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2 : Global View 일본 - 2010 일본 광고계 전망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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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열 | catfish61@hanmail.net
부산외대 일본어과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이론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일본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컨설팅회사 SPI 및 자회사의 컨설턴트로서 마케팅활동, 광고 캠페인, 브랜드 관리 등에 대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 일본광고학회 정회원.
 
 


투자효율성을 전제로 하여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확립하기 위한 관련 조직의 개편은 2010년 일본 광고계의 중심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신화에 가까운 성공 비즈니스를 반세기 넘게 이어온 일본 광고계는 2009년 기업실적을 말해주는 모든 지표에서 불명예스러운 기록들을 남기게 되었다.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광고계의 이러한 불황은 올해 1분기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염려되는 것은 4월 이후이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의 새로운 회계연도가 4월부터 시작되어 한 해의 예산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황과 맞물려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시장상황을 감안할 때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2010년에 단지 비관적인 현실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2월의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6월의 월드컵까지 세계적인 빅이벤트가 연이어 개최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광고계 전체에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국내적으로도 2011년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화에 대한 홍보방송이 본격화될 것이며, 이동통신 3사를 중심으로 한 빅캠페인 또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광고주와 광고회사의 새로운 관계 정립
과거의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 광고업계에서의 광고주와 광고회사와의 관계는 광고주의 의견이 주가 되는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광고 캠페인의 진행과 주도권이 광고회사에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광고예산의 집행과정에서 광고회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그들이 제시한 안(案)은 어떠한 여과장치도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톱3 정도의 광고회사가 누리고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80%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광고계 전체의 경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이른바 마루나게(丸投げ)라고 하는, 광고회사에 관련 업무를 일임하는 관행으로 아직도 광고업무의 현장에서 공공연히 볼 수가 있다.
이러한 관행은 TV를 중심으로 하여 광고회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짜여진 광고매체 거래의 구조적 모순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광고 관련 업무에 대한 지식이나 노하우가 축적되기 어려운 일본 기업의 조직체계 및 운영체계에 있다는 지적이다. 광고 관련 업무 담당자가 3, 4년에 한 번씩 교체되며, 새로 부임하는 담당자 또한 광고와는 전혀 관련 없는 부서출신인 관계로 전임자의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부터 광고회사가 개입해 자신들의 입장에서 업무진행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된다. 업계의 기본적인 전문용어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신임자는 어쩔 수 없이 광고회사에게 대부분의 업무를 맡기게 된다.
이것이 업무를 잡음 없이 진행하는 데 효과적이라 생각되었으며, 일본 특유의 신뢰관계까지 덧칠해지면서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관행 아래에서는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광고전략의 수행은 기대하기 어려웠으나 그것을 흠잡을 만큼 지금까지 일본 경기가 나빴던 적도 없었으며, 컨트롤할 노하우나 지식 또한 기업 측에는 없었다.
이를 언뜻 보면 ‘광고회사가 원하는 대로 업무가 진행되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즉 애매모호한 업무의 범위 때문에 광고회사는 기업 측에서 해야 하는 잡무나 각종 행사 등에 필요 이상의 협조를 해야 하는 등의 전근대적인 관계유지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몇 해 전 일본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광고매체거래의 불합리적인 관행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 과점적 시장구조로 인해 광고매체비가 왜곡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광고주들의 광고매체비에 대한 낮은 의식이 시장의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론의 여지가 있으나 일본 광고계에서 광고주들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관련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이 감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관행 속에서 이루어졌던 설명하기 어려운 예산집행은 아예 꿈도 못 꾸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광고 담당 부서의 능력배양과 권한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흐름일 수도 있다.
외자계 광고주를 담당하는 한 광고회사 관계자는 “외자계 기업은 마케팅이나 광고전략에 대한 의식이 높다. 따라서 업무위탁의 범위가 명확하고 의사결정이 빨라 매체구입비를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업무개선 자체가 효율적인 예산책정 및 집행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광고주가 본연의 주도권을 되찾고 체계적, 과학적으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업무 협력사들과 더불어 불황을 타개해 나가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때가 온 것이다. 즉 종래의 관행을 고집하는 광고주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고, 2010년은 그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다. 결국 불황이 광고업계에 긍적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ROI를 무기로 광고주가 달라진다
불황의 장기화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부쩍 주목을 받는 단어가 ‘광고예산의 투자효율성(ROI)’이다. 일본의 광고계에서 이 단어가 화두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지만, 효율성이나 금전적 가치로 판단하기 어려운 크리에이티브 활동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 업계에서, ‘투자 효율성’은 광고인들이 세상 모르고 떠드는 용어쯤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외자계 기업을 중심으로 조달담당부서(Procurement Officer) 내에 ‘서비스 구매부’라는 부서를 두고, 협력회사로부터 서비스가 제공될 때 그 내용을 비용과 질의 관계를 바탕으로 평가해 적합성과 타당성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순수 일본 기업으로 전달되었고,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투자효율성의 확보를 위한 광고예산 설정이나 집행에 있어서의 과학적인 프로세스의 확립을 위해서는 그 산출방식이나 분석방법의 과학화도 한몫을 하지만, 이보다는 조직과 운영체계의 개선, 거기에 의식의 개혁이 우선 과제로 지적된다. 도요타 자동차의 최근의 조직개편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광고/마케팅 활동을 주관해 온 그룹 내 관련 부서 및 자회사들을 통합한 하나의 자회사를 설립해 그룹 전체의 활동을 통괄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분석해 제품개발에 활용하겠다는 것이 주요 목표로 알려졌다. 지극히 당연하고 심플한 것이지만, 광고·홍보·마케팅 활동에 있어서 관련 부서나 자회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광고회사에만 의존한 방만한 업무수행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제조 측의 조직에서 주도하던 자동차 생산을 판매 측 중심의 조직주도로 바꾸겠다는 의도도 담겨져 있다. 이미 생산된 제품을 일방적으로 좋다고 알리는 게 아니라, ‘고객이 필요성을 느끼고 인정한 품질이 진정한 제품을 품질’이라 인식하고 그러한 제품을 만들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광고/마케팅 조직의 일신은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기업 전체의 방침 자체를 바꾸는 일이며, 이러한 움직임 없이 광고/마케팅 활동에 있어서 투자효율성은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1조 원 이상의 광고비를 지출해 온 도요타의 이 같은 움직임은 광고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투자효율성을 전제로 하여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확립하기 위한 관련 조직의 개편은 2010년 일본 광고계의 중심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광고주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광고회사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고, 각 매체사의 영업방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광고회사는 강화된 광고주의 의식 속에서 지금과는 또 다른 기획력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존 매체 가치의 재구축과 더불어 네트워트화,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변화에 신속하고도 정확한 대응이 요구될 것이다. 덴츠 사의 ‘덴츠 디지털 홀링스(Dentsu Digital Hoidings)’의 설립은 이러한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매체 측면, 서비스 측면에서의 변화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경기침체를 겪을 때에도 광고업계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 할 만큼 견실한 비즈니스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 광고업계에도 기나긴 불황의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만 넘기면 된다’는, ‘이번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일회성 방편이 아닌, 불황을 전제로 과거의 성공신화를 잊어버리고 장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새로운 구축과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