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8 : Global View ② 일본 - ‘驛’이라는 이름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공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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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VIEW 2 - 일본
‘驛’이라는 이름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공간
  
                                                                                                            <그림1> 동경역의 Tokyo Station City 계획

일본의 도회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사는 동네 이름이 아닌 가장 가까운 역의 이름으로 답을 한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역은 교통수단을 넘어선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동경의 주요 환승역인 신주쿠(新宿) 역의 하루 통행자 수가 300만 명 가까이 되고, 전국에서 전철을 이용하는 인구가 하루 6200만 명이 넘으며, 수도권에만 100여 개 노선에 1500개 이상의 역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본인 세 명 중 한 명은 하루에 한 번 전철을 이용한다는 계산이다. 말 그대로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금 역이라는 공간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개발이 미비했던 개찰구 안(역내: Eki-naka)을 대폭 리뉴얼해 개찰구 밖(역외: Eki-soto)과의 조화로운 개발을 꾀함으로써 그곳이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서, 완성된 커뮤니티로서, 패션·먹을거리 등의 정보 발원지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립된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재탄생
이러한 변화는 JR동일본(예전의 국철)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중기경영계획으로 ‘뉴프론티어 21 계획’을 세우고 그 중요 과제로 ‘스테이션 르네상스 구상’을 내세운 데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 우에노역(上野驛)을 시작(2005년 완공)으로, 특히 수도권의 주요 환승역들의 개찰구 안 개발을 중점 추진하면서 역이라는 공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 시작한 것이다. 완공을 눈앞에 둔 동경역(東京驛)의 ‘Tokyo Station City 계획’ 또한 하나의 독립된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 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좋은 사례가 될 전망이다. 문득 발길을 멈추고 산책하고 싶어지는 공간, 다양한 만남과 설렘이 기다리는 공간, 밖의 세상과는 왠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특별한 공간, 이런 것들이 역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제공할 꿈인 것이다.
일본에서 상업공간으로서 역을 개발하는, 이른바 ‘역 비즈니스’가 시작된 것은 철도의 탄생과 같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역 건물 자체에 본격적으로 대규모 상업시설이 들어선 것이 1920년대 말의 한큐(阪急)백화점부터라고 한다. 이때부터 역의 엄청난 집객력(集客力)을 이용한 상업시설들이 앞 다투어 생기기 시작했으며,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더불어 경제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일본의 주요 환승역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출입구가 몇 십 개씩 있는 것도 역을 둘러싸듯이 백화점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이 비단 상업시설로서의 기능만으로 일본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은 각 지역의 문화교류의 장이며, 각종 편의시설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방으로 가는 특급열차나 신칸센(新幹線)의 각 역에서 반드시 그 지방의 특산물을 가득 넣은 도시락을 판다.
‘ekiben’이라고 하는 이 도시락들은 매년 전국대회가 열릴 정도로 국민적인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인기가 높은 도시락은 백화점에 별도의 매장이 마련되어 판매되기도 한다. 일본인의 도시락문화, 그리고 각  지역의 음식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성향이 만들어낸 문화가 역이라는 공간을 통해 소통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을 위해 어린이 휴게소를 설치하거나 역 건물 옥상을 공원으로 꾸며 누구나 편리하게 쉬면서 역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또한 역 안에 탁아소(어린이 집)를 운영함으로써 출퇴근길에 어린이를 맡기고 찾아갈 수 있게 하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각종 상업시설의 고객이 되기도 한다. 실로 완성도 높은 생활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림2,3> 역 건물 옥상의 공원화 / 역 구내의 어린이 휴게소
           

색다른 체험 제공하는 ‘역 점거(Eki-jack)’ 광고
이렇게 완성도 높은 생활공간이 있다면,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 있다면 기업들이 그곳을 소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세력 확장을 뽐내는 기업이나 이제 막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가려고 하는 기업들은 앞 다투어 도심의 주요 환승역을 이용한 대대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역에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기업은 소비자들의 뇌리에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영광스런 이미지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도 있는 듯하다.
사실 그동안 장기적인 불황의 여파로 역과 관련된 옥외광고나 교통광고의 규모(약 5263억 엔=약 7조 3000억 원)는 감소추세에 있으나, 위에서 언급한 주요 역들의 대대적인 리뉴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한층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강화된 기능에 맞추어 기업들의 광고도 종래의 형태에서 탈피해 최신 디지털 기술을 구사한 신선하고도 대담한 광고를 선보이고 있다. 이는 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 역이라는 공간에 또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냈고, 다시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되는 의미 있는 스파이럴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이다. 이 매체가 만들어 내는 광고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어 가면서 2015년에는 10조 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JR동일본도 광고주들의 관심이 그대로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이 매체를 수도권의 주요 환승역에 설치하고, 매년 그 설치대수를 늘려갈 계획이다.
또 하나 압권인 것이 ‘역 점거(eki-jack)’ 광고이다. 이는 역내와 전철차량은 물론 역 주변의 모든 공간을 이용한 광고로, 역 자체가 그 기업에게 점령한 것과 같다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기업이 만들어 낸 ‘특별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의 경험’이라는 효과를 최대한으로 얻기 위한 기법으로, 실제로 그 장소에 있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이다.
주요 환승역은 늘 이용하는 사람들 외에는 도통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데,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역과 그 주변의 시설들을 안내하는 디지털 표지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또한 주변 상업시설의 프로모션 툴로서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그림4>주요 환승역에 설치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그림5>‘역 점거(eki-jack)’ 광고의 예  



<그림6>주변 지역 안내표지판과 프로모션 결합의 예

소비자들에게 꿈을 주는 공간

역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도 계획적인 개발프로세스와 그들의 독특한 역문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찰구 안의 개발로 인해 기능과 의미가 한층 더 강화된 일본의 역들이 주는 시사점은 어디에 있을까?
제한된 공간도 개발 여하에 따라 더욱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그런 개발의 전제는 기업의 이익창출적 관점이 아닌, 이용객의 편의이며 생활 속에서 꿈을 갖게 할 수 있는 창의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질 것이며, 이 속에서 기업은 이윤창출에의 힌트를 찾아야할 것이다. 


박형렬
마케팅 컨설턴트 | catfish61@hanmail.net

부산외대 일본어과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이론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컨설팅회사 SPI 컨설턴트로 마케팅 활동, 광고 캠페인, 브랜드 관리 등에 대한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 일본광고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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