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교훈
글로벌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M&A 가운데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히는 것이 바로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합병이다. 1998년 다임러는 주주 99.9%의 찬성으로 기세 좋게 크라이슬러를 인수하며 세계 자동차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합병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주가가 75% 폭락했고, 130%이던 부채비율도 220%까지 치솟는 난관에 봉착했다. 실적도 크게 악화돼 주주들이 등을 돌리는 사태에 이르렀다. 결국 다임러는 370억 달러에 인수한 크라이슬러를 9년 만에 사모투자회사인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에 단돈 74억 달러에 매각하고야 말았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이 실패하게 된 근본 원인은 조직문화 통합의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사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조직문화는 서로 이질적이라 할 만큼 많이 달랐다. 다임러는 수직적인 조직구조에다 완벽 지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의사결정이 느리고 보수적이다. 그런데 크라이슬러는 수평적인 조직구조와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개방과 화합의 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다임러가 품질을 중시하는 데 반해 크라이슬러는 수익성을 중시한다는 점도 양사 조직문화의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합병 이전부터 이미 우려의 소리들이 나왔었다. IMD(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 경영대학의 울리히 슈테거(Ulrich Steger) 교수도 “두 회사가 상대방에게서 배우려는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임러는 미국식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상대를 ‘지배’하려는 듯한 고압적인 자세로 독일식 ‘지시 문화’를 고집했다. 당연히 곳곳에서 문화충돌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크라이슬러의 우수한 인재들이 좌천되거나 해고되었고, 근로자의 40% 가량이 이직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경영진의 사퇴도 잇달았다. 다임러는 조직문화를 통합하고 융합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함으로써 끊임없이 갈등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실적 악화와 주가 폭락에 시달리다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한 채 크라이슬러와 다시 결별하는 비운을 맛보기에 이르렀다.
조직문화는 서류에 있는 게 아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M&A를 좌초하게 만든 ‘조직문화’라는 것은 무엇일가? 조직문화가 무엇이기에 이 천문학적 규모의 ‘고도의 경영행위’를 단 몇 년 만에 참담한 실패로 만들었을까? 조직문화가 무엇인가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기업의 비전에서부터 경영방식, 인사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고와 태도, 업무수행방식 등을 일컬어 조직문화라고 부르는 데는 이견이 없다.
말하자면 조직문화는 ‘조직에 내재화된 공통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종합’이라는 것이다. 이는 창업주의 철학과 전통에서 비롯되어 경영환경과 부딪치며 기업의 성장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하여 온 유기체다. 따라서 조직문화는 서류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단기적인 노력만으로 쉽게 변화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조직문화를 관리하고 발전시켜가야 하는 이유는 조직문화가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흔히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과 제품력·마케팅력·생산성, 그리고 인재와 경영관리시스템 등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조직의 구성원이 어떤 태도와 행동방식으로 이 일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그 성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훌륭한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은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상호협력하는 공동체 문화의 특징을 보인다. 또 각각의 구성원이 업무현장에서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기보다는 구성원 스스로가 공통의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업무추진의 속도가 빠르고 그 효율도 높다. 그래서 기업은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고 싶어 한다.
고유의 조직문화가 곧 경쟁력
그러나 ‘훌륭한 조직문화’라는 것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타 기업의 사례를 배우고 흉내 낸다고 해서 기업이 원하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문화의 유형을 구분하는 방법은 학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딜과 케네디(Deal & Kennedy)는 ‘기업활동과 관련된 위험 감수의 정도, 의사결정 전략의 성공 여부에 관한 피드백의 속도’라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조직문화를 4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①거친 남성의 문화(The Tough, Macho Culture), ②일 잘하고 잘 노는 문화(Work Hard/Play Hard Culture), ③사운을 거는 문화(Bet Your Company Culture), ④과정문화(The Process Culture)가 그것이다.
국내 기업 중 현대는 ‘일 잘하고 잘 노는 문화’로, 삼성은 ‘과정 문화’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우수하다거나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상대 기업의 특징적인 문화를 쉽게 옮겨올 수도 없다. 만약 현대와 삼성이 상대 기업의 조직문화가 우수해 보인다 해서 옮겨 심으려고 한다면 두 회사는 적지 않은 갈등과 혼란에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조직문화가 가진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로 널리 알려진 SWA(South West Airlines)의 전 CEO인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도 “우리 회사의 항공기는 모방할 수 있다. 우리의 발권 카운터나 다른 하드웨어도 카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직원들의 태도만은 카피할 수 없다”고 자신했었다. 말하자면, 기업의 전통과 사업특성에 따라 고유의 문화로 발전시켜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기업 고유의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첫째는, 조직문화를 기업 고유의 브랜드화해야 한다. 조직문화가 브랜드화되면 내부 구성원의 결속을 다지고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외부의 이해관계자에게는 기업의 신뢰와 고객충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둘째, 경영전략과 조화(Align)되어야 한다. 조직문화는 그 자체가 경영성과를 만들지는 않지만 경영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후원하는 동력의 역할을 한다. 즉 경영전략과 조직문화가 조화됨으로써 전략을 추진하는 속도가 높아지고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구성원의 자발적인 힘을 결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직문화로 경영성과를 높여라
흔히 ‘조직문화는 기업의 정신이며 영혼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신이 없고 영혼이 없는 기업은 영속적인 발전은커녕 오히려 육체가 파괴되는 질병에 허덕이게 된다. 다임러는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인 손실로 나타났다. 결국 다임러는 대규모 M&A에 실패함으로써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대변인이 되고 말았다.
다임러와는 달리 조직문화를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경영성과를 높인 예도 무수히 많다. 신한카드는 조흥은행 카드사업부를 인수한 이후 전산 및 인사 통합에 이어 조직문화 통합 작업을 추진함으로써 월간 순이익이 전년도 월 평균치의 세 배가 넘는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옛 조흥은행의 조직문화를 존중하면서 임직원이 함께 나무를 심고 반복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등 단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한솔엠닷컴과 KT아이컴을 인수한 KTF도 서로 다른 조직문화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CEO가 솔선수범하면서 청년이사회제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키즈데이’라는 미팅행사, 멘토링 제도 등 주로 구성원의 통합과 단합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데 각별한 에너지를 쏟았다. 덕분에 KTF는 조기에 조직통합에 성공함으로써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다.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 회사를 3년 만에 업계 최고 회사로 만든 한국전기초자나, 구직자들에게조차 최고의 직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NHN, 그리고 ‘초관리 경영’과 ‘5S운동’ 등 독특한 조직문화로 성과를 높인 삼원정공 등도 기업문화 관리를 통해 회사를 성공으로 이끈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 들어서 조직문화가 경영현장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경영자들이 보다 진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조직문화를 일시적인 유행사조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조직문화는 기업조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이끌어갈 고유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좀 더 긴 안목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