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9-10 : 크리에이터@클리핑 - 꽃이되거나 혹은 절규가 되거나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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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원 CD/이현종 CD

광고1 - 작게 생각하세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

광고2 - 불량품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는 아마 잊혀진 여자일 것이다. 증오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무관심일지니... 아, 기억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하는 우리들 몸부림이여!
오늘도 우리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기 위해 그 숱한 말들을 쏟아낸 건 아닌지. 외로움은 뭉크의 ‘절규’다.
가끔은 내가 만드는 광고가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나를 알아달라고, 나하고도 한번 사귀어봐 달라고, 나를 제발 외롭게 내버려두지 말라고 절규하고 있는, 그림 속 저 사람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꽃이 되든 나비가 되든 고결한 여인이 되든... 소비자 가슴 속에 하나의 의미가 되는 일. 나는 그것을 감히 크리에이티브라고 부른다. 제품을 하나의 ‘의미’로 바꾸는 일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광고에 입문하던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윌리엄 번벅을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터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나에게 하나의 경외이며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스승 중의 하나이다.

광고3 - 가네,가네,'비틀'이...

60년대를 미국 크리에이티브의 르네상스로 만든 번벅과 그의 DDB의 작품들을 평가할 때 6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그들의 variation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들 작품의 독창성은 광고사에 있어 가히 혁명적이다. 그 중에서 백미로 꼽히는 캠페인이 바로 ‘Think Small’, ‘Lemon’등으로 대표되는 폴크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 캠페인일 것이다<광고1> <광고2>. 그런데 그렇게 영원한 고전으로 추앙받으며 유유히 역사 속의 전설로만 남겨질 것 같던 그 캠페인에 1998년 속편의 도전장이 날아들어 왔다.

 

 

 

광고4

번벅에 도전장을 꺼내들다

70년대 들어 일본 소형차의 대대적인 공습은 실로 진주만 공격 이상이었다. 디트로이트-미국 자동차 생산의 중심지-를 거의 초토화시켰으며, 그 와중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비틀도 77년 마침내 미국 시장에서의 철수를 결심하게 되었다<광고3>. 그리고 10년. 멕시코에서만 한정 생산되던 비틀은 98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이른바 뉴 비틀(New Beetle)의 등장이다.

광고 5

그리고 그 해 3월 뉴 비틀 캠페인의 첫편이 공중파를 타며 대대적인 캠페인의 첫 시동을 걸었다. 어마어마한 거장들의 속편(사실 당사자들에겐 그리 탐탁치 않은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을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천재일우의 기회인 동시에 또한 일생일대의 부담이기도 하다.

광고 6

대행사는 보스톤 주재 아놀드 커뮤니케이션(Arnold Communications)-사실 이 신출내기 광고회사 가 95년 1억 2천만 달러의 폴크스바겐 광고대행권을 획득하게 된 것 또한 세계 광고계를 깜짝 놀라게 한 빅 뉴스였다-이며 동사의 크리에이티브 수장은 바로 이 글의 주인공 론 로너(Ron Lawner)였다.

광고 7

“사실 너무 바빠서 우린 두려워 할 틈도 없었습니다. 그냥 앉자마자 일에 빠져들어 갔지요. 뉴 비틀의 필링을 잡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차는 정말 독특한 차입니다. 독일에서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미국적이었으며 우리들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차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들과 그 유명한 60년대의 인물들을 비교하고 싶어합니다.


광고 8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의 작업은 그 당시 것들에서 벗어나 훨씬 진보되어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폴크스바겐 캠페인을 머리에서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 캠페인이야말로 내가 광고에 흥미를 갖게 만들었던 1등 공신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일을 시작하면서 아마 그 당시 분들도 처음에 이 차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겠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광고 9

이 차의 에센스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까를 고민해보면 이 차가 아주 유니크하고 심플하며 정직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그리고 저 역시 아주 심플하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점에서 60년대 그 분들이 내린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유니크한 모습을 보세요. 60년대 것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광고 10

하지만 뉴 비틀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틀 클래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냉식 엔진에서 수냉식 엔진으로 바뀌었으며, 차 뒤쪽에 있던 엔진이 앞쪽으로 이동했고 차 가격도 2,000달러에서 15,000달러로 경차치곤 다소 만만치않게 책정되었다.


