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0 : OB Lounge - 아직도 또렷한 17년 전 문선이의 모습

 OB Lounge  
아직도 또렷한
17년 전 문선이의 모습

HS애드로부터 글을 의뢰 받았을 때는 마침 ‘올해 날씨는 유난히 더우면서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여름비가 자주 내린다’는 생각에 우리네 삶의 보편적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도 드는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내 지난날의 젊음을 함께했던 많은 LG애드 식구들의 모습과, 심지어 우리 곁을 영영 떠난 분들에 대한 기억들까지도 떠올랐다. 당면한 현실의 시간 앞에 그냥 잊고 살았던, 가끔 울리는 휴대폰의 경조사 알림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나 끄집어내곤 했던 소중한 그것들이 또렷이 각인돼 왔다.

TV-CF                                                                         피자헛 포스터

Now & Forever
나의 오늘을 만들어 주었으며 내일을 가능하게 한 소중한 LG애드의 여러 가지 기억들 중 17년 전 늦가을 마포빌딩 17층의 한 장면이 가장 선명히 떠오른다.
1993년 당시 우리는 그룹 광고주 외에 대형 외부 광고주로 손꼽을 수 있는 카스·나이키·피자헛 (쌍용자동차는 광고주로 모시기 전이었고, 대한항공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등이 있었다.
광고주 특성상 외국계열 광고주인 나이키와 피자헛은 그 당시 CR4국 김정식 국장을 필두로 3개의 팀장(김재호 부장/강용석ㆍ유시준 차장)이 맡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지나온 시간만큼 많은 광고회사를 거쳐 캠페인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지만) 피자헛은 아직도 우리 귀에 익숙한 “함께 즐겨요! 피자헛”이라는 로고송을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면서, 연간 캠페인 계획에 따라 기업PR과 메뉴(신상품)별 광고로 나누어 연간 CF를 4〜6편 정도 만들던 우량(?) 광고주였다. 흔히 애뉴얼 플랜을 11〜12월경 제안하면 그에 따라 다음해에 실행하는 광고주 & 광고회사의 모범사례로 꼽을 만한(물론 좋은 기억만 선별적으로 기억된다는 심리이론에 의거한다는 전제로) 관계였다. 하지만 1993년에는 익년 애뉴얼 P/T를 준비하는 과정과 동시에 이례적으로 흔히 세일광고를 하시겠다고 하면서 그 소재로 ‘피자헛 사랑의 축제’를 숙제로 주었다. 그 당시로는 행사 프로모션 광고가 흔치 않았을 뿐 아니라 광고주 제안도 Regular한 상황에서 벗어난 파격이었다.

1994년 제작물 시안을 위해 준비하던 동료들의 분주했던 모습 너머로,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 “문선이는……말하거나 들을 수 없지만…사랑으로 말하면 들립니다” 슬로건과 카피, PPM과 실 제작과정까지의 모든 감동들이 생생하다. 지금 사무실 인근에 있는 청음회관에서 실제 청각장애우들이 교육받는 특수학교(수유리 소재)를 소개받아 해맑은 문선이를 만났던 날, 그리고 촬영현장에서 나보다 더 맑고 밝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아픔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왠지 눈물이 났다. 사실적 연출과 투박하기까지 한 평이한(사실적) 편집에 내레이션 없이 화면 하단의 반투명 자막으로 카피가 보이고, 문선이의 수화로 표현되던 그 영상은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꿈(크리에이티브를 통한 수용자와의 공감대 형성. 즉 수용자가 진한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기억의 어제이며 오늘이고 가야 할 이정표가 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2011 사랑의 열매 캠페인과 연관맺음은 단순 우연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는 생각이다. 

안삼기
청강문화산업대ㆍ백제예술대 겸임교수 |  skahn63@yahoo.co.kr

1988 럭키금성(현 LG) 그룹공채 86기 입사, 1991 엘지애드 CM PD, 2000 부장 재직,
2007 CM프로덕션 애스크 - 8마일 감독(대표), 현재 광고회사 온앤오프 E.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