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10 : 고적으로 본 역사 인물 -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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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바 두바 두와다~’ 의미 없는 흥얼거림이 사람을 사로잡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박 형 수 부국장 | 기획4팀
hapark@lgad.lg.co.kr
 
 
서울 시내가 거대한 물의 힘에 굴복하던 날,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집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보는 사람들의 모습들에 ‘내가 서울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낯익은 선율, “What a wonderful world~”
평소의 그 혐오스런 휴대전화 벨소리가 오늘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갑자기 황금색 보리밭의 이현세(만화가)와 헬리콥터가 나즈막히 날아가는 어느 광고의 한 장면, 그리고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이란 독특한 억양이 교차되어 갔습니다.

초록빛 나무들과 빨간 장미들을 바라봅니다.
당신과 나를 위해 활짝 핀.
그리고 나는 생각합니다,
얼마나 멋진 세상이냐고.
푸르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바라봅니다.
눈부시게 축복 받은 낮과 성스런 밤을.
그리고 나는 생각합니다,
얼마나 멋진 세상이냐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rong)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항상 “이 사람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연주하는구나, 그리고 그 느낌은 놀랄만한 전염성을 갖고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정말로 <What a wonderful world>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하고 흥얼거리게 되고, 루이의 큰 입과 하얀 치아, 싱글거리는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 말을
실감케 합니다.
 
재즈와 광고는 닮은꼴
루이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홍등가에서 15살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12살 때 소년
감호소에 들어가, 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소리가 부드러운 음색을 내는 ‘코넷(cornet)’을 배우게 되면서 재즈와 인생을 함께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재즈의 역사를 더듬어 보겠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신대륙의 노예로 팔려가던
시절, 뉴올리언스는 프랑스령이었습니다(이번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세네갈은 주요 노예 항구였답니다). 흑인 노예들은 유럽인들의 음악적 체계성을 일요일마다 찬송가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악랄한 백인 농장주들도 노예들에게 하나님의 교회에는 보내주었거든요. 여기서 아프리카의 독특한 리듬과 민요, 노동가 등이 어우러지면서 흑인 민속음악인 블루스와 현대 대중음악의 기초를
제공한 재즈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아프리카 음악은 솔로 보컬과 집단의 화음 그리고 허밍 등을 적절히 구사해서 독특한 매력을 내는데,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가 <파워 오브 원>이나 <글래디에이터> 등에서 멋지게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인과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크리올’이라고 불리지요)들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타 인종이 만나고 타 음악이 만나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흡사 광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재료를 기막힌 블랜딩으로 창조해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 농심라면’이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고, ‘골라 먹는 재미
- 배스킨라빈스31’ 은 남대문 노점상의 “골라 골라 미스김도 골라” 아닙니까? 광고의 명 카피에서도 ‘고향의 맛’, ‘패션 코리아’,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깐깐한 정수기’ 등 뭐 하나 어렵거나 생경한 단어는 없습니다. 평소처럼 쓰이지 않는 단어들의 위치를 바꾸고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어법들을 구사해서 새로운 맛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재즈라는 음악은 우리 광고인들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재즈는 기존 서양 음악과는 다르게 연주자의 실력을 한껏 뽐내는 즉흥 연주(ad lib, 이것은 우리네 가야금 산조나 해금 산조 등 산조라는 독특한 형식과 비슷합니다)와 세션별로 이루어지는 연주가 특징이며
매력이기도 한데, 마치 광고에서 카피와 비주얼이 절묘한 조화와 각각의 맛을 내는 것을 연상
시키기도 합니다.
영화 <스팅>의 주제곡인 <The Entertainer>에서 반박자 치고 들어가는 피아노 연주(스캇 조플린)는 엇박자가 만드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멋지게 소화해 내면서 재즈의 또 다른 특징을
맛보게 해주기도 하지요. 요즘 ‘Why be normal’ 하고 끝나는 LG텔레콤 ‘카이’의 CM만큼이나 왠지 거친 속에서 세련된 감각이 느껴지는 게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캣 송’으로 세상과 커뮤니케이션
재즈는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17년 뉴올리언스의 공창지역인 스토리빌이 폐쇄된 후
그곳에 있던 재즈 뮤지션들이 시카고, 뉴욕 등으로 퍼지면서 미국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당연히 그 중심에 있었구요. ‘당연하다’는 표현은 루이가 연주 실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타 연주자들과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특징을 지녔다는 점에서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루이는 본인 스스로 1900년 7월 4일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그의 출생신고서가 발견되면서 1901년 8월 4일생임이 밝혀졌습니다. 20세기의 시발점인 1900년생, 그리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생을 고집한 배경에는 백인들이 주도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에서 가장
미국적인 스타라는 상징성을 갖고자 했던 루이의 계산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요? 본인이 이 계산을 하였다면 훌륭한 광고 전략가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또 하나 루이의 위대한 발명품은 ‘스캣 송(scat song)’이라는 겁니다. 가사를 부르는 게 아니고
‘샤바 두바 두와다~’ 등 별 의미가 없는 말로 노래하는 것이지요. 루이가 가사를 잊어버려 즉흥적으로 이 방법으로 노래를 했다는 설이 있지만(루이는 악보도 볼 줄 몰라 한번 들으면 다 외웠다는데), 진위야 어찌 되었든 그에 의해서 스캣 송이 발전하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의 고향 아프리카에서는 허밍 같은 소리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는 않았을까요? 타잔도 동물들을 불러 모을 때 “아~ 아~ 아” 하던가요? 제 개인적으로는 <불나비>를 불렀던 김상국이라는 원로가수도 잘했지만, 70년대 한 TV광고 배경음악으로 들은 <목소리를 위한 발라드>나 조지 벤슨의 <This Masquerade>, 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어 버린 랩의 효시가 아닌가 싶어 루이의 위대함에 사뭇 매료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로서 리브스(Rosser Reeves)의 반복 광고 기법이나 캠벨 수프(Cambell Soup)에서 보여 주었던 히든 드라마 찾기 등은 우리네 많은 광고인들이 전략이나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떠올리는 교본이 되지 않았습니까?
가끔 루이를 만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가 내 사무실에서 말하지요. “광고를 만들 때마다 새로움에 목말라 하지 말고 주변에서 ‘생활의 발견’을 해보라”고….

무지개 일곱 색깔이, 하늘에서,
그리고 스쳐 지나는 이들의 얼굴에서
아주 아름답게 빛나는군요.
친구들이 서로 만나 악수를 하며 “안녕(How do you do)”이라고 인사하는 것을 봅니다.
진심으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 같군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커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겠지요.
그리고 나는 생각합니다,
얼마나 멋진 세상이냐고.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