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08 : It's Good! - DONNA KARAN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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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Good!_ DONNA KARAN
 
  파워 브랜드는
스토리가 만든다
 
김원규 | communications Of Course 대표
wkkim@ofcourse.co.kr
 



미국을 빛낸 패션 트로이카

도나 카란(Donna Karan)은 폴로, 캘빈 클라인과 함께 미국을 빛낸 패션의 3대 트로이카로 존경받고 있다. 그녀의 성공은 미국 커리어우먼의 패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단한 찬사를 받아왔다.
그녀가 도나 카란 브랜드를 런칭할 당시, 여성복은 매니시(Mannish)한 분위기 일변도였다. 그러나 타깃들은 경제적 여유를 지닌 전문직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 특유의 멋과 섹시함을 찾으려는 층이었는데, 기존 디자이너들은 커리어우먼을 비롯한 이러한 미국 여성들의 요구를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이렇듯 도나 카란은 브랜드의 메인 타깃을 새로운 패션에 목말라하고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정하고, 기존의 딱딱하고 보수적인 남성 이미지 라인을 없앤 섹시하면서도 시크(Chic)한 라인을 선보였다. 그 성공의 역사는 바로 이 런칭에서부터 바람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나 카란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온 뉴욕의 여성뿐 아니라 전 세계 커리어우먼으로부터 ‘My Brand’ 현상을 일으키며 커리어우먼의 유니폼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열정·능력·운명

도나 카란은 1948년 뉴욕 동남쪽에 있는 롱아일랜드에서 남성복 재단사였던 아버지 캐비 페이스크와 모델이자 세일즈우먼이었던 어머니 헬렌 페이스크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그녀가 세 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옷가게를 하던 헤럴드 플랙스먼과 재혼을 했다.
이러한 그녀의 탄생 배경과 부모의 직업을 보면 그녀가 패션계에 입문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항로와도 같아 보인다. 그녀가 열네 살 때 우연찮게 시작한 아르바이트 장소도 옷가게였다. 그곳에서 고객들에게 옷을 권하고 고객들의 취향을 듣는 일은, 여자들이 자기 옷에 대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그녀의 디자인 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장의 정보를 그녀는 감수성이 예민한 그 시절에 직접 듣고 부딪치며 체득한 것이다.
그녀의 이런 성장배경과 패션과 관련된 끊임없는 경험은 마침내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입학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업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거나 학업에 뒤처졌기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그 정반대로 동급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감성이 그녀를 더 이상 학교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2학년도 마치기 전에 걸출한 실력의 선배들이 문을 두드리곤 했던 앤 클라인(Ann Klein)사의 디자이너로 당당히 입사하게 되었다.
그녀와 앤 클라인과의 만남, 그것은 그녀조차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상상할 수 없었던, 한편의 드라마의 서곡이었다. 입사해서 열심히 일하던 그녀에게 새로운 운명이 찾아왔다. 입사한 지 1년, 앤 클라인 사를 포기하고 브로드웨이에서 패션숍을 운영하고 있는 마크 카란과 결혼하게 된다. ‘일보다 가정이 먼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에 갈등은 없었지만, 패션에 대한 끼와 열정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이에 1971년에 앤 클라인사에 재입사, 마침내 그녀의 천재적인 실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앤 클라인사의 보물 같은 존재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목표이자 꿈이요, 장래 희망이기도 했던 앤 클라인 여사가 1974년에 사망하면서 그녀의 운명은 180도로 바뀌게 되었다. 선장을 잃은 앤 클라인사의 창업주 프랜크 모리와 일본의 원단업체 사장인 토미오가 20대 중반의 도나 카란을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하는 대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처음엔 우려와 질시도 많았지만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파슨스 동기였던 루리 델로리오와 함께 10년간 앤 클라인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1984년, 드디어 자기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다. 앤 클라인 사주의 재정적 도움, 본인의 디자인, 그리고 남편이 비즈니스 능력이 합해져 도나 카란이 런칭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샤론 스톤·잭 니콜슨…

