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10 : Case Study - TIFFANY & Co.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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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행복의 정점, 티파니와 함께  
 
 TIFFANY & Co.
 
김 원 규 CD | CR1본부
wkkim@lgad.lg.co.kr
 
Breakfast at Tiffany’s
달콤한 <Moon River; 노래 오드리 헵번>의 선율이 흐르는 맨해튼 5th 애비뉴의 새벽. 옐로 캡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와 ‘티파니’ 점포 앞에 멈춰선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마치 성대한 이브닝 파티에 참석이라도 하듯 진주 목걸이에
블랙 드레스와 선글라스로 완벽하게 스타일링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그리고 그 언젠가 부호들 상대의 파티 걸이 아닌 현실 속의 신데렐라를 꿈꾸며 티파니 진열장의
보석들을 쳐다본다. 지방시(Givenchy)가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 이 스타일은 이후 유행의 현재진행형이 되었다)를 입고, 이미 온기를 잃어버린 샌드위치와 커피를 홀짝거리며...
그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여자! 그녀는 이미 1993년 1월 20일
결장(結腸)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우리들 가슴 속의 연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로마의 휴일>의 호기심 가득한 공주, 매력적인 사브리나로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던 오드리
헵번이 우리에게 다시 한번 다가온 것은 아마도 지난 1988년으로 기억된다.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special ambassador)로 수단·이디오피아·소말리아·베트남 등을 방문하여 죽어가는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등에 업은 모습은 그녀를 배우 이상의 여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습니다” 라는 카피에서처럼.
170cm의 키에 몸무게 50kg, 32-20-35의, 배우로서는 그렇게 좋지 않은 몸매의 소유자인 그녀였지만 50, 60년대를 풍미한 다른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 세계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연인으로
기억되는 행운을 갖게 된 것도 그러한 사랑을 가진 덕이었으리라.

Manhattan 727 5th Ave. - TIFFANY & Co.
티파니는 원래 지금의 위치가 아닌 브로드웨이에서 1837년 오픈했다. 그리고 패션의 중심과 고급 상가의 이동에 따라 다섯 차례나 북상하다가 1940년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최고급 상가가 즐비한 맨해튼 5th 애비뉴와 57St.의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 티파니의 설립자는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와 친구 존 영(john B. Young)이었다. 그들이
티파니를 설립할 당시 미국은 온통 빅토리아시대의 유럽 귀족풍 디자인과 보석이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티파니는 유럽 귀족풍의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자기만의 아메리칸 스타일의 보석류를 선보여 미국 중산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티파니는 보석과 실버, 자기와 크리스털 부문에서 최고급 품질과 뛰어난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를 기념하듯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티파니 룸’이 있을 정도로 티파니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과 사랑은 각별하다.
하긴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는 커팅에서 광택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마다 세계적 권위의 수석 디자이너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감정사들이 엄격하고 철저한 검사를 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것을 봐도 그러한 자부심이 헛된 것만은 아닌 듯싶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