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하철역 내 음료자판기 앞에서 목이 말라하던 5살짜리 내 딸은(정확히 생후 3년 8개월 된), 그 많은 음료수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이프로 부족하다’ 사 줘.”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그 애가 어찌 그 어려운 상품 이름을 알고 있을까. 물론 제품 이름을 다소 잘못 알곤 있지만. 나 역시 그 혼합음료? 미과즙음료?의 광고가 한창 런칭될 때, 그 낯설고 새로운 음료 이름에 적이 놀란 바 있다. 초기 광고는 지금 기억에 없지만 탄산음료가 아닌, 물맛에 거의 가까운 과즙음료란 점을 정확히 ‘수치화’하여 확실한 호기심을 끌어 모은 브랜드 네이밍이 아니었나 싶다.
그에 비해 동시에 나온 ‘니어 워터’는 참으로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심심해 보였다. ‘물에 가까운’ 음료라구? 그럼 그냥 물먹으면 되지 뭐. 물과 비슷한 음료임을 ‘뭐가 부족하니 채우고 싶다’라는 욕구를 수치까지 내세워 긁어주는 절묘한 아이디어는, 그저 ‘물에 가깝다’는 정직한 소구보다 훨씬 깜찍한 전략처럼 보였다. ‘니어 워터’는 그후 ‘니어 워터O2’로 바뀌었지, 아마-. 브랜드의 네이밍 작업은 광고 마케팅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자 출발일 텐데 ‘2% 부족할 때’는 그 성공적 첫 단추를 이름짓기에서 이미 이룬 듯싶다.
요즘 TV를 보면 이른바 물과 비슷한 음료광고 경쟁이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한때 ‘2% 부족할 때’는 신세대 스타인 여성 그룹 핑클을 내세워 ‘날 물로 보지마’라는 멘트로 물과는 다른 음료임을 신세대식 화법으로 구사함과 동시에, 경쟁 브랜드에 대한 은근한 협박(?)을 가했다. 여기에 ‘NO2’는 ‘넌, 그동안 물먹은 거야’로 역시 이중적 의미를 암시한 채 되받아치기도 했다.
요즘 이 광고, 저 광고로 지나치다 싶을만치 종횡무진하고 있는 유지태란 빅 모델을 내세운 ‘슬림워터 씬’은 ‘물을 아낍시다’란 멘트로 역시 물에 가까운 음료임을, ‘날씬하면 고맙지 뭐’로 젊은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숙제를 유지태의 부드러운 미소로 가장한 채 강요(?)하면서 파고 들고 있다.
그야말로 나같은 소비자가 볼 땐 물 가지고 심하게 싸운다 싶다. 신세대 모델에서 최진실까지 기용하며 ‘난 노는 물이 달라’란 멘트를 날리는 ‘2% 부족할 때’의 광고를 보면 그 광고전의 절정을 보는 것 같다. 그 음료계 선두주자의 자신감 넘치는 대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자신감이 지나쳐 ‘노는 물’이 ‘물(H2O)’이 아닌 ‘구역(Area)’으로 읽혀지며, 물맛, 아니 음료 맛이 싹 가시는 비속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개인의 지나친 비약일까? 5살짜리 아이도 기억할만큼 강력한 제목의 무게와 색깔이 치열한 광고전으로 되레 바래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 광고전은 어떤가. 한발 앞선 장르와 소재를 뒤따라가는 영화들은 아무리 마케팅을 잘해도 ‘아류’로 치부되며 시장에서 도태되는 건 불보듯 뻔하다. 그러니, 영화는 빛나는 마케팅에 앞서 남이 안 만드는 영화를 먼저 만들어서 시장을 ‘선점’하는 일이 최고의 기획이며 마케팅인 셈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흥행싸움을 불사해야 할 경우에 ‘감히 누가 우리 영화를 따를소냐’ 식의 오만하고 뻔한 광고전략을 구사하게 되는데, 참으로 일차원적이고 천박해 보인다.
자신이 1등임을 더욱 빛나는 크리에이티브로, 자신감을 겸손함으로 살짝 가린 채 치장하면 그 1등이 얼마나 돋보일까. 이건 영화 일을 하면서 항상 갖게 되는 바람이요, 숙제이기도 하다. 일반 광고를 하는 이들도 그럴까? 그런데 물같은 혼합음료시장에서 누가 진짜 1등이죠? 광고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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