게 될 것이다. 직장 및 개인 생활 모두에서 즐기면서 성과도 높이는 ‘동시추구형’으로의 전환이 활발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진국처럼 우리 사회도 일과 놀이가 적절히 조화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을 포함한 조직체들에서는 이와 같은 환경 변화를 빨리 읽고 자신의 활동 현장에 적절히 반영, 활용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