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 있는 걸 낯설게 보는 법. 어렵지만 꼭 필요하고, 능숙해지면 보물이 되는 기술입니다. ‘소풍’같은 이 세상에 ‘보물’은 아직 많습니다. 하지만 꽁꽁 숨겨져 있으니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미 너무 익숙합니다. 늘 뜨는 태양, 늘 타는 차, 늘 먹는 밥, 늘 가는 시간. ‘늘’이라는 특성이 우리를 무디게 만들죠. 이 세상을 부러 낯설게 만들고 발견할 의욕을 잃습니다. 그래서인가 봅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언제 읽어도 울림이 있습니다. 이 세상살이, 밥벌이도 아니요, 고단함도 아니요, ‘소풍’이라는 낯설고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생이 소풍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보물찾기’가 아닐까, 덧붙여 생각합니다. 경인년 새해, ‘보물찾기’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보물을 찾고 발견해, 나눠보고 배워보려 합니다.
아티스트들의 보물찾기
우연히 참 예쁜 그림들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아티스트들의 컬렉션. 하나는 영국의 자선단체 ‘Shelter’에서 전시한 ‘House of Cards’이고, 또 하나는 몰스킨의 ‘Detour’ 전시입니다.
몰스킨의 ‘Detour’전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수첩이라는 평범한 물건에 ‘Creative’라는 가치를 얹어, 상상력 공간으로 바꾸는 몰스킨. 디자이너·건축가·가수·영화감독·포토그래퍼… 마치 그들의 수첩을 엿보고 아이디어를 엿보듯, 몰스킨에 작업한 작품을 엿봅니다. 런던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거쳐, 작년 말엔 일본에서 개최됐다고 하는군요. 카림 라시드의 의자 스케치도 있고, 건축가의 건축 스케치, 패션 디자이너의 콜라주도 있습니다. 헤밍웨이·피카소·고흐에서 현대 문화예술을 이끄는 사람들까지. 몰스킨은 ‘크리에이티브’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습니다.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필수품 같습니다. ‘Detour’전시, 우리나라에서도 개최돼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선물해도 미안하지 않은 유일한 수첩인 듯합니다.
Shelter의 전시도 비슷합니다. 홈리스 혹은 낡아서 위험한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단체. 그들은 다 쓰러져가는 집을 ‘카드로 지은 집’으로 표현했습니다. Shelter가 온에어했던 TV광고에서도 찾을 수 있죠. 그 캠페인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의 생각을 빌렸습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알렉산더 맥퀸, 테렌스 콘란 경`… 다양한 방면의 디자이너의 작품을 카드로 만들어 전시하는 겁니다. 카드는 한 장 한 장, 유명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녹아나 새롭습니다. Shelter는 이 카드를 전시하고 판매해서, 홍보와 동시에 수익금도 마련했겠지요. 그저 ‘도와달라’고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보다 예쁜 카드를 만들어 얘기하는 게 효과 있어 보입니다. 유명 아티스트들이라 명화처럼 소장가치가 있으니까요.
한 시간마다 바뀌는 뮤직비디오? 게다가 내가 나온다면?
네덜란드의 밴드, C-Mon`&`Kypski의 이야기입니다. <More is Less>라는 제목의 노래. 이 뮤직비디오가 참 독특합니다. 한 시간마다 뮤직비디오는 바뀝니다. 더군다나 내가 출연할 수도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제시된 포즈를 따라하면서 웹캠을 찍습니다. 그럼 한 시간 후엔 내가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는 거죠. 내 얼굴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니 관심 있게 보지 않을 수 없고, 노래를 안 들을 수 없죠. 1월 중순경까지 8,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그 수는 계속 올라가고 있죠. 한사람 한사람 얼굴 스쳐가는 건 찰나지만, 일반인에겐 잊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참 기발합니다. ‘보물찾기’를 제대로 해낸 거죠.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광고가 필요하다 얘기 많이 들었지만, 뮤직비디오의 이런 발상. 뜻밖입니다.
