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2 : Culture&Issue - '김본좌 사건' 확대경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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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Issue - ‘김본좌 사건’ 확대경
 
  그래도 섹스는 팔린다?  
정 성 욱 | 영상사업팀 대리
swchung@lgad.co.kr



사건을 먼저 정리해보자.
‘성명: 김 모 씨(‘김본좌’로 추정), 나이: 28세
사건개요: 피의자는 온라인으로 국내에 유통되던 일본 포르노물의 70%를 공급하다가 그만 덜미를 잡혀 2006년 10월 18일 불구속 입건. 죄명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경찰페이지 등 관련 홈페이지에 선처를 바라는 수천 건의 포스트 및 댓글이 발생. ‘김본좌 효과’라는 사회현상으로 명명. “사실은 입건된 김 모 씨와 김본좌는 동일인이 아니다”, “김본좌의 구속은 포르노업계의 자정활동의 일환이다” 등등의 의혹 속에 피의자에겐 가벼운 벌금형이 구형.’
사실 김본좌라고 구속된 김 모 씨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다. 따져 보면 소시민 하나가 먹고살자고 법을 어긴 것이지만, 소시민이든 누구든 범법에 대해서는 응당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니까(범법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납세의 대가로 제공되는 통쾌한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지 않은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구속된 사람이 아니라 ‘김본좌 효과’라 불리는 네티즌들의 탄원성 집단행동이다. 이 사건은 포르노그래피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입장 차이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사실 이전에는 공식적으로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한 가지 입장, 즉 ‘포르노는 영혼을 좀먹는 나쁜 것’이라는 입장만이 존재했었다. 이 전제 아래서 ‘나쁜 거니까 보면 안 돼요’와 ‘나쁜 건데 봐서 죄송해요’라는 상황이 파생되는 것이었다. 물론 ‘보면 어때서’라는 주장을 개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주류 매체에서 다뤄지지 않는 논외의 의견이었다. 흔히 이 사건을 ‘섹티즌들의 커밍아웃’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러한 논외의 의견이 이번에 전면적으로 주류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이다.

80년대 Sony의 좌절은 포르노그래피 탓(?)

흔히 ‘최초의 광학매체포맷 전쟁’으로 기록되는 베타 대 VHS의 싸움. 후세의 마케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80년대의 방식 대전’에서 소니의 베타는 JVC가 밀던 VHS에게 홈비디오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여러 가지 시각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포르노그래피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가정비디오라는 상당히 ‘개인적’인 미디어의 도래는 공공장소에서 보기 거북스러운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영상 소재 측면의 혁명이었다. 그런데 소니는 포르노를 비롯한 수위 높은 비디오용 영상물들을 베타로 발매하는 허가를 내주기를 주저했었고, 그러는 중에 수많은 고강도 포르노를 보유하게 된 VHS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광고나 흥행의 고전적인 속담인 ‘Sex sells(섹스는 팔린다)’는 말이다.
권력의 속성이란 것이 모든 영향력 있는 소재·장치·도구를 언제나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하며,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여 탄압하게 마련이다. ‘도색물’을 마마보다 무서운 것으로 취급하는 것, 마치 사회 붕괴의 단초로 단정지어 버리는 것도 실제로 음란물이 해롭다기보다는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면서도 정부가 관리하기가 ‘껄끄러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음란물은 ‘태풍’·‘사과’·‘개미핥기’ - 당신은 어느쪽?

지난 5월, 캄보디아에서 훈훈한 소식이 들려왔다. 음란물의 유통을 막기 위해 3G폰을 국가적 차원에서 금지시켰단다. 이제까지 지켜오던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라는데, 3G폰이 허용되자마자 음란물을 주고받을 것이 걱정되는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캄보디아는 국제적인 여성인권 취약지대로 자주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공익활동 홍보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이쯤 되면 이런 음란물 탄압은 여성인권 취약 국가들이 자기 부정을 위해 벌이는 발악이라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고려가 망한 이유는? 문란한 성문화. 신라 말기가 엉망이 된 이유는? 바람난 여왕. 베수비우스 화산의 폭발 이유는? 문란한 성문화에 대한 신의 징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포르노가(심지어는 섹스 자체도) 아주 나쁜 것이라는 강조하기 위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포르노가 성폭력을 유발한다. 포르노는 영혼을 좀 먹는다’며 별다른 근거도 없이 사회의 모레(mores)에 편승해 일단 주장하고 보는 것이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을 타고 있는, 소위 ‘여성문제/성문제 전문가’들의 인식 수준이다. 성인물·에로물·포르노·성범죄·성폭력 같은 토론에 필요한 개념들의 통일된 정의 정립조차 할 자신도, 할 의향도 없는 이들과 애초부터 제대로 된 대화나 토론 같은 것은 불가능한 분위기랄까.
이런 와중에 우리는 일본을 포르노 왕국이라고 욕하고, 일본은 우리를 강간의 왕국이라고 욕한다. 어쩌면 둘 다 맞는 이야기기에 피차 변명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내가 여성이라면 포르노 왕국 쪽이 강간의 왕국 쪽보다는 백 배 안전하다고 느끼겠지만 말이다.

음란물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탄압해야 하는 것인가 개방해야 하는 것인가는 이 자리에서 함부로 주장하고 싶지도 않고, 결론 내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현상들이 보여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바로 음란물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다. 태풍처럼 ‘자연스럽지만 나쁜 것’인지, 사과처럼 ‘자연스럽고도 좋은 것’인지, 개미핥기처럼 그냥 ‘자연스럽기만 한 것’인지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