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2 : 광고와 문화 - 요즘 왜 '사나이' 같은 광고가 안 보이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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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사나이' 같은 광고가 안 보이지?  
 
 광고와 문화
 
구 본 준 |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bonbon@hani.co.kr
 

"구본준 씨, 이제부터 광고는 당신이 맡아."
"광고요?"
"그래, 광고말이야. 내일부터 광고기사는 당신이 써."
지난 5월 어느날 부서 회의시간이었다. 팀장의 말 한마디에 그날부터 광고는 내 취재영역에 편입됐다. 기자들의 속어로 하자면 이른바 나의 '나와바리(구역)'가 된 셈이었다. '나와바리'란 아직도 기자사회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일본말인데, 흔히 말하는 '담당'의 의미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한겨레>에 나오는 모든 광고기사는 내 몫이 되었다.


그 날 전까지 난 광고를 '그냥' 봤다
팀장이 나에게 광고를 맡긴 것은 사실 우리 산업팀에서 내가 가장 젊기 때문이었다. 다른 큰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광고가 결코 신참자나 막내급의 몫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광고를 역동적이며 젊은 감각이 살아있는 분야로 본다는 것이다. 신문사 경제부에서 모두 6명으로 이뤄진 산업팀(주로 기업 취재 담당)에서 내가 가장 막내라고는 하나 1995년에 입사한 8년차이니 신참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사실 신문사의 시스템은 단순하다. 어느날 어느 기자가 어느 분야의 담당이 되면 그 이후로 그 분야의 모든 기사는 그 기자에게 달려있게 된다. 하필 담당기자가 그 분야 기사를 쓰기 싫어한다면 결국 관련 기사는 자주 나오지 않게 되고, 반대로 그 기자가 그 분야에 빠져들면 다른 분야보다도 기사가 더 많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자의 관심에 따라 해당 분야의 기사가 늘어나기도 하고, 아예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광고를 맡는 한, 우리 신문에 나오는 광고 관련 기사는 내가 쓰면 나오고 쓰지 않으면 지면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기자란 직업이 어느날 갑자기 회사의 명령으로 덥석 새로운 분야를 맡게 되는 운명이다 보니 자꾸 담당이 바뀌기 쉽고 그래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독자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장점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분야를 열심히 기사화하려는 열의와 노력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새로운 분야를 맡게 되면 즐거움보다도 고민이 앞서게 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광고를 그냥 보기만 했지 언제 한번 광고를 눈여겨보거나 연구는커녕 생각이라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고민이었다. ‘광고? 도대체 무슨 기사를 써야 하지? 그럴 줄 알았으면 평소 광고기사를 열심히 읽어두는 건데…’ 후회가 물밀듯 솟아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지금부터라도 광고와 친해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광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어려워 보이는 입문서적을 본다고 해서 그동안 없던 이론적 토대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그 날 이후 광고를 ‘생각’해 보니…
그런데 광고에 대해 이것저것 돌이켜 본 결과 그동안 내 스스로 광고에 대해 궁금증을 갖거나 흥미를 갖고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야말로 모든 생활이 광고에 포위돼 있는데도 막상 광고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도 명색이 기자인데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겠지? 흐음, 광고라... 너무 대량소비를 부추기고 대중을 수동적인 소비의 객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틀림없을 거야.’
일단 수사관처럼 광고에 ‘혐의’부터 씌워봤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광고가 사람의 소비욕구를 부추겨 쓸 데 없이 돈을 꺼내게 만들어 소비를 증가시키고 결국은 물질만능 풍토로 몰아가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엄청난 광고물량을 퍼부어도 성공을 거두는 제품은 사실 열 개 중 한두 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광고가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잘 먹히는 것만은 아닌 셈이다.

‘하긴 사람들이 광고하는 의도대로 제품을 살 만큼 바보겠어?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광고를 만드는 데 돈이 억수로 들어가네? 30초짜리 만드는 데 10억 이상이 든다면, 이건 뭐 광고가 나오는 50분짜리 텔레비전 프로그램보다도 제작비가 더 드는 거잖아. 그러면 엄청난 돈의 효과로 소비자들의 의식을 조작하는 측면은 있겠지?’

그런데 이 역시 꼭 그런 게 아니란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비싼 돈을 들여서 소비자들을 ‘최면’ 시키려 해도 막상 그 광고를 소비자들이 봐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광고가 나온다 싶으면 바로 리모콘 한번 눌러 다른 채널로 가버리면 그만이니까. 신문을 들면 후두두 떨어지는 전단지 역시 안 보고 쓰레기통에 버리면 끝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광고는 뭐냐?’

