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매년 전 세계 부호들의 순위를 발표하는 <포브스>에서 2009년판을 내놓았는데, 거기에 33세의 젊은 나이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일본인 사업가가 있었다. 유명 그룹의 총수도, 글로벌 기업의 CEO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바로 모바일 게임회사 GREE의 다나카 사장이었다. 그와 그의 회사 GREE가 불러일으킨 화제는 이것뿐만 아니다. 기적적인 요인이 없다면 원래 상태로의 회복이 어렵다고 전망되던 일본 광고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독자적인 크리에이티브와 대량의 광고집행을 단행하면서 광고업계의 단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GREE뿐만 아니라 모바게타운(Mobile Game Town)을 전개하는 DeNA을 비롯해 지금 일본 광고계는 모바일 게임회사라는 새로운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모바일 게임사는 일본 광고계의 구세주
2010년 1월 광고비 동향이 3월에 발표될 때만 해도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마음들이 전년도 수준을 밑도는 결과가 나오자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2월의 광고비가 전년 수준을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상회하자 그 동향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그 흐름이 3월에도 지속되자 관계자 모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추세가 월드컵시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호황장세가 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모바일 게임회사가 있다는 점에 업계 관계자들은 이의를 달지 않는다. 또한 이것이 일시적인 반짝 회복이 아니라는 점에 고무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구조적인 고비용 저효율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등 여러 불안요소가 잠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기반으로 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기업이 광고매체의 제공자인 동시에 타 매체의 광고주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계 전체의 판도를 바꿀 만큼의 파워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아이폰과 구글폰 등 차세대 모바일 단말기가 세계의 어느 시장보다 빨리 보급되는 가운데 게임기와 게임 콘텐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일본시장이기에 그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물량 투하에 표현전략까지 화제 불러
지금까지 게임사의 마케팅 전략은 새로운 게임이 나왔을 때의 런칭광고와 이후 구전효과를 노린 프로모션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최근 3개월간에 500억 원 이상을 TV에 퍼부었다<표 2>. 그것도 모자라 다수의 유명 연예인을 그들의 팬으로 설정한 광고 표현전략 등 지금까지보다 공격적이고 더욱 유효한 전략들을 전개하고 있다. 광고가 방송되는 내내 출연한 연예인들은 GREE의 게임에 넋을 뺏긴 사람처럼 열중하고 있다. 특별한 메인 카피도, 화려한 연출도 없다. 아이처럼 환한 얼굴로 진심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이 광고를 본 이는 누구나 자신을 휴대폰을 열어 GREE에 접속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흡입력은 대단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유료 콘텐츠의 판매수익 증가, 순수 광고수입 증가, 주식 공개로 풍부해진 자금력 등을 주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더 많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회원의 확보가 필수 불가결하기에 이러한 물량공세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무료 게임’이라는 소구 포인트도 적중했다. 무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접속했던 이들은 이내 그들의 교묘한 전략에 빠져들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운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어느 헤비 유저의 증언). 명작 게임으로 알려진 낚시를 테마로 한 게임에서는 무료 아이템으로 낚을 수 있는 물고기의 크기와 유료 아이템으로 낚을 수 있는 물고기의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유료 콘텐츠의 구매를 촉진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전략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고, 결과는 명확했다. 가입회원 수는 지속적인 증가를 보여 지난 3월에는 1,8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바로 기업의 실적에 반영되어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의 하나가 되었다.
GREE가 유행하기 전, 전 국민에게 퍼즐게임 붐을 불러일으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DeNA의 모바일 게 임 타운도 새로운 주역으로 손색이 없다. 현장감 넘치는 광고 표현전략은 GREE가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점과 전철을 주로 이용하는 라이프스타일의 특징은 모바일 게임환경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이것은 비단 젊은 층만에서만 보이는 특징은 아니다. 최근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하루 2회 이상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고 대답한 상시 사용자의 비율은 조사대상의 42%에 달했고, 헤비 유저의 비율에서 세대 간의 차이가 보이지만 전 세대에 골고루 분포되었다.
일본 광고업계의 ‘독이 든 사과’가 될 수도
모바일 게임사라는 구세주의 등장으로 과거의 영광만큼은 아니더라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일본 광고업계에 이러한 호황을 계기로 과거의 관행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다는 염려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즉 이번의 광고비 상승은 매체사나 광고회사 쪽에서 모바일 게임사에 대해 높은 매체비를 책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개 신참 광고주에게는 통상의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고 정가로 매체비를 책정하게 마련이다. 업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신참 광고주는 단지 매스컴을 통해 자신의 기업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책정된 매체비를 아무런 검증 없이 지불하는 것이 업계의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신참 광고주에 대한 이러한 관행은 일본에 진출한 많은 외국계 기업에게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매체집행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상대적으로 출고의 빈도나 양에서 신참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 기업에게는 소비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아 시장 진입장벽과도 같이 작용했다.
모바일에 의한 광고매체의 재편
이러한 관행은 불황의 장기화로 한때 사라지는 듯했다. 신참 광고주에게도 기존의 광고주와 동일한, 아니 오히려 할인된 광고비를 책정해 더 많은 광고집행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돌아서는 듯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광고 회복 기조가 새로운 발전의 기폭제가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과거의 관행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면 모바일 게임사의 광고돌풍은 독이 든 사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번의 회복세가 ‘모바일에 의한 광고매체의 재편’을 알리는 서막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모바일 매체의 영향력 확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바일을 통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모바일을 매개로 한 쇼핑ㆍ학습ㆍ상호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 나날이 TV의 지위가 위협받는다면 이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붕괴시킬만한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가까운 장래의 강력한 라이벌을 새 주인으로 맞이해야만 하는 광고계의 현실이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변화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호황국면을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관행의 답습으로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바일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및 신규 광고주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되어지는 것이 일본 광고계의 한 단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