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라는 말을 아시나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예술가의 문하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세상 사람들은 ‘유령작가’, ‘대필작가’를 칭하는 ‘Ghostwriter’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협업이 필요한 현대 예술계에서 고스트라이터는 예술가와 동등한 ‘창작의 파트너’로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브라이언 이노나 얀 해머 같은 작가주의 뮤지션들이 팀을 이루어 윈도우즈 스타트업 사운드나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 OST처럼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은 작품을 선보였고, 광고나 드라마 같은 상업 음악 프로덕션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 소개할 뮤지션은 아예 ‘고스트라이터’라는 개성을 전면에 내세운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입니다. 최근 LG 올레드 TV광고 Humanity 편 광고음악이 고스트라이터 뮤직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죠. 그런데 이들은 왜 멸칭에 가까운 ‘Ghostwriter’를 이름으로 정한 것일까요?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의 시작
캐나다와 미국에서 프로듀서, 사운드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크리스 브랙. 그는 2013년부터 헐리우드의 광고 에이전시 ’N. 87’의 뮤직 수퍼바이저로 일하며 상업 음악의 배포와 저작권 등 법적 권리를 다루며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을 기획하게 됩니다.
현재 고스트라이터 뮤직에는 창업자인 크리스 브랙을 필두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라이언 뉴엔, 기술 담당 트래비스 미카드, 프로듀서 페이지 마운트와 작곡가 데이빗 요세피 등 총 8명의 크루가 일하고 있습니다.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의 삼위일체 포트폴리오
이들의 사업이 원래부터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2015년 TV와 영화 트레일러, 광고 등 상업적 음악 퍼블리싱 업체 ‘아스트랄 뮤직 퍼블리싱’을 오픈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본격적인 정체성은 퍼블리싱을 넘어 직접 상업 음악을 만드는 브랜드, ‘고스트라이터 뮤직’의 런칭과 함께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업자 크리스 브랙은 애초에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의 사업 분야를 퍼블리싱과 음악 제작으로 나누어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은 2019년 레코딩 스튜디오 ‘소닉 리추얼 레코딩스’를 오픈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데요.
여기에 제2의 문학으로 주목받는 비디오 게임 트레일러의 음악까지 만드는 레이블 ‘맨티스’를 추가하면서 영상 시대 미디어들의 퍼블리싱과 트레일러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스튜디오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스트라이터, 비하가 아닌 정체성의 문제
고스트라이터 뮤직의 포트폴리오는 모탈 컴뱃과 콜 오브 듀티, 어벤저스 시리즈와 배트맨, 수많은 넷플릭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 다채롭습니다. 이처럼 빛나는 작곡과 퍼블리싱 커리어를 가진 상업 음악 프로덕션이 왜 ‘고스트라이터’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걸까요? 이는 시대의 변화를 나타내는 어떤 상징이 아닐까요?
‘예술가는 자본을 전면에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현재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갑론을박은 있을지언정 이제 예술은 어느 정도 자본과 공생하는 위치에 있고,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 같은 상업 음악 프로덕션은 필요한 예술집단입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일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와 브랜드, 제품의 정체성을 돋보이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자신들의 음악 정체성보다는 고객의 자아를 돋보이는 방법론을 찾게 마련이죠. 이제는 고스트라이터라는 단어에서 비하의 의미는 서서히 퇴색되고, 고스트라이팅도 전문성의 한 분야가 되어가는 현실을 잘 드러낸 네이밍입니다.
여러 미디어를 아우르는 트레일러 커리어
세 개의 레이블이 합쳐진 만큼 고스트라이터 뮤직의 커리어는 무척 다양합니다.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은 작년 3월 개봉한 디즈니의 실사 영화 ‘뮬란, 충격에 강한 웨스턴 디지털의 모바일 저장장치 ‘G-Technology’, 사이코 스릴러 영화 ‘리지’의 TV 광고와 ‘스타워즈’를 모티브로 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광고 음악을 퍼블리싱 했습니다.
또한, 영화 ‘쏘울’의 트레일러 음악과 애플TV 오리지널 ‘체리’, ‘모탈 컴뱃’과 영화 ‘두 교황’의 트레일러 등 다양한 트레일러 음악을 만들어냈죠. 맨티스 역시 ‘콜 오브 듀티’ 모바일과 ‘사무라이 쇼다운’ 등 인기 게임의 트레일러를 총 7개 제작해 공개했습니다.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은 2019 Music+Sound Awards에서 드라마 Mid 90’s의 트레일러 음악 리믹스로 ‘Best Re-Record or Adaptation in a Film Trailer’상을 받으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에는 노르웨이의 썰매견 조련사와 썰매견의 이야기를 다룬 ‘토고’ 트레일러 음악으로 2020 Music+Sound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죠. 작품과 ‘찰떡’인 트레일러 음악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LG 올레드 TV, 음악으로 인류 공통의 가치를 이야기하다
상업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인 만큼 그들의 도전에도 특별한 장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LG 올레드 TV 광고 ‘Humanity’ 편은 공개되자마자 수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았는데요. ‘TV 광고를 보고 감동받아 한 번 더 보러 왔다’, ‘티비 필요 없는데 티비 너무 사고 싶음’, ‘인류의 다양한 얼굴에 감동이 느껴졌다’는 등 다양한 감탄 댓글이 달리는 가운데, 음악에 대한 칭찬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이번 ‘Humanity’ 편 광고 음악은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의 작품입니다.
‘Humanity’ 편 음악은 1967년 루이 암스트롱이 베트남 전쟁의 절망적인 참상을 보고 역설적으로 쓴 스탠다드 재즈 ‘What a wonderful world’를 칠아웃 스타일 사운드로 리메이크한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 버전의 노래 ‘Wonder World’입니다.
다양한 사람의 피부와 눈빛, 주름 사이에 담긴 질곡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주는 LG 올레드 TV의 뛰어난 성능이 광고에 담겼는데요. 웅장하면서도 차분한 신시사이저 사운드에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얼마나 멋진 세상인지 혼자 생각해요)’라는 희망적인 가사는 인종과 지역을 모두 넘어선 ‘인류애(Humanity)’라는 공통의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스트라이터 뮤직 그룹의 커리어에서 LG 캠페인은 그들의 광고 음악 커리어의 시작점에 가깝습니다. 최근에는 ‘MUSIC FOR MEDIA’라는 그들의 슬로건처럼 여러 가지 컬러의 코드 뮤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죠. 히스토리는 길지 않지만 여러 장르의 커리어를 보유한 만큼, 앞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그들의 음악을 만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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