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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디'로 만나는 도시적 낭만
도심의 대형 베이커리를 찾았다가 나도 모르게 커피를 주문해버린 적이 있다. 가볍게 배를 채우려던 게 목적이었으나 막상 들어서니 실내는 그냥 빵집이 아니라 제법 구색을 갖춘 카페테리아였기 때문이다.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느슨한 츄리닝(?) 차림으로 식빵 한 줄 사러 빵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일에 이제는 약간의 망설임 혹은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메뉴는 레스토랑을 넘볼 듯 다양해지고 있고, 내부 또한 카페를 연상시키듯 화려해지고 있으며, 그런 빵집은 ‘동네주민’을 넘어서 ‘도시고객’의 주문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크라상 '스무디'편
‘순간, 당신의 마음이 흔들릴 것, PB 스타일’
그만큼 광고의 성격과 색채도 변화한다. 우리 기억 속의 파리크라상은 케이크에 주력하는 브랜드였다. 지현우는 꽃다발은 흔하다며 집어 던지고 고백에 동반되는 특별한 선물로 케이크를 택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김태희는 케이크 위의 촛불을 끄면 요정이 나타난다고 아이에게 일러주었고, 이어 2PM과 함께 ‘케이크송’을 불렀다. 한편 이민정은 친구의 현역입대를 케이크로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다 네티즌의 철퇴를 맞은 쓰린 기억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파리크라상은 그동안 케이크를 권해왔지만, 이제는 케이크만 팔지 않는다는 것을 은근한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최근 공개된 광고, ‘스무디’편의 이야기이다.
‘스무디’ 편에는 스토리가 없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를 전달하려 한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풍의 세련된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도시의 바람을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는 순간이 영상의 전부다. 게다가 광고가 강조해야 할 품목이 등장하는 모습은 잠깐이고, ‘순간, 당신의 마음이 흔들릴 것, PB 스타일’이라는 후반부의 내레이션에 훨씬 더 큰 힘이 실려 있다. ‘남다른 스무디’를 알리기 전에 ‘스무디를 음미하는 남다른 환경’이 어디인지를 일깨워주는 것 같다. 즉 기존의 광고제작 패턴을 완전히 바꿔서 특정한 상품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감각적이고 도회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주로 ‘케이크’로 인상이 함축되는 ‘빵집’은 여전히 가족의 평화에 기여하고 일상의 이벤트를 돕는 익숙한 상점이지만, 그러나 이제는 도시적인 일과를 반영하는 동시에 도시적인 관계의 형성까지 겸하는 공간이라고 ‘스무디’ 편은 속삭인다. 그리고 파리크라상은 브라운관의 그림 같은 프레임을 반영하듯 커피는 물론 스무디까지 구비한 메뉴판, 노릇한 조명 아래 정돈된 테이블로 새로운 고객을 기다리며 새로운 소비를 제안한다. 빵과 케이크만 고르는 이들 이상의 누군가를 원하고, 그들의 약속된 티타임과 낭만의 순간을 함께 권한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PB 스타일’이다.
이민희
문화 칼럼니스트 | limini@paran.com
팝/재즈 전문 월간지 <프라우드>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국내 라이선스 팝 앨범 해설지 작성과 함께 여러 월간지에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일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될까 고민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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