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6 : 광고적으로 본 역사 인물 -China, 그 롱런 브랜드가 여불위로부터 기획되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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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그 롱런 브랜드가 여불위로부터 기획되다
 
 박 운 기 국장 | 기획1팀
 wkpark@lgad.lg.co.kr
 
진시황과 그의 무덤,
병마용갱
 
 
 
진시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여불위(呂不韋; ?∼BC 235)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면 여불위는 누구인가?
얼마 전 최인호 소설을 각색한 <상도>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모름지기 장사란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교훈을 이야기 한 드라마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임상옥보다 더욱 더 사람에 투자 포인트를 맞춘 인물이 바로 중국의 거상(巨商), 여불위다. 그는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의 생부로도 알려져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장사꾼에서 통일 중국의 주인공으로
현재 우리는 코카콜라·마이크로소프트·맥도날드·소니 등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꼽는다. 하지만 ‘U.S.A’보다 강력한 브랜드를 본 적이 있는가? U.S.A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강대국이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이다. 그런데 ‘China’라는 브랜드 또한 적어도 2천 년 이상 막강했으며, 다시 U.S.A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 China라는 브랜드가 진(秦)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진을 통일 중국으로 만든 사람이 여불위이다. 즉, 여불위가 바로 China라는 브랜드를 기획·제작한 사람인 것이다.
중국 역사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의 장사꾼 여불위는 ‘장사에서 큰 이문을 주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에게 투자할 것을 결심한다. 이에 당시 조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인질로 잡혀온 진나라 안국군(당시의 왕이었던 소양왕의 동생)의 서자(庶子) 이인(異人: 후에 자초)을 만나 그 비범함을 알아보고 전재산을 투자한다. 그후 진나라의 소양왕이 죽고 안국군이 그 자리를 물려받자, 직접 진나라로 건너가 공작을 펼친다. 즉, 20명이 넘던 안국군의 아들 중 중간 서열의 자초(子楚)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 실력자 화양부인을 매수하고, 자초를 조나라에서 탈출시켜 왕으로 만든 것이다. 여불위는 또 자기의 아이를 임신한 애첩 조희를 자초에게 바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 정이다. 이렇듯 무려 10여 년에 걸친 장대한 계락 끝에 마침내 자초를 왕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여불위. 이후 13년간 재상을 지내면서 전국시대 말기 제후국 중 가장 강대했던 진왕국의 실제 통치자로 군림한다.
물론 역사가들 중에는 그를 폄하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진시황이 즉위할 때 겨우 13세였고, 또 진나라의 정책이나 제도의 대부분은 그가 섭정(攝政)왕으로 군림하면서 닦아 놓은 것임을 고려할 때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결국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사람이 바로 여불위이며, China가 바로 그 진나라에서 비롯되었다면 China라는 브랜드를 그의 작품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세계를 지배하는 빅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한다고 할 때, 여불위는 우리가 배워야 할 대선배인 셈이다.

역발상과 프로정신, 인맥 구축의 놀라움
여불위는 ‘황제를 사들여 천하를 움켜쥔’중국 최고의 장사꾼답게 발상의 기발함이 있었다. 한 예를 보자.
어느날 볼품없는 보석가게에 들른 그는 투명한 홍보석을 발견하지만 그 보석에 결정적인 티가 있음을 알고는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순간, ‘저 티를 빌미로 싸게 살 수 있을 테고, 또 티를 이용하여 보잘 것 없는 보석을 귀중한 보배로 탈바꿈시킬 수가...’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이 홍보석을 싸게 사서 자신의 보석가게로 돌아와 옥장이에게 그 반점의 형태에 따라 조심스럽게 다듬고 조각하게 하여 대홍리(大紅鯉)라는 보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검은 반점이 대홍리의 눈이 되어 결국 그 보석의 가치를 수만 배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거상 여불위」에서 요약).
이를 보면 발상의 전환, 즉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그 지혜가 부럽지 않은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불위는 당시의 실력자 화양부인을 설득하여 자초를 태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10여 년에 걸친 로비 중, 자초가 화양부인을 알현(謁見)한 것에 얽힌 일화는 또 여불위의 프로정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초가 조나라를 탈출해 화양부인 알현을 위해 목욕재계하는 동안, 여불위는 자초에게 무슨 옷을 입혀야 좋아할지를 생각했다. 조나라 의복을 입히면 조나라에서 인질로 잡혀 있던 5년 동안의 고통을 보일 수 있어 화양부인으로 하여금 동정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을 테고, 진나라 의복을 입히면 진나라의 왕손임을 보여주게 되며, 게다가 옷에다 고향의 흙을 매달고 가게 한다면 머나먼 이국 땅에서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나타낼 수도 있고... 하지만 더 좋은 생각이 없을까 고민하던 여불위는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다! 화양부인의 고향이 초나라이니 초나라 의복을 입혀 보이자. 그러면 양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효심을 보여줄 수 있을 테고, 이렇게 모자가 상봉한다면 아주 극적이고 신기한 효과를 볼 수 있어 태자 책봉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거상 여불위」에서 요약).
세심하다못해 섬뜩하기까지 한 그의 준비정신을 보면서 요즘 우리는 어떻게 광고주를 만나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여불위는 위나라 신릉군 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 조나라 평원군 조승, 제나라 맹상군 전문을 본받아 천하의 문객(門客)을 널리 모집했으니 그 수가 3천을 넘었다. 또한 그들의 직업이나 지위도 각양각색이어서 도예가·어부·농부·사냥꾼·가수·요리사·귀족과 호족·빈민·양민·협잡꾼·현인·무사, 심지어 계명구도(鷄鳴狗盜)의 무리까지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 중 계명구도의 무리는 훗날 자초가 조나라를 탈출할 때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결국 여불위가 문객을 모집한 것은 자초를 태자로 만들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각계 각층의 사람과 사귀면서 그들을 활용한 지혜가 바로 그를 중국 최고의 장사꾼, 아니 실력자로 만든 것이다.
우리도 인맥을 만들고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게 필요한 사람만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불위와 관련된 고사성어 중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말이 있다. 한 글자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빼어난 글자나 시문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여불위가 3천여 명의 문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식견을 발휘하여 저술케 한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 「여씨춘추」란 요즘 말로 하면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집필한 논문집과 같은 것인데,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생겨나는 여러 현상을 폭넓게 살펴보고 하늘의 질서, 땅의 확고부동함, 올바른 인간관계 등을 살펴본 백과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을 만들 때의 철저함과 이 책에 대한 그의 자신감이다. 즉, 책을 저술할 때 그 내용을 성벽에 걸어놓고 한 자(一字)의 오류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천금(千金)을 준다하여 그 저자에게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책이 완성된 후에는 한 자의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에게 삼천금을 준다고까지 공언할 정도로 그 완벽함에 자신감을 가진 것이다.
우리가 만든 광고는 얼마나 철저하게 생각하여 만들었고, 그 광고에 대해 얼마나 자신있는가? 과연 천금을 걸고 내기를 할 수 있을까?

여불위가 광고를 알고 광고를 했다면 당대 최고의 AE, 아니 최고의 광고인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목표 달성을 위한 치밀한 전략, 현상을 거꾸로 보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발상의 전환, 사소한 것에도 철저한 프로정신, 다양한 사람을 사귀고 관리하는 철저한 인맥 관리, 마지막으로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자신감까지...
이만하면 여불위는 진정 광고인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사람으로 존경받아도 되지 않을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