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아까운 것 같아서1 - 이것은 물이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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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stop thinking, 
(제발 생각 좀 그만해,)

worrying, looking over your shoulder, wondering, doubting, fearing, hurting…
(걱정하는 것, 네 어깨를 내려다보는 것, 망설이는것, 두려워하는 것, 상처받는 것…)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Just Do' / 출처 : English Speeches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설을 보았다.각종 동명사들이 쉴 새 없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다가, 마지막에 그가 “Just, DO!” (그냥 해!)  하고 외칠 때에는 정말로 내 내부의 어딘가가 뻥! 하고 시원하게 뚫리는 듯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의 연설이 아니라 한 편지의 낭독이었고 그 편지는 20세기 미국 예술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예술가 솔 르윗(Sol LeWitt)이 미국의 조각가 에바 헤세(Eva Hesse)에게 1965년에 보낸 것이었다.

 

나는 사대주의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한국인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 서양 국의 많은 부분을 동경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들의 연설하는 모습이다. 관능적으로 미끄럽고 드라마틱한 영어 발음, 거기에 생동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그들의 눈썹, 이마의 주름, 눈빛, 싱그러운 미소, 한 번씩 으쓱거리는 어깨와 그때마다 함께 딸려 올라오는 손바닥, 30초에 한번씩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그들의 여유 있는 유머…. 그 총체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미국인이었으면, 특히 미국 백인 남성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졸업식 강연 / 출처 : Best English Speeches

 

 내가 그간 보았던 ‘선진 서양 국민’의 연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연설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2005년 케니언 대학 졸업식장에서 행한 강연이다. 이건 내가 앞서 말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좀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나는 그의 강연을 목소리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그가 말하면서 눈썹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랄지 손을 움직이는 제스처 같은 것을 전혀 감상하지 못했다. 더불어 그의 목소리 또한 내게는 그다지 미국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도 말해야겠다. 강연이 이루어지는 20여 분간 차분한 웃음소리가 두세 번이나 나왔을까. 그 외에는 그저… 말이 조금 빠르고 내향적인 성격의 선생님 다운 말투.

 

 

미국적인 강연을 동경해왔다면서 비미국적인 강연을 최고로 꼽는 게 좀 겸연쩍긴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럴 때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나는 모호하고 거대한 내 호감들과 일종의 대결 중이라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대체로 언제나 내 쪽에서 호감들 쪽을 향해 공격을 일삼고 운 좋게 맞아떨어진 호감들을 ‘나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줍는다. 그러다가 가끔은 내 쪽에서 어이없이 맞는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강연은, 말하자면 전혀 호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날아온 카운터 펀치였다.

 

 

데이비트 포스터 월리스의 책 [THIS IS WATER] / 출처 : teachthought.com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있었지, 얘들아? 이 괜찮아?”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깐 동안 말없이 헤엄쳐가다가 결국 물고기 한 마리가 옆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도대체 이란 게 뭐야?”

 

- 데이비드 포스터의 강연 中 - 

 

 

 

그의 강연 제목이 이것은 물이다’가 된 것은 그가 다음의 짧은 우화로 강연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의 울 타리를 곧 벗어날 사회 초년생들에게 적당한 인생 교훈을 알려주는 대학 졸업 강연의 인트로로는 그다지 확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다. (가장 가슴에 확 와닿는 대학 졸업 강연 인트로로는 로버트 드 니로의 뉴욕대 티시 졸업 축사가 아닐까 싶다. 앞 두 문장이 이렇다 : You made it.  And you’re fucked. (여러분들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X됐어요.)

 

로버트 드 니로의 '욕' 축사 / 출처 : 필미필미TV

 

데이비드는 자신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그동안 대학에서 배운 것인 '인문학'으로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그가 강연 내내 강조하는 것은 ‘선택’이다.앞날의 꿈이나 포부 같은 거창함을 향한 선택이 아니라 그냥 판에 박힌 지긋지긋한 일상 속에서의 선택.

 

 

이를테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떤 저녁의 퇴근길 같은 것. 밀린 업무로 너무 피곤하고 배는 고픈데 그동안 장을 못 봐 집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거지같이 운전하는 운전자들을 견디며 꽉 막힌 길을 겨우겨우 지나 마트에 도착했는데 거기엔 자신처럼 피곤하고 마음 급한, 더럽고 짜증 나는 다른 인간들로 가득한 것을 마주하는 것. 그때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 말이다. 그 선택은 아마도 자신이 무엇을 믿는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좌) 출처 : 아트인사이트 

 

데이비드에 따르면 ‘무신론’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믿지 않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믿는다. 돈을 믿을 수도, 특정 신을 믿을 수도, 자신의 육체나 미모를 믿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육체를 숭배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못생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고 지성을 숭배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누군가에게 들키진 않을지 전전긍긍한다. 우리는 이러한 숭배를 기반으로 무의식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 무의식적인 자기 삶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 데이비드는 그것이 진실로 중요한 자유라고 말했다.

 

 

“집중하고 자각하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은 그런 자유를 경험할 수 있게 ‘의식하는 법’을 알려주는 학문이라는 점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출처 :(좌) esquire (우) macleans

 

응당 즐겁고 쾌활해야 할 졸업식 주제 강연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만든 것에 대해 데이비드는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서도 강조한다. 이 강연은 진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서른 살까지, 혹은 쉰 살에 이를 때까지도 자기 머리를 총으로 쏘아버리고 싶어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진실이라고 말이다. 나는 데이비드가 대단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진실이란 것은 언제나 들어보면 어렵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지나치게 멀뿐.

 

 

데이비드 자신에게도 그랬을 수 있다. 이 강연을 마치고 나서 3년 뒤, 권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지었으니 말이다. 그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선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별 일이 아니고, 또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편법은 없는가에 대한 생각도 물론.

 

 

그러다가 이런 말을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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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