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8 : 광고적으로 본 역사 인물 -거북선, 조선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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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조선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허 유 근 CD | CR2본부
 ykhuh@lgad.lg.co.kr
 
 
광고와 이순신... 무슨 관련이 있을까? 최근 어느 광고에서 이순신 장군을 모델로 삼아 꽤나 재미를 보았다고 하던데... 그러나 여기서는 모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을 광고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일부러 꿰어 맞추지 않더라도 장군의 업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광고 혹은 크리에이티브와 연 관을 아니 시키려 해도 우리는 그 연관성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북선, 생존을 건 크리에이티브와 완성도
최근 아프간 전쟁에서 토마호크 등의 신무기들이 맹위를 떨쳤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해전승리의 주역이었던 거북선도 당시로 서는 가공할만한 신무기였다. 그 거북선의 위용은 우리 모두 역사를 통해 알고 있지만, 탄생 배경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일본 수군은 긴 갈고리로 아군의 배를 자신의 배에 바짝 붙인 뒤 아군 전함에 올라타는 전법을 썼다. 그 긴 갈고리에 우리 수군은 맥을 못추고 인명은 인명대로, 전함은 전함대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본 군사의 전법을 간파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배의 겉을 쇠로 씌우고, 숨어서 포를 쏘기 위해 뱃머리에 용의 아가리 를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거북선의 백미는 바로 배의 겉 표면에 쇠못을 박아 놓으로써 일본 수군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만일 그 쇠못이 없었더라면 과연 후세에 알려진 만큼 거북선의 위용을 떨칠 수 있었을까?
거북선에 화룡점정을 찍듯이 그 쇠못에 대한 생각 하나가 바로 거북선의 전투효과를 수백 배 수천 배로 늘려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성도이다. 크리에이티브에 쇠못을 처박은 완성도인 것이다. 거북선체에 대한 만족감에 들떠 있는 그 순간에도 쇠못을 박을 수 있는 완성도에 대한 장군의 의지 -다 됐다 싶은 크리에이티브 에서 간과하기 쉬운 완성도- 그것은 목숨을 건 의지와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 생각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생각과 의지의 힘이야말로 칼의 힘을 이길 수 있는 확실한 무기인 것이다.

“수백 척의 적선이 곧 몰려올 텐데 내게는 12척 밖에 없다. 전라도가 뚫리면 조선은 끝장이다. 어떤 수를 쓰든지 이곳을 지켜야만 한다.”
이순신은 한없는 고민에 빠져 명량해협(鳴梁海峽)의 거센 물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동남쪽으로 흐르던 조류가 서서히 멈추더니 이번에는 거꾸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다!” 이순신은 울돌목의 썰물과 밀물 그리고 지형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드디어 일본의 대선단이 명량해협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조선 수군이 밀린다. 바로 이때 남쪽으로 조류가 바뀌더니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바닷물이 밀려 나가기 시작 하면서 왜선들이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닌가. 왜선들은 수로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면서 암 초와 수중철책에 걸려 침몰한다. 결국 이순신은 12척으로 무려 330척의 왜군을 물리쳤던 것이다.
완전한 승리 - 거북선으로 적선을 330척이나 격파하고 적군을 3만 4,000명 이나 수장시키고도 아군은 단 한 척의 손실이 없었던 그런 전투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있을까?

아이디어, 참 묘한 말이다. 수적(數的)으로 열세에 있거나 혹은 적보다 실탄이 약하거나 할 때에도 아이디어 하나로 그 전투에서 이기는 경우를 우리는 왕왕 보아왔다.
우리가 하는 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생각이다. 광고 혹은 P/T를 언제 한번이라도 우리는 절실하게 목숨을 건 전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순신 장군이 만일 내 자리에 앉아 크리에이티브를 한다면 장군은 어땠을까? 나하고 어떤 생각의 차이를 갖고 광고를 만들었을까?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라도 장군은 생각의 절실함, 생각의 성실함... 그런 것들에서 우선 나와는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나머지들, 즉 크리에이티브의 실행, 완성도...이런 것들은 두말해서 뭣하랴!
장군의 화려한 승전 기록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은 준비의 치밀함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거북선 탄생만 해도 그런 것이다.

