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과 그 이름의 글자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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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토크 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는 뭐니 뭐니 해도 날씨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름일 때가 훨씬 많다. 그것은 내가 대체로 새로운 사람을 사인하며 만나 버릇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에 만난 분의 이름은 ‘최시내’였다. 나는 책 표지를 펼치고 시-내-님-에-게,라고 면지에 적어 내려가면서 이름이 예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뒤이어 ‘당연히 한글 이름이겠지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아뇨, 한자 이름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시간 시, 향내 내. 한자를 알려주는 눈빛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나는 사인하던 것을 잠깐 멈추었다.

 

“사실 저희 부모님이 제가 태어나고 나서 온 일가친척을 상대로 제 ‘이름 공모전’을 내셨거든요. 그 공모전에 출품된 이름이 딱 하나였는데 그게 ‘시내’라는 이름이었어요. 작은 아버지가 지으셨고요.”

 

작은 아버지께서는 왜 그 한자를 쓰셨을지가 궁금했다. 시내 씨에게서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 작은 아버지가 강수지의 엄청난 팬이셨거든요. 강수지의 ‘시간 속의 향기’라는 노래 제목을 한자화 시킨 거래요.”

 

강수지 - '시간 속의 향기' | 【KBS 토요대행진, 1992】 / 출처: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공식 유튜브

 

나는 웃느라고 사인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었다. 겨우 숨을 고르며 정말이지 이 이야기 속에 웃긴 점이 한 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시내 씨도 동의했다.

 

“자칭 문학청년이었다면서 그렇게 대대적인 이름 공모전을 열어놓고 정작 태평하게 이름 하나 안 짓고 두 손 놓고 있었던 저희 부모님부터 너무 웃겨요.”

 

“그토록 대대적이었는데 꼴랑 하나 제출되었다는 점도요.”

 

우리는 너 한 번 나 한 번 하는 식으로 하나씩 웃긴 점을 대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작은 아버지’라고 하는 애매한 친인척관계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만들어진 것도, 뜬금없이 자기 음악 팬심을 반영해 남의 이름을 지은 작은 아버지라는 분도, 뭔가 총체적으로 콩트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다소 애매한 친인척관계라고 할 수 있는 큰 아빠가 지어주신 것이었다.

빼어날 수에 보배 진. 빼어나고 보배 같은 사람이 되라는 좋은 마음으로 지어주신 것이었을 텐데 정작 어린 시절 나는 수진이라는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 신 씨라는 내 성과 나란히 두고 보면 ㅅ ㅅ ㅈ라는 자음으로 시작되는 전반적인 이름의 모양새가 어쩐지 너무 뾰족뾰족하다고 해야 할지… 날카로워 보인 달지… 그런가 하면 발음하기도 은근히 불편했다. 이름을 아무리 또박또박 말해줘도 누군가 받아 적은 내 이름은 ‘심수진’ 일 때가 태반이었다.

 

최시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 전해 듣고 둘이서 함께 박장대소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놀랍도록 서로를 친밀히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 더 우리의 이름을 가지고 투덜거리며 놀았다. 내 이름에 시옷이 두 개나 들어가는 게 싫었다는 둥, 어릴 땐 ‘읍내 말고 시내’ 같은 유치한 놀림을 견디며 자랐다는 둥…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 완벽하게 안전한 이름은 없다. 아무리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이름이라도 놀림감이 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이름의 적당한 예가 될 수 있는 내 이름 ‘신수진’을 들어 말해보자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신김치, 신라면, 진라면’으로 불리며 놀림을 당했다. 이 단어들에게서 놀림의 당위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위를 찾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다.

 

 

사인을 해주다가 종종 손이 저절로 멈칫할 때가 있다.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당했겠구나 절로 짐작이 되는 이름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이 이름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말까 짧지만 치열한 고민을 한다. 이름에 대한 언급 자체가 그들에게는 지긋지긋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그만큼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사람과 스몰토크를 해 버릇해온 내 관성의 힘도 만만치 않다.

 

“이름이……”

 

까지 말하면서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면, ‘이상하죠? 옛날엔 놀림 많이 당했어요.’ 하고 먼저 고백해오는 사람들도 있고, 짱이죠? 하고 말하는 듯 자부심이 가득한 미소를 띠며 나를 마주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내가 결과적으로 꼭 놓치지 않고 말하는 건 ‘아름답다’는 말이다. 대체로 아름다운 이름일수록 어릴 땐 더 고약한 놀림을 받는다. 모든 게 순하고 선량할 것만 같은 어린 시절은 아름다울수록 더 놀림을 당하기도 하는, 설명이 안 되는 잔인함이 흐르던 세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독특하고 눈에 띄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어쩐지 내면이 한결 더 다부질 것도 같다. 자기 이름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놀림을 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들은 아직 영글지도 않은 순두부 같은 자기 마음을 어떻게든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기생이라는 뜻의 ‘기녀’라는 이름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의 경도는 어느 정도일지 가끔 상상해본다. 이름 때문에 놀림 많이 당했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어릴 때는 다 그런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늠름한 모습이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서 좋다고 말하던 호탕한 모습을 보면 왠지 그 단단함의 정도가 강철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강철보다도 단단해질 수 있는 마음과는 달리 이름은 마음보다는 약간 물렁한 물성을 지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생각과 행동에 따라, 결심과 선택에 따라, 눈물과 웃음에 따라 이름은 조금씩 모양과 빛깔이 달라지며 원래 가진 모양과는 영 다른 새로운 것으로 우리 각각의 선두를 맡는 것 같다. ‘기녀’라는 글자와 우리 엄마의 이름 ‘기녀’는 같지 않다. 내 이름 ‘수진’과 수진이라는 글자도, 그리고 물론 당신의 이름과 그 이름의 글자도 그럴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