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02 : Special edition -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타깃으로서의 Single - 싱글(Single)의 정글(Jungle) 속으로 현미경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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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I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인구조사 보고에 따르면 21세기에 들어 우리나라의 독신자가 100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결혼에 대한 성인 남녀의 의식조사 결과 여성의 70%, 남성의 38%가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응답하기도 한다(조선일보 99. 11. 3). 결혼의 불필요성에 대하여 남녀 응답자간에 약간의 차이가 나타났는데, 남자의 47%가 “자유롭고 싶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고 했고, 여자의 56%가 “독신은 이미 결혼생활과 마찬가지로 삶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 응답했다. 남자가 자기 위주로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데 비해, 여자는 보다 신중하고 단호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싱글 시장, 형성에서 확장으로


이처럼 독신이 늘어가는 현상은 꼭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추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및 일리노이주에서는 독신여성을 상대로 일정기간 독신 남성을 남편 대행으로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남편 임대업(rent-husband)’이 등장해서 독신자들 사이에서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성취욕이 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뉴욕에는 ‘단지 점심식사(It’s just lunch)’라는 명칭의 파트너 소개업소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부담없이 한끼 점심만 먹을 친구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다. 일찍이 19세기 초 중국 광동성 일대에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독신 맹세를 하는 ‘자소 의식’이 있었는데, 영화 ‘자소’에서 그런 정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독신자가 늘어나면서 시장에 싱글(Single) 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에, 원룸 오피스텔, 원룸 주택 등 개인거주공간과 모닝콜, 홈쇼핑, 빨래방, 민원대행업과 세탁대행업 등의 서비스업, 24시간 편의점, 요기방, 도시락배달점 등의 개인 식생활업, 그리고 1인용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싱글 산업은 갈수록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독신자의 대표적 주거공간인 원룸 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시장 변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원룸주택은 서울 서교동, 홍대앞, 신촌 주변에 주로 밀집된 가운데 서초동, 압구정동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원룸 주택이 이처럼 대학가 주변에 밀집해 있는 것은 그 주변에 편의점, 빨래방 등 각종 생활 편의시설과 휴게시설이 많아 자유로운 삶을 즐기려는 독신자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원룸 전용가구도 인기다. 좁은 방에서 접었다 폈다 하며 부피를 줄일 수 있는 다기능 가구, 소파로 썼다가 침대로도 사용하는 소파 침대,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 별도의 식탁 없이 수납장을 식탁이나 독서용 책상으로 겸용하는 가구 등 다양한 상품들이 나와 있다. 또한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혼자서 쇼핑하기를 꺼리는 독신자를 대신해서 상품 값의 5∼10%를 받고 장을 대신 봐주는 쇼핑대행업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홈쇼핑 역시 갈수록 독신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LG홈쇼핑에 따르면 평일 10% 정도에 불과하던 20대 후반∼30대 중반 미혼 남녀의 이용률이 주말에는 24%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구매하는 품목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각종 운동기구를 비롯해서 소형 커피메이커, 1인용 밥솥과 같은 소형 가전제품, 속옷, 콘돔, 링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전자상거래 사이트에는 독신자 대상의 상품이 부지기수로 나와 있다..


독신자들을 겨냥한 ‘나 홀로 상품’이 일반화되면서 찌개거리 1인분, 해물탕 한 그릇 등 혼자서 먹기에 알맞은 음식들이 각 백화점 식품코너를 꽉 채우고 있다. 또한 홈메이드 식품의 증가 역시 독신자의 증가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데, 홈메이드 식품은 앞으로 전성기를 맞을 전망이다.

