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08 : Culture&Issue - 영화와 여름나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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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Issue_영화와 여름나기
 
  ‘작은 영화’를 사랑하는 법  
정 성 욱 | 영상사업팀 대리
swchung@lgad.co.kr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여름 블록버스터다. 2007년에도 어김없이 할리우드는 우리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거대한 폭발’과 ‘애들도 알아먹는 스토리’로 무장한 영화를 여러 편 들고 찾아왔다. 인기 프랜차이즈의 속편이 되었든, 아니면 오리지널 시리즈가 되었든 이런 영화는 추석에 송편 먹는 것처럼 여름이 되면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 계절행사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이유를 기반으로 한 특정 영화의 수요폭발에 침해당하는 것은 관람자의 선택권이 아니다. 많은 스크린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라는 공급방식은 역설적으로 특정 영화의 독과점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게다가 20세기 초/중엽에 반(反)독과점법으로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제도적으로 찢어놓은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하나의 회사 혹은 계열사가 영화의 세 단계를 다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더욱 제한된다.
이렇게 말하는 게 일반적인 목소리인데, 사실 제한이 되는 건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원래 대다수의 대중은 이왕 7,000~8,000원 내고 영화 보는 거 ‘무식하고 큰 고예산 저지능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찾는 사람’이 있다, ‘찾으면’ 있다

그러한 패러다임을 벗어나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흔히 대안 상영관, 소형영화관, 예술영화 전문극장 등으로 불리는 이런 시설은 눈에 쉽게 띄지는 않아도 찾아보면 여기저기 존재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은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지하에 위치하는 시네큐브다. 조도로스키(Adan Jodorowsky) 걸작 재개봉, 헤어조그(Werner Herzog) 기획전, 카트린느 브레야 걸작선 상영 등 인디영화 팬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주는 사건을 종종 저질러주는 훌륭한 극장이다. 두 개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으며, 작품성 위주의 화제작들의 선정과 흥미로운 기획전으로 마니아뿐 아니라 지적 허영심을 위한 쇼핑객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극장이다.
그 극장 건너편에는 최근에 문을 연 또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옆 가든 플레이스 건물 2층, 120석 규모의 작은 극장인 미로스페이스는 2006년 겨울에 문을 연 이래로 꾸준히 최신 걸작영화들을 상영해오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인 <미스 리틀 선샤인>을 비롯해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의 시대극 <마리 앙투아네트>, 감각파 일본 감독 소노 시온(Sion Sono)의 <헤저드>, 그리고 한국 인디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등이 미로스페이스에서 단관 상영되었다. 예전 인사동 거리에서 <헤드윅>이나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감독의 <이투마마 탐비엔> 같은 걸작영화들을 상영했던 미로스페이스가 채산성을 이유로 폐관한 후 다시 부활한 것이어서 마니아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극장이다.
예전 시네코아 자리에 영화수입사 스폰지가 세운 스폰지하우스라는 극장이 있다. 예술영화 상영관인 이곳은 영화 및 영화와 관련된 것의 총체적 체험을 기치로 내걸고 영화 상영뿐 아니라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2006년부터 매년 해오고 있는 일본인디영화제가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그 밖에도 해외 영화제 서킷의 영화들을 엄선해 상영하는 곳이다. 스폰지이엔티는 이곳 외에도 압구정에 80석 규모의 스폰지하우스를, 그리고 인천 주안에 최근 ‘영화공간 주안 & 스폰지하우스’를 개장해서 점점 관객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명동의 CQN은 일본 예술영화 배급사인 시네콰논이 운영하는 극장으로, 5개관 중 한 군데에서는 언제나 일본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일본 인디영화뿐 아니라 해외의 걸작 다큐멘터리 등도 상영이 되고 있으며, 종종 볼만한 테마 중심의 기획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낙원상가 꼭대기, 그 옛날 ‘불륜 전문 영화관(?)’으로 이름났던 허리우드극장 자리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는 기획전 위주로 상영하는 곳이다. 국가별, 사상별, 작가별로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관련작들을 상영해 예술영화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특히 이러한 기획전을 통해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기에 관련 학과 학생들과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 같은 위치의 필름포럼 역시 일관된 성향의 최신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관객들 취향의 다양성을 대변하듯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기 시작한 듯하다. 메가박스나 CGV 같은 대표적인 멀티플렉스도 작은 스크린의 영화관을(보통 관객들이 ‘집단 비디오방’이라고 욕하는 크기의 영화관) 인디영화 전용관으로 할애하고 있다. 어차피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야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게 관객들 심정이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니치 마켓을 공략하면서 고급문화의 수요자라는 명분도 찾는,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뜯어 불쏘시는 좋은 전략이 되겠다. CGV상암의 인디영화전용관과 롯데시네마 광진의 시네 스튜디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예술 역시 시장원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보는 이가 찾지 않으면 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취향이 시장원리에서 자유로워지지 않게 되면 그냥 소비하는 가축으로 전락될 뿐이다. 그래서 다양성을 보존하고 주장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이런 작은 극장들과 작은 영화들은 소중하다.
이번 여름, 잠시나마 시끄러운 영화는 좀 제켜놓고(어차피 한 달 넘게 상영할 테니) 좀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