쉽지 않은 문답풀이가 머리 속에서 이어졌다. 앞서 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을 바보처럼 묻고 답한 데 이어 ‘광고는 문화적이냐, 경제적이냐’부터 ‘그럼 한국적인 광고가 있을까, 본질적으로 광고에도 도덕적으로 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가 있을 수 있는 건가’ 등등 온갖 것을 따져봤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가지도 내 스스로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명확하게 정답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생각해볼수록 광고는 점점 어려워보였다. 텔레비전 전원만 누르면 쏟아져 나오는 광고들을 보는 것은 그리도 쉬운데, 그 이면을 보기는 왜 그리 어려울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광고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재미있으면 재미있다고 쓰고,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쓰면 그만’이라고.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가볍고 편하게 접하는 생활 속의 동반자로 파악할 뿐, 괜히 능력과 주제도 모르고 광고를 파고들지는 않기로 했다. 이런 결론 외에 사실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문화’와 ‘광고의 본질’
그래서 결론을 내린 대로 마음 편히 갖고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부담없이 광고기사를 쓰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역시나. 광고기사를 쓰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딱딱한 경제면에 잔잔하고 가벼운 재미를 주는 광고 상자기사를 1주일에 1꼭지씩 쓰겠다고 결심했지만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그러면서 처음 광고를 맡을 때 생각했던 것과 실제 전해 듣고 접하는 광고계의 모습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됐다. 가령 회사의 일부 물정 모르는 분들은 내가 광고담당인만큼 예쁜 여자 모델이 나오는 광고 촬영현장에도 따라가 볼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그럴 기회는 전혀 없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는 없어도 일단 광고를 맡는다는 것 자체는 즐겁다. 날마다 날아오는 보도자료 메일을 보면 어느 업체가 어떤 광고를 내는지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전에 날아오는 자료들을 보고 ‘이 광고가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자료와 광고가 실제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며 홍보담당자의 ‘뻥튀기 실력’을 점검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좀 괜찮은 광고들이 많이 나와주길’하는 바람이다. 사실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맘에 드는 광고는 그리 많지 않다. 일부 광고들의 경우 유난스럽게 취향에 거슬리는 경우도 있다. 개인차가 크겠지만 적어도 많은 시청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잘 만들었다 싶은 좋은 광고들이 이어져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순간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길 꿈꿔본다.

그렇다고 꼭 예술적이고 스타일이 근사한 광고들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주로 접한 광고 보도가 광고의 산업적 측면이나 경제적 측면보다는 너무 문화코드를 따지며 사회문화적인 현상의 반영으로 해석하며 신세대 언어니 하는 식으로 문화적 측면을 따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탐탁치 않았다. 광고 자체에 너무나 큰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렇게 의미있어 보이지 않는 탓이다. 간혹 잡지 등에 소개되는 외국의 광고들을 보면 기발한 크리에이티브에 감탄하게 되지만 사실 모든 광고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멋지고 예술적인 광고도 결국 물건을 사라는 권유일 뿐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틀린 생각일 수 있지만 결국 광고의 본질은 경제적 행위이고, 문화적인 측면들은 부수적이라는 것이 광고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광고담당 기자인 지금도 이런 생각은 마찬가지다. 대신 광고에 대한 애정이 훨씬 커진 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 원하는 광고는 ‘힘있는 광고’다. 현란한 영상이나 멋들어진 분위기로 달착지근하게 포장한 광고보다도 다소 텁텁한 것 같아도 호소력 있는 광고를 보고 싶다. 신세대풍의 요즘 광고는 아직 젊은 내게도 다소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광고다우면서도 촌스럽지 않고, 꾸밈이 부족한 듯 거칠어 보이면서 산뜻한, 그런 광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내 기호와는 관계없이, 이제 문정희 시인의 ‘다시 남자를 위하여’라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원하는 광고를 대변하고 있다는 듯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시에 나오는 ‘남자’를 ‘광고’로 바꿔 생각해보며 그런 광고를 기다려본다. 다소 시대착오적일지 몰라도 적어도 광고다워 보이지는 않을까?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 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뿐.
눈에 뛸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중략)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동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당당하고 멋지게 눈과 귀를 잡아당기고 광고의 매력을 흠뻑 전해주는 그런 ‘멋진 잡놈’ 같은 힘있는 광고가 보고 싶다. 예술적이지 않고 근사해 보이지는 않아도, 오히려 뻔뻔스럽더라도.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