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8월 21일, 가로 77cm 세로 53cm의 여성이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가 사라진 걸 알아채지 못했죠. 쉬는 날이어서인지 목격자도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그녀가 사라진 걸 알게 됐죠. 하지만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알아내기 힘들었죠. 20세기 초의 세상은 채취된 지문을 감식하는 것조차 힘들 때였습니다. 그러자 세상은 그녀의 부재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존재감이 컸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점점 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그러다 2년도 더 흐른 1913년 11월, 마침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언론과 세상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2년간 사라졌던 그녀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모여들었죠. 직접 대면해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또 하나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매우 작다는 사실과 몰려든 인파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사실. 그렇게 그녀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모나리자’입니다.
세계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긴 하지만 도난되기 전엔 지금처럼 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기의 관심을 끈 도난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인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반전이죠. 사라지면서 오히려 존재감을 높인 반전. 도난 사건이 가치를 높여 주었고, 그녀의 귀환은 거대한 루브르의 1등 작품이 되는 계가가 되었습니다.
쿨함을 보여주기 위한 쿨하지 않은 연출
90년대부터 우리나라 학생들의 등교룩을 완성해 주던 Jan Sport 백팩.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브랜드는 2000년대 초반까지 패션 아이템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지금 Z세대에겐 다소 뒤떨어진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기도 하죠. 그래서 그들은 좀 더 독특하게 제품을 담아내기로 합니다.
심드렁한 알바생이 지키고 있는 편의점. 누군가 계산할 음료를 내려놓고 백팩에서 돈을 꺼내죠. 계산대 위에 잠시 올려진 백팩에는 온갖 낙서와 글들이 알록달록하게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돈을 내미는 팔에 둘러진 깁스에도 같은 낙서가 빼곡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 ‘당신의 백팩은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는 차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입니다. 어깨엔 익숙한 컬러의 Jan Sport 백팩이 걸쳐져 있죠. 대화를 끝낸 그들은 늘 그렇듯 차에 탑니다. 문을 닫고 어딘가로 출발하죠. 하지만 백팩은 문 틈에 끼여 바람에 나부낍니다. 크게 아끼지도 특별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일상을 함께하는 가방은 그렇게 문틈에 낀 채로 달립니다. ‘너에게 영원히 붙어 있을게’라는 메시지와 함께.
세 번째는 두 여학생이 난간에 앉아 과자를 나눠먹는 모습입니다. 역시 매우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다른 게 있다면 손에 범벅이 된 과자 부스러기를 그냥 가방에 쓱쓱 문질러 버린다는 것. 게다가 과자가 묻은 손으로 온통 가방 위에 난장판이 된 부스러기를 툭툭 쳐낸다는 것. ‘당신의 흔적이 남은’ 백팩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Jan Sport는 그들의 옆에 있습니다.
네 번째는 열쇠를 차에 두고 내린 듯, 열리지 않는 차문을 열려고 애쓰는 학생들입니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고 게다가 차에 두고 내린 백팩도 꺼낼 수가 없죠. 학생들의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간 순간, Jan Sport는 이런 메시지를 남깁니다. ‘우리는 어디 가지 않아요.’ 몇 년 간 이어지는 브랜드 메시지인 ‘Always with you'와 이어지는 카피입니다.