도나 카란은 미국의 커리어우먼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여자이고, 여성 디자이너로서 여성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커리어우먼이자 한 가정의 어머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한 그녀는 이러한 신념을 패션에도 철저히 적용해 나갔다.
그녀는 미국의 커리어우먼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 누려야 할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입게 해주었다.
“난 결코 한 명의 여자를 위해 옷을 만드는 쿠튀르 디자이너가 아니다. 항상 세계의 모든 여성을 위해 옷을 만든다. 여성에게 있어 옷은 개성을 그려내는 캔버스와 같다. 난 그 캔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녀의 철학은 이렇듯 확고했던 것이다.
특히 도나 카란은 ‘7 easy pieces’로 뉴욕 커리어우먼의 옷장을 바꾸어 놓은 것으로 회자된다. 1985년 5월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디 수트와 랩 스커트, 캐시미어 니트, 팬츠, 편안한 재킷, 코트와 이브닝드레스로 구성된 7pieces는 커리어우먼들에게 편안하면서도 섹시한 옷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녀의 옷은 키가 커 보이고 날씬해 보이면서도 직장에서는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연출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녀는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옷’이라는 철학으로, 편안하고 섹시하며 시크한 느낌의 옷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다.
세계인들의 선망의 도시인 뉴욕을 기반으로 성공한 커리어우먼들에게 최고급의 옷감을 바탕으로 선사한 30대 중후반에 나타나는 몸매의 결점을 커버할 수 있는 디자인, 그것은 여성들에게 구매의욕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커리어우먼들을 향해 이렇듯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을 제안한 배경은 그녀의 생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10여 년 동안 사 모아 놓았던 옷장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음 놓고 입을 만한 옷 한 벌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왜 커리어우먼들을 위한 옷의 컨셉트를 그렇게 잡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의 이런 브랜드 철학은 뉴욕을 중심으로 삽시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특히 ‘블루밍데일즈’, ‘색스 피프스 애비뉴’, ‘버그도프굿맨’ 등에서 매출신장이 가장 좋은 브랜드로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도나 카란은 이후 스타킹·슈즈·안경·언더웨어·뷰티 제품 등을 런칭했으며, 1988년에는 여세를 몰아 세컨드 브랜드인 ‘DKNY’를 선보여 다시 한 번 인기몰이를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일컬어 ‘뉴욕 7번가의 여왕’이라고 부르는데, 그녀의 고객을 보면 그런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만찬석상에 힐러리 클린턴이 입고 나온 검은 색 드레스, 배우 기네스 팰트로가 <위대한 유산>에서 입고 열연했던 우아하고 섹시한 옷이 도나 카란이었다. 그녀의 고객명단을 보면 가히 뉴욕의 상류사회를 방불케 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바바라 스트라이젠드·데미 무어·신디 크로포드·캔디스 버겐·샤론 스톤·잭 니콜슨·리암 닐슨, 그리고 웨런 버티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도나 카란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녀의 명성이 패션계의 큰 상과 무관할리 없었다. 앤 클라인 수석 디자이너 시절 3번에 걸친 코디상 수상과 영예의 대상 수상,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가 주는 CFDA(The 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 패션 어워드 베스트 여성복 디자이너 상의 4회 수상이 대표적인 사례. 그리고 2004년 20주년을 맞은 도나 카란은 CFDA 주최 패션시상식에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하고, 모교인 파슨스 스쿨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한편 그녀는 2000년 말, 루이뷔통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패션그룹 LVMH에게 주식을 넘기고 현재는 수석 디자이너로만 활동하고 있다.

광고가 만들어낸 브랜드 스토리

도나 카란의 광고를 보면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광고는 마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롤프 옌센은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보화 시대가 지나면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드림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다가온다고 설파했다. 즉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소비자에게 안겨주는 이야기와 꿈이 상품의 실용적 가치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지금의 잣대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의 저가 오토바이 공세에도 불구하고 마니아층의 사랑으로 살아남은 할리데이비슨, 뉴욕의 잘 나가는 여자들이 즐겨 신어 트렌드 코드가 된 지미 추, ‘석 달 치 월급’과 ‘사랑’을 비교해서 구매력을 높인 드 비어스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은 그 브랜드를 강력하게 기억할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브랜드가 소지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감성적인 교류가 있어야 한다.
도나 카란은 이미 브랜드 런칭 시점부터 바로 이 기법을 사용해 브랜드 로열티를 제고시켜 오고 있다. 도나 카란의 브랜드 스토리가 커리어 우먼에서 비롯되었듯이 광고에도 커리어우먼의 당당함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가감 없이 표현되고 있다.
초창기 광고에서는 전 세계를 호령할 듯한 여성 대통령의 연설 컷으로 타깃들로부터 뜨거운 박수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도나 카란이 창조하고 싶었던 여성상일 수도 있고, 남성 위주의 세계관에 일침을 놓은 표현 수단으로도 보인다. 이렇듯 해석은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이 광고는 도나 카란 브랜드의 입지를 단숨에 정상으로 끌어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후에 전개되는 광고 캠페인들은 주로 뉴욕을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일, 우정 등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만·브루스 윌리스와 데미무어, 제레미 아이언스·밀라 요보비치·케이트 블란쳇 등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켜 그녀가 그리고 싶었던 여성상을 광고로 표출해 타깃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이미지가 비슷한 연예인들을 메인 모델로 내세워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도나 카란은 조금 다르다.
자사 브랜드의 컨셉트나 전략을 모델에게 입히는 게 아니라, 해당 시즌에 주력하는 인기상품을 팔기 위한 방편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는 없고 모델과 멋진 배경, 옷만 있는’ 패션광고도 많다. 그러나 도나 카란은 모델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교묘하리만큼 시너지가 나는 방법으로 연출해 내고 있다. 브랜드와 모델이 따로 놀지 않고 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도나 카란의 광고는 때로는 캘빈 클라인과의 비교선상에서 이야기가 되곤 한다. 유사성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혀 다른 어프로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섹스어필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는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캘빈 클라인과 도나 카란은 성을 광고에 이용하고 있지만 ‘많이 다르다’라는 게 중론이다.