광고 11

“비틀이 갖고 있는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무시해버리는 일은 위험스런 일일 겁니다. 하지만우리는 아주 현대적인 방법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뉴 비틀은 더 이상옛날 차가 아니거든요. 기술적으로도 최첨단의 차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우리가 만든 광고물들을 보면 알겠지만 특별히 특정 그룹을 타깃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광고 12

대부분의 마케팅 전략이 특정 타깃을 겨냥하는 반면에 뉴 비틀은 신세대층에서 조기 퇴직자까지 전계층을 겨냥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역시 타깃에 따라 그들의 취향(taste)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뉴 비틀의 크리이에이티브의 핵심은 결론적으로 ‘소소익선(少少益善 less is more)’이다. 심플하며 정직한 제품임을 말하는 데 아트나 카피의 장황함은 금물이다. 그리고 제품 자체를 말하기보다는 아주 지적인 방법으로 브랜드 컬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타깃별로 어떻게 표현을 달리하고 있나 살펴보자.

“엔진은 앞 쪽으로 옮겼지만, 감동은 제 자리에 있습니다”<광고4>.

광고 13

전통적인 비틀 매니아들을 타깃으로 하는 광고다. 그들에게 비틀은 엔진이 뒤에 있는 차다. 그리고 그 점이 그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엔진의 위치를 옮겼다는 것은 그들에겐 탐탁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가벼운 유머로서 그들의 기분을 풀어주고 있다.

“UFO를 그대로 베껴서 만들었습니다”<광고5>.

광고 14

신세대를 겨냥해서는 이런 식의 조크가 쓰여졌다. 더 이상 옛날 차가 아니라 디지털 기술로 재무장한 최첨단의 차임을 가벼운 조크로 풀어내고 있다. 신세대와 올드 매니아들 사이, 낀세대 쯤으로 얘기될 수 있는 타깃들에게는 어떻게 얘기하고 있을까?

“80년대에 당신의 영혼을 파셨다면 이제 그것을 다시 사들일 기회가 왔습니다”<광고6>.

미국 땅에서 비틀이 사라진 80년대, 진정한 차가 사라진 그 시절. 소비자들에게 비틀이 아닌 다른 차를 사야만 한다는 것은 참으로 굴욕적인 일이었을 것이라고 조크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타깃에 따라 매체에 따라 뉴 비틀은 탁월한 카피워크를 선보이고 있다.

“동시에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을까요?”
뉴 비틀의 모양을 풍자하고 있다<광고7>.

“안아줄까? 몰아줄까? 안아줄까? 몰아줄까?”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어쩌면 더 귀엽다<광고8>.

“새로운 모습으로 멋지게 등장. 히터처럼”.
과거 비틀은 다른 차와 달리 히터가 없었다. 히터 달린 차가 마치 신형차의 전부인 양 뻐겼던 것을 풍자하고 있다<광고9>.

“이런 차는 일생에 두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올드 비틀, 그리고 뉴 비틀<광고10>.

“전생에 착한 일을 하셨다면,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환생 할 것입니다.”
동양의 윤회사상을 유머러스하게 끌어들이고 있다<광고11>.

“디지털로 재창조되었음” <광고12>

“비틀 2.0” <광고13>

<광고 12, 13>은 와이어드(WIRED)같은 신세대 잡지나 야후 등에 집행되었다.

“장식은 더 적어지고(더 심플해지고), 힘은 더 세지고” 60년대 히피들의 반전사상을 대변하는 그들의 슬로건 ‘flower power’를 절묘하게 대입시키며 올드 팬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광고14>.