예를 들어 외식보다 값이 싸면서도 요리에 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외식 대용 식품을 생각해보자.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디저트나 어레인지 커피류 등의 시장 확대에는 독신자 집단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울러 남의 눈도 있고 해서 늘 밖에 나가서 사 먹는 것도 마땅치 않으니 오히려 반제품 상태의 원료를 가져다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이른바 ‘가정용 외식상품(HMR: Home Meal Replacement)’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 가는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HMR 상품은 본래 외식에 싫증이 난 직장인에게 가정용 고품질 음식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미국에서 개발된 가정 대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HMR 상품이 가정 대용식이라기보다 가정에서 외식의 즐거움을 대신할 수 있는 외식 대용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독신자들에게 저렴한 값에 간편하게 외식 기분을 내게 하는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HMR 상품은 햄버거나 켄터키 치킨 같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간단하게 끓이거나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라는 점에서는 인스턴트 식품과 유사하지만 음식 맛과 선도는 훨씬 뛰어나다. 말하자면 ‘이천쌀밥에 매운탕, 오징어볶음, 난자 완스’를 손쉽게 만들어 밥상에 올릴 수 있는 상품군인 셈이다. 또한 완전 조리식 레인지형 레토르트 상품도 고급 HMR 상품의 일종인데, 미트볼, 스파게티, 그라탕, 스튜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이들은 맛과 식감이 떨어지는 완전 조리식품과는 달리 반 가공 상태로 제공되기 때문에 야채 등을 섞어 프라이팬에 볶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독신자 생활에 잘 어울리는 상품군이라 할 수 있다.



인구통계적 분석보다 심리적 특성에 주목

독신생활 지침서 <혼자 살면 뭐가 좋은데(손주희 저)>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독신 인프라를 중진국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서구에는 독신자를 위한 재테크, 생활, 이성교제 정보 등을 다루는 전문잡지나 관련 서적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교제를 포함한 ‘독신 문화’ 측면의 독신 인프라가 보완됨으로써 자유롭고 멋진 프로 독신들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져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독신자 대상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우선 그들의 심리를 면밀히 고찰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독신자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몰입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영위하며 대개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혼자 음식점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일도 있지만, 가끔씩 불러내 함께 지낼 수 있는 이성 친구도 있다. 이때, 이성 친구와의 관계는 늘 선을 그어놓고 유지되기 때문에 섹스와 결혼은 별개의 문제이다. 더러는 자기 분위기에 맞는 단골 카페나 술집에서 음악감상이나 비디오 감상을 하기도 한다. 독신자들은 가족을 대신해줄 따뜻함을 애완동물에서 찾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노후보험이나 연금을 들어 만년에 대비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심리를 지배하는 것은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서로에게 의존하는 삶 따위는 너무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것이다.


독신자를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할 때는 이러한 독신자의 라이프 스타일 및 내면의 심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소비자 분석에서 가장 흔히 하는 인구통계학적(demographics) 분류는, 적어도 독신 소비자의 분석에는 적절하지 않다. 연령별, 성별, 직업별로 어떻고 어떻다는 것이 과연 독신 소비자의 심층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무기가 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독신 소비자의 심리적 특성(psychographics)에 주목하여 소비자의 내면 풍경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것이 훨씬 윗길에 속하는 방법일 것이다.

또 하나 유의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할 때 주로 양적 연구방법에 의한 통계 분석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시사점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마치 심리의 정글(Jungle)처럼 복잡한 싱글 시장을 위한 전략 수립에 있어서는 독신자 개인들의 의식 세계를 밀도 있게 파악할 수 있는 심층 면접(In-Depth Interview), 독신자들과 함께 생활해 보면서 그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 면밀하게 관찰하는 참여 관찰(Participant -
Observation) 등 질적 연구 방법론을 바탕으로 의미 심장한 방향성을 도출해야
한다.

많은 기혼자들은 배우자와 몸은 함께 나누지만 마음은 나누지 못해 보다 아픈 고독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에 비해 독신자들은 혼자 사는 고독은 있을지언정 실패한 기혼자에 비해 가능성이 열려 있는 편이다. 광고전략 전문가나 크리에이터들은 이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별로 팔리지 않던 에세이집의 제목을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로 바꿔서 다시 내놓자 베스트 셀러가 된 사례를 교훈 삼아, 독신생활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어쩌면 독신이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쥐었다 폈다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광고 전문가들은 독신자의 욕망을 창출하고 정당화시키며 그들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구질구질한 결혼생활이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황동규의 절창처럼 ‘홀로움(홀로 외로움)’의 인생이 더 값진 인생일 때가 많지 않겠는가?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