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02 : 밀레니엄 인터뷰 - "당신은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 영화감독 장 진 -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허탕, 택시드리벌, 매직타임, 아름다운 사인, 박수칠 때 떠나라,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좋은 친구들, 할리웃리포트, 접속! 무비월드, 직업의 세계...
이제 겨우 서른 살인 남자가 영화연출, 연극연출, 시나리오, 희곡, 배우, 방송작가, MC 등등 도대체 안 해본 게 없다. 아마도 대중문화 하면 떠오르는 거의 모든 장르가 아닐까 싶은데, 그것도 그냥 해본 정도가 아니라 할 때마다 참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도대체 장진의 뇌 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신용범 : 어린 나이에 출세했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장 진 : 나이를 부각시켜 나를 무슨 신동처럼 만든 이미지는 그야말로 대중매체가 만든 환상일 뿐이다. 어린 나이에 등단(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하고 어린 놈이 이것저것 벌이는 일들이 대중매체에서 다루기 좋은 소스였을 뿐이다. TV, 신문에서 나에 관해 떠들 때 내 자신은 혀를 차며 비웃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보통 젊은이일 뿐이다.



평범한 젊은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했나?

누구나 갖고 있는 상상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그 상상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내 경우엔 내가 생각했던 것들, 상상했던 것들을 남들에게 얘기하는 걸 무지 좋아한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이라도 자꾸 얘기하다 보니 연극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용기, 영화로 표현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그래도 머리에 뭔가 든 게 있어야 표현할 것 아닌가?

특별히 상상거리, 아이디어거리를 찾는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아이디어란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혔을 때 불현듯이 떠오르는 생각일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일상생활의 뻔한 자질구레한 경험들을 유추해내고 새로 배열해보고 한번 비틀어보거나 여러 가지를 짜깁기해본 결과물이 아닐까?


뭔가를 표현한다는 거, 지겨울 땐 없나?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는 내 최고의 놀이거리였다. 밤새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생각나는대로 끄적여 놓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면 내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구나, 하고 재미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 글쓰기가 밥벌이가 됐을 때부턴 얘기가 달라졌다. 글쓰기는 결국 내가 지독히 짝사랑한 상대였는데 어느 순간 내 와이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까지 해대는... 결국 나는 영화, 연극, TV 등등 또다른 짝사랑 상대를 찾아 나서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뭐 어차피 와이프는 영원히 사랑하는 것 아닌가?

영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주위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경우를 보면 대개 이런 식이다.
‘시간이 남는데 영화나 볼까?’, ‘할거 없으면 영화나...’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꺼리, 소일꺼리, 정작 대중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영화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같다. 분명 영화는 우리 시대의 유능한 시장이요, 상업이다. 물론 그 밑에는 예술이 깔려 있어야 한다. 대중보다는 한발 앞서 있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아닌가?



대중을 읽는 힘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데...

글쎄, 이야기를 생각할 때 타깃이라든가 마케팅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나에게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표현할 뿐이다. 내가 느끼는 재미는 이 시대에 유효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대중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점은 항상 부담스럽다. 내 작품을 한번도 안 본 사람만 본다면 속 편하게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스타를 잘 안 쓰던데, 캐스팅의 원칙은 뭔가?

그 배우의 연기 옥타브를 완전히 내가 알고 있을 때만 캐스팅한다. 배우의 재능,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 폭을 감독이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영화라는 종합예술에서 적절한 도구로 활용할 수가 없다. 스타시스템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못하는 역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일을 해왔는데 또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스크린이나 연극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굳이 어떤 한 장르의 문법에 고착되지 않는 매체통합적인 작업이라고나 할까? 사이버 공간에서 시도하고 있는 디지털 영화 같은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어리니까 주판알을 튕겨보기보다는 해야겠다는 명분이 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다.



장진은 ‘전방위 이야기꾼’이라는 별명답게 자신의 생각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여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수 쳐 줄 때 떠나야 할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내뱉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람. 장진의 힘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상상력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인터뷰 : 신용범 대리/CW I 조동완 CD
사   진 : 박상일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