콘텐츠들은 대사 한 마디 없이 장면 장면들을 툭툭 던집니다. 제품을 멋지게 보여주려고도 다양하게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Z세대들과 일상을 함께하기에 이런 일은 다반사라는 듯 시크하죠. 세대가 바뀌면 학생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고 트렌드도 바뀝니다. 그 안에서 Jan Sport는 홀로 늙지 않는 존재처럼 늘 학생들 곁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 세대’들에게 통하는 화법으로 얘기하고 있는 거죠. 존재 자체가 멋진데, 굳이 멋지게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있냐는 듯이.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차이
2016년 리오 올림픽. 프랑스의 통신사 Orange는 그때의 감동을 다시 담았습니다. 화면 분할로 보여지는 두 개의 육상 경기. 똑같이 출발선에 서는 선수들. 똑같이 중계되는 해설. 출발을 알리는 신호음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 달리는 모습. 1,500m의 트랙. 결승선에 들어오는 선수들. 우승한 선수는 감격스러운 듯 트랙에 엎드리고 동료 선수와 포옹하고 벅찬 마음으로 국기를 전달받고. 두 장면은 실제 리오에서의 경기 모습으로 어느 하나 다른 것 없이 유사합니다. 다만 딱 하나 다른 게 있죠. 그것은 경기 기록. 왼쪽은 비장애인들의 1,500m 육상이고 오른쪽은 장애인들의 1,500m 육상 경기입니다. 그들은 출발부터 결승까지 수많은 순간들이 같았지만 딱 하나, 기록만 다를 뿐이었습니다. 단 1초 71의 차이. 누가 더 빨랐을까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장애인 선수의 기록이 더 빨랐습니다. 1등 선수는 알제리의 시각 장애인 선수 압델라티프 바카입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패럴림픽 경기 상위 네 명의 선수가 모두 올림픽 금메달 기록보다 빨랐다는 거죠. 네, 반전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편견의 반전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올림픽 기록이 패럴림픽 기록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죠. Orange의 리오 올림픽 장면은 그래서 반전의 놀라움을 줍니다. 그 어떤 만들어진 장면보다 강렬한 팩트. 실제 경기 장면은 큰 놀라움과 메시지를 줍니다.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단지 스포츠를 사랑하는 것이다.”
스포츠에 대한 사랑은 모두에게 똑같다는 Orange의 메시지. 장애인의 놀라운 기록 차이가, 우리는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다는 걸 강조하는 위험한 테스트
여성의 생리는 오랫동안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는 주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근거 없는 소문’도 많죠. 여성들은 대개 생리 중이면 수영을 하지 않습니다. 그중 약 150만 명의 여성들은 독특한 이유 때문에 수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리 중 수영을 하면 상어가 피를 감지해 위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SNS를 통해 이러한 두려움은 지속적으로 공유되었죠. 이에 호주의 생리 관련 브랜드 Modibodi는 특별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잠수부이자 해양 생물학자인 브링클리 데이비스가 생리 기간, Modibodi의 생리용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는 겁니다. 독특한 점은 그 바다에 5m의 타이거 상어가 함께한다는 거죠. 수영 중 생리혈이 새지는 않는지, 진짜로 생리 기간 중 상어와 수영하면 위험한지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제품의 성능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성들이 믿고 있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퍼포먼스이기도 합니다. 생리와 상관없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테스트.
이 캠페인은 상어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는 샤크 위크 기간 동안 집행됐으며, 영국과 호주에서 선보였습니다. 생리에 대한 교육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죠. 생리용 수영복을 알리기 위해 오히려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수영을 감행한 브랜드의 대담함. 이 안전하지 못한 수영은 안전함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됐습니다.
반전,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않을 것
미국의 위성 TV브랜드인 DirecTV. 그들은 위성 TV로 시작했지만 인터넷 기반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위성 안테나가 필요 없어졌죠. 말하자면 지붕에 아무것도 필요 없는 겁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미국 풋볼 리그의 샌프란시스코 49ers 선수인 조지 키틀은 자신의 지붕에도 아무것도 얹지 않았습니다.
위성 안테나가 사라져 아무것도 없어진 지붕처럼, 자신의 윗머리도 모두 밀어버린 거죠. 긴 머리지만 머리 ‘지붕’엔 아무것도 없이 등장한 조지 키틀. 위성 안테나 없이 풋볼을 즐기라고 권합니다. 게다가 사은품으로 ‘Footbald 헬멧’까지 갖고 나왔죠. 그의 윗머리를 닮은 헬맷엔 사인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도 위성 안테나 없는 DirecTV를 잊을 수 있을까요?
반전은 임팩트가 강해서 잊을 수 없거나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202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작품 자체가 반전의 구조를 가진 이야기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수용소 장면이나 유대인이 학대받는 장면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어떤 홀로코스트 소재 영화보다 울림이 강하며, 당시의 끔찍한 현실과 인간의 잔혹함에 집중하게 합니다. 홀로코스트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홀로코스트라는 잔혹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강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방법을 반전이라고 합니다. 이 반전을 제대로 맞닥뜨린 우리는 결코 그 임팩트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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