CD여, 당신의 리더십을 돌아보라
크리에이티브에도 리더십은 있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자칫하면 독선에 빠지기 쉬운 리더십, 자칫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타협의 리더십...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당신의 리더십과 비교해보라.
우선 장군은 인화(人和)를 중시했다. 정신적 에너지까지를 포함해 군사들이 역량을 총집결하여 발휘하는 그 놀라운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늘 아랫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최대한 중지를 모았다. “잔말 말고 나를 따르라” 식이 아니었다. 한산대첩과 명량대첩 또한 군사들과의 자유로운 토의문화가 이루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전투를 앞두고, 휘하 장수 나대용이 태종 때 구선(龜船)을 만들어 임진강에서 왜구의 배와 모의접전한 사실이 있음을 들어 거북선 건조를 건의했다. 그런데 만일 눈앞에 다가와 있는 전투만을 생각했다면 언제 그 대공사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휩싸여 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순신은 건의를 흘려 듣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장군의 리더십을 형성하게 된 생각과 말들을 잠깐 소개해본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을 못하고 순서를 바꾸어 아랫사람을 올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 규정도 고칠 수 없습니다.
- 나와 율곡(栗谷)은 성이 같은 까닭에 만나볼 만도 하지만 그가 이조판서로 있는 동안에는 그를 만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국가가 위급한 이때에 어째 다른 도의 장수라고 핑계 하고서 물러나 제 경계만 지키고 있을거냐!
-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다만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밖에 없다. 감히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목을 베라!

이순신은 항상 적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움직여 유리한 위치에서 적을 유인해낸 뒤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또한 장군은 지피지기에 철저했다. 늘 적정을 정탐하며 척후를 띄우고, 전투지형과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단 한번의 적의 기습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처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치 않았던 장군의 전투비결은 다름아닌 자신을 돌아보는데서 기인한다.
「 난중일기(亂中日記)」가 그 사례이다. 범인(凡人)이라면 과연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터에서 어떻게 일기를 쓸 수 있었을까? 더욱이 장군의 일기는 그냥 일상사를 기록한 일기는 아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인 것이다. 진중에서 6년 9개월 간에 걸쳐 붓으로 쓴 초서체의 일기본이 바로 난중일기이다. 그 일기 속에는 군사(크리에이터)에 대한 이야기, 적군(경쟁사)의 동향, 전술(아이디어)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전쟁(P/T)에 대비한 쉼없는 훈련, 국가(회사)와 민족(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수로서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끝없는 애국심(광고를 사랑하는 마음) 등이 꼼꼼히 기술되어 있다.

집중력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장군이 두 번씩이나 백의종군하며 사심 없이 전투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뇌리에 늘 꽂혀 있던 충성심, 애국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스스로의 무한 책임의식이 가슴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당신은 광고를 얼마나 사랑하며,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책임지고 있는가?
이순신 장군은 광고를 몰랐다. 크리에이티브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터의 무관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장군을 광고에 비추어 보고자 하는 것은 장군의 남다름, 특별함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전쟁을 바라보았던 시각, 그리고 「 난중일기 」곳곳에 숨어있는 솟구쳐 오르는 애국심 -그것은 광고를 사랑하는 본질- 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싸움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 말을 카피라고 한다면 장군을 모독하는 것이 될까? 돌아가시면서도 전투의 승리만을 생각한 장군의 한마디, “싸움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 말 한마디(카피)가 장군(브랜드)의 성격(이미지)을 말해주는 것이며, 후세가 장군을 우러르며 흠모(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크리에이터들이여, 이순신 장군을 본받자 함은 참으로 구태의연한 말일 것이다. 단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잠시 짬을 내어 장군이 망루에 서서 호령하던 군산 앞바다 선유도의 칼바람이나 맞으면서 머리를 비워보자는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