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시간을 빼고는 노상 잔잔하게 하는 별거 아닌 생각이 하나 있다. 그러다 병원에 오면 그 생각이 무시무시하게 커져 나는 갑자기 거기에 완전히 잠식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 생각이 뭐냐면, 다 불쌍하다는 생각.
나는 기본적으로 모두를 불쌍하게 여기는 편이다. 여자도, 남자도, 노인도, 아가도,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동양인도, 서양인도….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그냥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생은 고통이다’라는 문장을 그렇게 마주하면서도 아무렇지 않다가 어느 날, 아마도 이십 대 후반의 어느 날, ‘헉, 정말 그렇잖아!’ 하고 화들짝 놀라버렸달까….
그렇지만 ‘불쌍하다’라는 말을 겉으로 내뱉어본 적은 거의 없다. 점점 더 철저하게 이 말을 내뱉는 것을 삼가게 된다. ‘불쌍하다’라는 말은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해 발음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해야 하는 말이라고. 왜냐하면 그게 타인의 삶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암묵의 룰을 어기는 행위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가 갑자기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카메라는 있지만 없는 거여야 한다는 우리 사이의 룰을 어기는 배우는 프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주변에서 툭하면 ‘너무 불쌍해’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을 본다. 소위 어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연기를 몇십 년 이상 했다는 것일 텐데, 그런 경력으로 계속 아마추어처럼 구는 것을 보는 건 좀 짜증 나는 일이다.
몇 달에 한 번씩 가는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은 약간 백화점처럼 생겼다. 개방적인 구조로 지어져 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아래층과 위층을 휘둘러볼 수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백화점이 아니라 병원이므로 나는 각종 매장 대신 각종 진료과목이 적힌 간판을 본다. 그리고 그 간판 아래로 드나드는 사람들도. 다들 각자의 고통이 가장 힘들 것이다. 그걸 견디면서 여기로 모여든 것이겠지. 모두 모두 참 불쌍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다. 물론 겉으로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가야 할 진료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나는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 전에 생일이었냐고 물어오셨다. 오실 때마다 모니터에 뜨는 나이 앞자리 수가 3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4가 되었다면서. 병원 진료실에 앉아 흰 가운을 입은 의사로부터 듣는 모든 말은 어쩜 이렇게 위력을 갖게 되는 것인지? 40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해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40대라는 이름의 거구에게 확 붙들려 꼼짝 못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박장대소하며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병원에 앉아 그 말을 들으니 제가 40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슨 선고처럼 들리네요!”
병원을 나서는데 갑자기 ‘어린이 대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하늘이 푸르고 구름도 두툼하니 멋스러웠다. 나는 나를 꽉 끌어안고 있는 40대 군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갔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어린이 대공원은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었다. 도착하여 매표소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는데 보이지 않았다. 무료입장이었다. 원래 무료입장이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섰다.
평일인데다가 너무 더워서 그런 것인지 사람이 없었다. 정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쉬는 날 우연히 열린 문으로 내가 들어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면서 동물원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걷다 보니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조금씩 앉아있었다. 대체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든 기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듯 그들은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 부채질도 살금살금 하고 있었다. 햇빛은 너무 강렬하고, 하늘은 너무 푸르고, 식물들은 너무 초록색이었다. 각자가 각자의 색에 진심을 다해 충실한 날이었다. 잠시 뒤 동물원이 나타났다. 역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동물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제 몸을 사리고 있었다.
나란하게 이웃하고 있는 얼룩말과 사슴의 우리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더위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몇 마리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사슴은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나를 주시했고 얼룩말은 바닥의 풀을 먹다가 내가 다가가자 먹는 시늉만을 할 뿐이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를 충분히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몸 근육 여기저기가 불안하게 연신 움찔거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긴장과 불편을 명백하게 인지하면서도 나는 태평하게 펜스에 몸을 기댄 채 그들을 계속 응시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안전하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응시가 가진 권력성을 또렷하게 감각하며 나는 지금의 내 얼굴이 갑자기 몹시 궁금해졌다. 뻔뻔하게 응시하는 내 얼굴, 어떤 얼굴일까?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행위 하는 나를 관찰하는 것은 조금도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지금 나의 얼굴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얼굴은 아마도 내가 타투를 다 드러낸 민소매 옷을 입었을 때 나를 바라보던 얼굴들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채 외출했을 때 내 가슴팍을 바라보던 얼굴들과도 비슷할 것이다.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얼굴들 하고도, 내가 달리고 있을 때 홀딱 벗고 다니냐고 소리를 치던 자의 얼굴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나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에게도, 한국에서 노동 중인 외국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얼굴일 것이다.
나는 병원도 아닌데 또 ‘그 생각’에 잠식되었다. 동물원을 구경하는 일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몸을 돌려 다시 얼마간을 걸었다. 왼편에 놀이동산이 나타났다. 역시 사람은 없었고 어디선가 빠른 비트의 가요만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 모두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잠식된 사람이 좋아할 만한 황량함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놀이동산의 전경을 무심히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얼마 뒤, 멈춰있던 롤러코스터가 추궁추궁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맨 앞에, 엄마와 아가 단둘이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가파른 굴곡을 지날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의자 아래로 긴 다리와 짧은 다리가 대롱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야말로 프로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니?”
내내 나를 부둥켜안고 아무 말 없던 40대 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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