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0 : Culture&Issue - 암살자를 위한 노래, 007주제가 이야기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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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Issue_암살자를 위한 노래, 007 주제가 이야기1
 
  惡人을 위한 戀歌  
정 성 욱 | 영상사업팀 대리
swchung@lgad.co.kr



총구 앞으로 걸어오는 정장 차림의 남자, 갑자기 관객을 향해 총을 쏜다. 피로 물드는 화면과 암전, 다시 화면이 밝아지면 현란한 모션그래픽으로 팔등신 미녀들과 살상무기가 어우러지며, 그 위로 끈적끈적한 노래가 흐른다.
이것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007시리즈의 오프닝의 이미지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1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지면서 구축된, 이제는 정겹기까지 한, 그 오프닝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테마송이다.
메인 스코어를 보컬을 가지고 해석해 놓은 007 테마송은 사실 1편인 <살인번호>에는 쓰이지 않았다. 지금은 유명해진 존 배리(John Barry)의 007 테마가 주제곡을 대신했었는데, 2편인 <위기일발>에서부터 영화의 영어제목과 같은 <From Russia with Love>라는 곡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007의 주제곡은 끈적끈적한 목소리의 여성이 부르는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007 최초의 주제곡을 부른 사람은 중후한 목소리의 맷 몬로(Matt Monro)였다.
3편의 주제곡 ‘골드핑거’를 부른 셜리 배시(Shirley Bassey)는 당대 최고의 영국 출신 소울 보컬이었는데, 007 주제곡으로 드디어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 보컬에 화답하는 듯한 브라스의 도발적인 사운드가 귀에 남는 이 곡은 007 주제곡이 구슬픈 러브 발라드에서 벗어나 ‘나쁜 남자들을 위한 찬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4편 <썬더볼>의 주제곡은 나름대로 ‘연예계의 썬더볼’이라 할 수 있는 당대 최고의 섹시남 톰 존스(Tom Jones)가 불렀다. 영화는 MI6의 라이벌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국제범죄집단 스펙터(Spectre)의 2인자 에밀리오 라르고와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고, 제목인 썬더볼 역시 강하고 완벽한 남성성을 은유하는 말이기에 톰 존스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007 전담 작곡가 존 배리의 격렬한 브라스 테마와 병치되는 비장한 칸초네 스타일의 멜로디로 ‘꽤 잘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읊조려진다. 남들 걸을 때 뛰는 남자, 남들 말만 할 때 행동으로 보여주는 남자, 원하는 여자는 다 차지하는 남자, 성공의 의미를 알고 승자라 불리는 남자. 이 남자는 바로 제임스 본드이자 에밀리오 라르고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제임스 본드의 악당적인 면, 본질적으로는 암살자에 바람둥이 이기적이고, 사디스트이며 폭력적인 측면을 잘 표현한 이 노래의 정서는 그 후의 007 주제가 속에서 악당 이야기 같기도 하고 본드 이야기 같기도 하다는 묘한 가사의 전통을 확립한다.

‘유사 사랑 노래’ 혹은 냉소적 세계관의 표현

5편 <두 번 산다>에서는 대스타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이자 60년대 청순한 허스키 보이스로 미국을 사로잡은 팝스타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가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007주제곡을 부르게 된다. 오프닝에서 스트링섹션으로 연주되고 보컬이 들어오면서는 디스토션 걸린 기타로 연주되는 이 곡의 메인 테마는 007 팬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의 2집 수록곡 <Millenium>에서 샘플링되어 더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밀레니엄 뮤직비디오에서 로비 윌리엄스가 제임스 본드를 흉내 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리지널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의 시대가 끝나고 로저 무어의 집권이 시작된 8편 <죽느냐 사느냐>는 주연배우뿐 아니라 작곡자에도 변화가 있는 작품이었다. 무책임하게 1편의 작업을 팽개치고 도망간 몬티 노만의 뒷수습에 투입된 이래 존 배리는 꾸준히 007시리즈의 작곡가로 활동했지만 스스로 제임스 본드의 작풍에 국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7편 이후로는 한 편씩 걸러 작업하게 된다. 이에 8편에서 존 배리의 공백을 메운 사람은 비틀즈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었다. 마틴은 8편의 주제곡을 오랜 친구인 폴 매카트니에게 의뢰했고, 매카트니는 불후의 명곡 <Live and Let Die>로 화답한다. 이제까지 007을 지배하던 존 배리 식의 재즈적 분위기에서 완전히 탈피한 이 곡은 007 주제가 최초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부문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올리기도 한다. 007의 세계관을 독특한 냉소로 해석한 가사(‘세상이 널 힘들게 해도 살아남아서 다 죽여 버려’) 역시 이제까지의 주제곡들의 표현양식이라 할 수 있는 ‘유사 사랑 노래’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존 배리가 다시 작곡을 맡은 9편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주제곡은 예전의 본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가사 역시 ‘암살 전에 꼭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킬러’를 노래하는, 전통적인 ‘악인을 위한 연가’라는 주제를 따르고 있다. 하이틴 스타에서 여인으로 거듭난 26세의 룰루(Lulu)가 힘차게 내지르는 허스키한 목소리는 존 배리 특유의 브라스와 기타로 장식된 오케스트라의 변화무쌍한 반주를 넘나든다.
10편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존 배리의 공백을 메꾼 작곡가는 시리즈 최초의 미국인 작곡자인 마빈 햄리쉬(Marvin Hamlisch)였다. 마빈 햄리쉬는 이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의 <추억>의 성공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곡자로, 대중적인 노래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007을 위해 작곡한 주제곡 <Nobody does it better> 역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다. 피아노 발라드처럼 시작하는 이 곡은 햄리쉬 특유의 풍부한 팝 오케스트레이션이 빛나는 명곡이다. 절정에 오른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의 보컬로 ‘살인도 섹스도 누구보다 잘하는 당신’에 대한 007 찬가는 가사적인 측면에서도 007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 곡에서 깨진 007주제곡의 전통이 하나 있다. 그 동안에는 영화의 제목과 노래의 제목이 일치했던 것. ‘Spy Who loves me’라는 원제가 가사 중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노래는 영화의 제목을 따르지 않는 최초의 007 주제곡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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