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다른 크리에이티브
그렇게 모두는 착한 아이가 되었답니다
-2010 칸느 광고제 리포트-
좋던 싫던 간에 광고업의 모습은 변화하고 있다. 그 안의 많은 요소가 생겨나고 죽어가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바로 광고업계에서 일하기에 가장 신나는 시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화두는 ‘Social Responsibility’
광고제의 막바지, AT&T와 유니레버 등의 거대 광고주들을 모아 놓고 진행한 브릿지 월드와이드 사의 세미나에서는 “기업은 마케팅 활동을 통해 어떤 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하고 화급한 질문으로 선정되었고, 브랜드솔루션 회사인 브랜드카르마의 워크숍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광고를 만들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진지하게 토론되었다. 흥미로웠던 여러 광고주 세미나들도 주로 공익적인 가치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올해의 화두는 소셜네트워킹이 아니라 ‘소셜 리스폰서빌리티(Social Responsibility)’,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다. 기업의 마케팅 활동은 단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공통된 주장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올해 칸광고제에는 ‘공의를 위한 그랑프리(Gran Prix for Good)’라는 공공 캠페인에게 주는 상이 신설되기도 했다(Gran Prix for Good: THE METROPOLITAN POLICE의 ANTI-KNIFE CAMPAIGN).
혼돈,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것만큼 분명하다
사실 ‘착한 기업, 착한 마케팅, 착한 광고’라는 이야기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속가능성이 한창 화두로 떠오르던 2000년대 초반, 이 ‘착한 기업, 책임지는 기업’이라는 담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수많은 기업의 사회활동을 촉발시켰다. 광고의 입장에선 마음 훈훈해지는, 조금은 유치한 신파광고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오랜 주제가 다시금 이 2010년에 중요성을 띄게 되는 것은 단지 ‘착한 기업이 승리한다’는 이야기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건 기업 스스로 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에 가까운 정보에의 접근을 허용했다. 덕분에 반짝이는 PR활동을 벌이거나 사람들의 망각에 기대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희미해질 수도 있던, 잊고 싶고 떨쳐 내버리고 싶던 나쁜 기억들이 이제는 간단한 검색으로 다시 공개되어버리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이제 공적 존재는 절대로 거짓말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유럽에서 자기 제품이 불티난 듯 팔린다는 사진을 올려도 그 사진이 사실과는 다른 맥락에서 촬영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금방 공개가 되는 시대다.
새로운 툴의 등장과 급속도로 변하는 소비자들의 생활역학 때문에 혼란스러워진 마케팅의 세계에서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만큼은 분명하다. 결코 소비자를, 그리고 시장을 속이지 말 것. 나쁜 의도와 거짓은 쉽사리 간파되는 시대에서는 기업의 선의와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어떻게 파느냐???’
올해 칸광고제 시사회장에서 야유를 받은 광고가 하나 있었다. 광고를 못 만들었기 때문도 다른 광고를 베꼈기 때문도 아니었다. 월드컵 마케팅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그 광고는 평범한 사람들의 월드컵을 소재로 제법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광고주의 로고가 떠오르는 순간 극장 안은 비난과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 광고는 바로 브리티시 페트롤륨(이하 BP)의 기업PR 광고. 얼마 전 시추선의 파이프 파손으로 미국 앞바다를 기름범벅으로 만든 바로 그 회사다.
크래프트라는 측면의 광고는 무엇을 파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파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BP의 과오를 가리려면 어떤 속임수와 재주를 부려야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답변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을 파느냐가 훨씬 중요한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폭스바겐 펀 씨어리-1 폭스바겐 펀 씨어리-2
폭스바겐 펀 씨어리-3 ANTI-KNIFE CAMPAIGN
열쇠는 광고주에
좋은 광고/마케팅 만들기의 시작이 ‘좋은 기업되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고의 헤게모니는 어쩔 수 없이 광고회사가 아닌 광고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광고 만들기’가 그동안 집착했던 기교의 약발은 향상된 정보 접근성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게다가 진심이 중요해진 시대에 특정 브랜드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 역시 광고주를 따라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최근 수년 동안 방법론에서 갈팡질팡하면서 디지털 대행사, 고전적 대행사로 갈라져 싸우는 것도 이런 권력이동을 부추겼을 것이다. 코카콜라의 CMO 조 트리포디가 2010 월드컵 캠페인을 하면서 11개 광고회사를 한 테이블에 모아 놓고 일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나, ‘올해의 광고주상’을 받은 유니레버의 CMO 키쓰 위드가 그동안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던 대행사 로우를 잘라버리고 디지털 마케팅을 직접 핸들링했다는 사례는 광고회사들에게는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의 칸광고에서는 광고회사의 재편, 산업구조의 변화, 심지어는 ‘대행사의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주제들이 토론되었다. 물론 이런 논의는 디지털 미디어의 태동기인 90년대 중반부터 계속 거론되어왔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올해는 그 절박함의 무게가 달랐다. 사뭇 칼이 바로 목 밑까지 온 심정이었다.
광고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시대
그러나 그런 격변 속에도 우리는 새 시대의 광고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올해 칸광고제는 광고와 마케팅이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기업이 벌이는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예를 들자면 킴벌리클락은 세미나에서 생리대를 팔기 전에 고객들을 옭아매고 있는 생리와 여성 신체에 대한 사회적 인습을 바꿔야 하는 것이 기업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기업의 구체적 활동이 바로 마케팅과 광고다. 폭스바겐 역시 ‘펀 씨어리(Fun Theory)’라는 캠페인을 통해 ‘재미가 사람으로 하여금 더 좋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속임수와 기교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광고와 마케팅은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제기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좋던 싫던 간에 광고업의 모습은 변화하고 있다. 그 안의 많은 요소가 생겨나고 죽어가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바로 광고업계에서 일하기에 가장 신나는 시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성욱
크리에이티브센터 카피라이터 | swchung@hsad.co.kr
호기심 때문에 죽은 고양이 영혼에 빙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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