지금 잠시 tea bag을 디자인해보세요
이번엔 좀 더 일상적인 소재입니다. 매일 마시는 티백. 직접 디자인해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디자이너 강순모 님은 이렇게 했습니다. 이름 하여 ‘Hanger Tea’. 마시는 Tea와 입는 Tee가 발음이 같다는 데 착안한 듯합니다. 마치 옷걸이에 티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듯한 모습이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따뜻하게 우려 마실 차들입니다. 저 옷걸이에 걸려 있는 티백을 꺼내 머그잔 가장자리에 걸면 되는 거죠. 왠지 처음 보는 사람은 재미있어서 일부러라도 마셔볼 거 같습니다. 늘 보는 티백을 이렇게 변신시킬 수도 있군요. 그래서인지 외국 사이트에도 소개돼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오렌지와 폭스바겐, 맥도날드의 보물찾기
지난 호에 폭스바겐의 Fun Theory 캠페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 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돼, 소비자들의 생각을 공모하고 있더군요. 사이트엔 기발한 생각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있더군요. 핸드 드라이어에 손을 넣으면 그날의 운세가 뜨는 거죠. 마치 중국 음식점에서 포츈 쿠키를 깨뜨려 보는 것처럼. 별자리 운세 좋아하고 타로카드 좋아하는 우리나라라면 꽤 인기를 끌 듯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종이 타올 쓰는 양을 줄일 수 있겠죠. 폭스바겐은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올려놓고 투표를 하라고 합니다. 일등이든 아니든 모두 신선합니다.
마치 아이디어의 보물섬 같습니다.
이제 트위터다 페이스북이다 일상화됐습니다. 매우 낯설던 미디어가 익숙해지니 오렌지가 또 새로운 생각을 합니다. 트위터의 친구들, 혹은 페이스북의 친구들, 혹은 마이스페이스의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퀴즈를 내는 거죠.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클릭하고 ID와 PW를 입력하면 친구로 등록된 사람들에 대한 퀴즈를 냅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친구들 중 제일 어린 나이는 몇 살입니까?”, “이 사진은 누구의 사진입니까?” 직접 해봤는데 외국 사이트에 친구들 사진이 뜨니 그 또한 신기하더군요. 요즘 소셜 미디어를 광고매체로 개발해야 한다, 말들 많은데 이런 방법도 있었습니다. 모토롤라 휴대폰과 함께하는 프로모션이더군요.
그럼 이번엔, 맥도날드가 시내에서 무료 주차를 해준다면 어떠세요? 캐나다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모노폴리 게임이 다시 부활한 걸 기념해서, 모노폴리 게임에 있는 free parking 서비스를 하는 거죠. 게임에 있는 그림 그대로 곳곳의 주차장에 설치해놓고 무료 주차를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매력적인 이벤트는 처음입니다. 시내에 나가면 제일 난감한 게 주차인데, 이런 서비스를 해주면 맛있는 햄버거를 먹을 때만큼 고마울 듯합니다. 게임 속 서비스를 현실화 시킨 것도 재밌고요.
여행의 기술처럼
어느 도시에 한 삼사일 있다 갈 거라면 사람들은 부지런해집니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 하나라도 더 먹어야 하고, 하나라도 더 봐야 합니다. 신호등도 예사로 안 보이고, 간판도 새롭습니다. 늘 보던 것과는 다르니까요. 그게 여행이 주는 선물인 듯합니다. 알랭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는 작가, 메스트르를 소개합니다. 모든 걸 낯설게 보는 거죠. 마치 누군가의 집에 불시에 방문한 것처럼. 모든 걸 새롭게 보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익숙해 있는 걸 낯설게 보는 법. 어렵지만 꼭 필요하고, 능숙해지면 보물이 되는 기술입니다.
‘소풍’같은 이 세상에 ‘보물’은 아직 많습니다. 하지만 꽁꽁 숨겨져 있으니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꿀맛 같은 대가가 기다리니 보물찾기, 안 할 수 없습니다. 2010년 경인년 새해엔 모두들 새 보물 많이 찾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