<광고 1~9>는 초창기 도나 카란의 광고. 기억할만한 스토리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섹스어필을 내세운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보면 그래도 뭔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부끄러운 듯 돌아앉아 있는 모습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느낄 수 있으며, 남자의 손에 안겨진 가슴의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지고, 침대 위에 나신으로 누워 있는 모습도 단순히 누드로 자극하려는 모습이 아니라 그 다음 행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욕실에서 거품 목욕을 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기다림을 이해할 수 있고, 남자에게 업혀서 서로 얼굴을 대고 있는 에로틱한 모습에서도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양하게 상상하게 한다.


<광고 10~12>는 1997년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제 5 원소>의 주인공들인 밀라 요보비치와 게리 올드먼을 캐스팅해서 긴장감을 주었다. 밀라 요보비치가 열연한 <제5 원소>의 여주인공 릴루는 최근 네티즌들이 선정한 ‘가장 섹시한 SF 여주인공’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역시 그녀가 등장한 2006년 작 <울트라 바이올렛>에서의 바이올렛은 섹슈얼리티를 이용한 여전사로서 그녀만의 성적 매력은 물론,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현실적인 고뇌와 괴로움을 동시에 겪게 되는 캐릭터로 그녀의 매력을 한층 물씬 풍겼다.
이렇듯 성적인 매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밀라 요보비치, 그리고 영화에서마다 독특한 역할과 연기로 세계적인 마니아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게리 올드먼이 주연(?)으로 나온 이 캠페인은 다양한 화젯거리를 낳았다. 많은 경우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영화에서 밀라 요보비치의 악의 전사로 나온 게리 올드먼이 오히려 러브스토리 속에 있어 의외성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착각 코드에 빠지게 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주인공들의 역할을 보면서 소비자들이 또 한 번 영화와 광고, 그리고 브랜드에 대해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게리 올드먼의 분석적이고 차가운 눈빛, 상대적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밀라 요보비치의 포즈가 타깃들에게 자기동일시 효과를 일으켜 어쩌면 ‘적과의 동침’도 가능한 패션으로서의 설렘을 주고 있는 듯하다.

<광고 13~18>은 영국의 섹스 심벌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광고시리즈다. 그는 190cm가 넘는 키와 애절한 눈빛, 영국 신사다운 매너로 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흔들고 있는 실력파 배우. 특히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스캔들에 연루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 영화계의 신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영국에서 출생한 그는 주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연기했는데, 연기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문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해 70년대에는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며 생계를 위해 TV출연을 병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81년, 메릴 스트립의 상대역으로 열연한 <어느 프랑스 대위의 연인>을 통해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한 <미션>에서 오보에를 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고, 이어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쌍둥이 동생에 대한 강박관념을 연기한 <데드 링거>, 양성애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연기한 <M, 버터플라이>로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영역을 개척했다.
뒤이어 아들의 애인을 사랑한 아버지 역으로 화제를 낳았던 <데미지>, 12살밖에 안 되는 의붓딸을 사랑하는 대학교수로 나온 <로리타>로 강박관념 속의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표현하는 독보적인 연기로 갈채를 받았다.
아마도 이 광고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이와 같은 강박관념 속의 캐릭터를 브랜드와 연결시켜 여자들의 마음을 파고든 듯하다. 이 광고를 보는 사람이면 그가 출연한 화제작을 누구나 연상할 것이다. 아들의 애인과 사랑을 불태우고 있는 그를 연상할 것이며, 또한 12살 의붓딸과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시리즈의 광고가 집행되는 동안 세계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그런 감성적인 동화가 도나 카란의 브랜드를 사랑하고 구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현대는 브랜드 홍수 시대다. 기술의 발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시스템 속에서 me-too 제품이 범람하고, 제품 간, 브랜드 간 사용가치에서 변별력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각 브랜드 간 사활을 건 광고전은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소비자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패턴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게 중론이다. 브랜드의 일차적인 속성만을 강조하거나 그것을 컨셉트로 정해 마케팅을 하면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고, 또한 치열한 시장에서 차별화시키지도 못하는 현실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비자들과 자사 브랜드와의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노력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도 소비자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러브마크(Love marks)’가 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마케팅 학자들은 제품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그 브랜드를 있게 하는 기본항목이지 절대 차별화 포인트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거리를 좁히고 영원히 사랑하게 하느냐의 문제해결은 이제 기존의 마케팅 툴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도나 카란의 광고는 소비자가 원하는 브랜드 스토리를 이용해 성공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라 하겠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