하나 하나 대단히 지적인 카피들. 제품의 가치를 말하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비수처럼 날카롭다. 이 캠페인은 그 해 칸느에서 인쇄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 광고계의 찬사를 받는다. 로너의 말처럼 대체적으로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상을 받는 데는 그래픽 어프로치가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카피 중심적인 이 캠페인이 그랑프리를 받은 것은 조금은 의외였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당시 그는 칸느 심사위원이었음).

하지만 그만큼 이 캠페인이 세계 광고계의 관심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60년대의 그 위대한 고전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음을 공인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드 셀링도 소프트 셀링도 아닌 스마트 셀링에 가까운 비틀의 전통을 잊지 않으면서도 문화적 배경(context) 속에서 브랜딩을 해나가는 로너의 차원 높은 커뮤니케이션술(術)이 빛을 발한 것이다.


크리에이티브와 광고는 다르다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크리에이티비티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위대한 크리에이티브와 위대한 광고는 다릅니다. 위대한 크리에이티브는 재미있고 슬프고 혹은 즐겁고 웃기기도 하지만, 위대한 광고는 당신을 움직이고 당신에게 뭔가 의미있는 브랜드가 되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저를 정말 감동시키는 것은 늘 위대한 광고들입니다. 물론 뉴 비틀의 경우는 두 가지 측면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지요. 크리에이티브를 인정받은 동시에 매출 또한 60% 이상의 신장을 거두었거든요. 이것보다 보람있는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게 바로 우리가 이 곳에 존재하는 이유잖아요. 우리는 제품을 팔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 제품을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그 무엇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제품을 그들의 삶속에 녹여보세요. 그리고나서 필요한 제품인지 아닌지는 그들의 결정에 맡기십시오. 전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냥 제품을 가장 잘 보이게 두고 그 제품이 갖고 있는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이런 게 그들의 삶의 방식이라면 아마 이 제품도 그들의 관심이 되겠지요.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수많은 성공 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폴크스바겐은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론 로너는 뉴요커다. 맨해튼에서 태어났으며 브롱크스에서 자랐다. 그리고 롱 아일랜드의 어델피 대학(Adelphi University)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그러다 블루진에 티셔츠를 걸친 아트디렉터와 카피라이터의 특강을 들으면서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자유롭게 차려입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이 있다니... 정말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제일 많이 끌린 부분은 청바지에 티셔츠였어요.”

하지만 로너를 광고계로 끌어들인 첫번째 공로자는 TV다. 서너살 때부터 몰래 TV를 훔쳐볼 정도로 TV에 열광적인 팬이었다는 그는 TV예찬론자다.

“TV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럽게 광고도 접하게 됐으니까, 아마 그게 광고에 입문하게 된 첫 번째 동기인 것 같군요. 사실 지금도 TV를, 특히 영화쪽을 많이 봅니다. 거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사람들간의 관계, 또한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수많은 영상들... 저는 어떻게보면 학구적이기보다는 그냥 스펀지같다고 할까... 아니 몽상가에 가까워요.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광고에 미쳐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솔직히 책은 많이 안 읽습니다. 요즘엔 너무 바빠서 20페이지쯤 읽다 그냥 놓아버리고, 그러다 시간 나면 다시 보고 그런 식이죠.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는 여러 가지 많이 봅니다. 그리고 클래식이든 현대작품이든 아트를 좋아하죠. 박물관 산책 또한 제가 가장 즐기는 일 중 하나입니다.”

올해 칸느의 인쇄/포스터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세르파(Marcello Serpa)는 “좋은 광고에는 트렌드가 없다”고 했다. 트렌드를 쫓는 일이 마치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일로 둔갑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로너의 의견도 이와 비슷하다.

“아무리 트렌드가 바뀌고 소비자가 바뀌었어도 좋은 광고는 변함이 없습니다. 좋은 광고는 늘 소비자의 감성과 이성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소비자들 생활 속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게 만들고 생활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소비자는 변화해도 그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간도 점점 적어지고 매체는 보다 더 세분화되어가고 소비자의 관심 또한 여러 곳으로 분산되면서 소비대중의 생활은 훨씬 복잡다단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이 그들의 삶 속에 녹아 하나의 ‘의미’가 되게 만든다면 그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그리고 조금만 스스로를 낮춰보십시오. 그러면 뭔가 될 겁니다. 당신이 유머를 사용하든 드라마를 사용하든 그건 문제되지 않습니다. 지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늘 그것에 귀를 기울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론 로너가 만든 폴크스바겐 골프(Volkswagen Golf) 캠페인을 보자. 뉴 비틀 이전에 만든 캠페인으로 이 ‘일요일 오후’편은 1997년 타임지로부터 올해의 커머셜로 뽑힌 바 있다.

<광고15>
어느 화창한 일요일, 두 명의 젊은이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드라이빙이 좋아 차를 몰고 가고 있다(BGM은 그 유명한 ‘Da Da Da’). 그러다 길 한편에 버려져 있는 아주 푹신푹신해 보이는 의자를 발견하고 차를 세운다. 그리고는 하나 건졌다는 듯이 그 의자를 들어 해치백안으로 던져 놓고 다시 ‘Da Da Da’... 차를 몰고 간다. 잠시 후 서로 마주보며 뭔가 역겨운 냄새에 눈살을 찌푸린다. 의자에서 나는 굉장한 냄새. 다시 차를 세운 두 친구. 의자를 길가로 다시 갖다 놓는다. 그리고는 또 다시 차를 몰고 간다. 멘트는 이렇다.

“인생이라는 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걷는 사람과 운전하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Tag line, ‘Drivers wanted’(기사 구함 정도로 직역되지만 폴크스바겐을 몰지 않는 사람은 다 행인으로 볼 만큼 진정한 차는 폴크스바겐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진정으로 드라이브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정도 : 필자 주)가 자막으로 뜬다.

이 폴크스바겐 골프 캠페인은 대단히 파격적이다. 물론 젊은층 대상의 케이블TV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기존의 광고어법을 상당 부분 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를 조롱(?)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소비자도 분명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광고주 자신의 자신감과 정직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을 보자. 텅텅 빈 주차장에 홀로 차를 타고 앉아 있는 남자가 보인다. 그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하고 마임을 하듯 뭔가 이상한 손짓, 몸짓을 하고 있다. 그의 친구가 저벅저벅 차쪽으로 다가가더니 차 문을 연다. 그러자 쏟아져 나오는 음악소리, Styx의 ‘Mr.Roboto’다. 화면, Cut. 차를 타고 가는 두 친구. 80년대 초의 그 컬트뮤직에 서로의 입을 맞추며...

“아무 할 일도 없고 그냥 드라이브만 하는 날, 그런 날 있잖아요. 그런 날을 주제로 하고 싶었어요. 무의미한 일상의 어떤 날, 누가 소비자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겠어요. 참 파격적이지요. 폴크스바겐은 그걸 이해하고 살 만큼 대단히 수준 높은 회사입니다. 그게 그들의 문화이기도 하구요.”

폴크스바겐 골프는 우리 일상의 이웃들, 어떻게 보면 친근감있고 정직하고 또 유머도 있지만 가끔 실수도 하곤 하는 우리들 친구같은 인물들을 통해 강력한 브랜드 퍼스낼리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故) 오길비(D. Ogilvy)는 요즘 카피들을 보며 ‘영혼없는 쓰레기(soulless junk)’들이 너무 많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흉내내기에 불과한 카피들, 말장난으로 현혹하는 얕은 주장들, 무성의한 컨셉트의 나열들, 일방적인 자화자찬들...

우리는 지금 그 많은 광고비를 쓰면서 외로운 절규만을 양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소비자 가슴 속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도록 우리는 지금 어떻게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는가?
브랜드는 생명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