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08 : Special Edition - 문화 소비와 이미지 - '재충전'의 수단에서 삶의 목적으로

'재충전'의 수단에서 삶의 목적으로 조 정 훈 I 조선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donjuan@chosun.com

아웃도어 라이프(outdoor life). 단어 뜻 그대로 ‘문밖에서 이뤄지는 생활’이다. 사무실이나 집·학교 등 인간을 신체적·공간적으로 구속하는 ‘문’을 열고 나와 벌이는 활동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자연에서 살다가 점점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명 속에 매몰됐던 인간들은 점차 자연으로 회귀하게 됐다. 지금은 주말을 자연 속으로 돌아가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될 정도다. 외국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보면 주말쯤이면 ‘아웃도어 라이프용품’만 따로 모아 놓은 매장이 북적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포츠의 발전형태로 봐도 현대 스포츠는 ‘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로 변모하고 있다.   자연에서만? 도심에도 넘실대는 ‘아웃도어 스타일’   우리는 ‘하는 스포츠’를 사회체육 또는 생활체육이라고도 분류한다. 사회체육의 개념은 전문체육보다 늦게 나타났는데, 이는 의식주의 기본이 완전히 해결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생활이 풍요로운 단계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자리잡게 되는 사회체육의 특성 때문이다. 사람의 일상 생활은 긴장과 이완, 두 리듬의 연속적인 반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완의 시기에서 이뤄지는 것이 휴식과 재활이며,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사회체육이나 아웃도어 라이프로 나타나는 것이다. 같은 체육이라도 전문 체육은 긴장의 측면이 강하다. 경기자의 입장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선수들의 동작은 정치·경제·예술 분야에서 전문인들이 펼치는 행위와 다름없이 생존의 활동이자 그들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된다. 일반인이 스키장의 슬로프를 제멋대로 미끄러지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와 체력단련을 위한 레저일 뿐이지만, 프로 선수들에겐 스키장이 직장이고 슬로프를 활강하는 것이 생업 자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학계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넘게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욕구가 강화되면서 생활 체육이 뿌리내릴 토양과 풍토가 급속하게 조성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 이런 시기를 1970년대 중반에 맞았다. 이 때부터 부유한 상류층은 골프에 빠져 들었고, 중산층에서는 테니스·배드민턴·축구·등산·낚시 등이 붐을 이뤘다. 또 여성 중심의 에어로빅과 수영이 인기 레저스포츠로 부상했다. 아웃도어 라이프는 사회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상당히 보편화된 사냥(hunting)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그다지 보편화하지 못했다. 우선 ‘살생(殺生)’을 금기시하는 전통문화가 그 첫번째 걸림돌이었고, 지금도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에 따라 경찰서를 들락날락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대중스포츠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가 됐다. 게다가 땅덩어리가 넓어서 마음 놓고 사냥할 넓을 공간조차 없으니... 오토 캠핑도 마찬가지다. 차를 세워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모닥불을 지필 수 있는 들판이나 산기슭이 우리에겐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낚시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주말 밤이나 새벽이면 동네 곳곳의 낚시전문점 앞에 버스가 대기해 있고 사람들이 몰려들던 모습이 우리네 일상처럼 됐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한국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라이프는 등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 물론 세계적으로도 아웃도어 라이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는 것이 등산이라고 한다. 주말이면 붉은 꽃보다 더 붉게 산을 물들이는 등산객들이 전국의 명산을 뒤덮고 있다.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지리적인 특성에다가 특별한 장비 마련에 대한 부담없이 체력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능을 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아웃도어 라이프의 양상도 무척이나 복잡하다. 사람들이 즐기는 레포츠 분야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다. 골프·스키·MTB(산악자전거)·오프로드드라이빙·스킨스쿠버·스포츠클라이밍·페인트 볼·트레킹·카약(카누)·래프팅·윈드서핑·수상스키·승마·패러글라이딩·롤러블레이드·스케이트보드...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아웃도어 라이프가 점차 세분화하며 발전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심리와도 연관이 깊다. 속세를 떠나, 도시문명을 떠나 자연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웃도어 라이프의 출발 자체가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화하는 데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재미 있는 것은 아웃도어 라이프는 ‘우리의 일상을 떠나 말 그대로 야외에서 별도의 제한된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초창기 개념을 뛰어넘어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침투한 아웃도어 라이프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패션분야에서 아웃도어 라이프의 영향은 엄청나다. 필자도 학창시절 유행을 좇기 위해 ‘테니스화’를 사달라고 금식 투쟁(?)을 하던 기억이 새롭다. 어차피 학교에 신고 가면 정문의 ‘선도반’ 선배들에게 잡히기 때문에 주말에나 신을 수 있는 운동화였지만, 그게 없이는 도대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던 게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요즘, 대학생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학생 가방으로 인식되고 있는 소형 등산용 배낭도 본래의 기능보다는 ‘파급 효과’로 경쟁력을 갖게된 대표적 아이템이다. 가벼운 산행용으로 개발된 이 배낭은 편의성과 기능성을 무기로 생활속에 파고 들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산에 가는 사람들의 어깨에 매달린 배낭보다 학생들의 등교길에 함께하는 배낭의 숫자가 많은 실정이다.   골프는 못 쳐도 골프웨어는 입는다!   겨울 스포츠인 스키와 스노보드도 패션의 한 흐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필자도 10여 년 전에는 스키장에 가서 ‘스키복으로 갈아 입고’ 스키를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스키복을 입고 외출을 할 정도로 스키복 자체에 평상복의 개념이 많이 도입되어 있다. 스키보다 더 급속도로 패션계를 강타한 것이 바로 스노보드다. 지금은 ‘스노보드 룩(snow board look)’이라는 말이 겨울철만 되면 각종 신문·잡지·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스키복보다는 헐렁한 느낌의 스노보드 옷은 힙합 물결의 강세와 함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전문 스포츠의류 브랜드에서만 생산하던 스노보드 옷은 이제 동대문의 패션 타운에 가면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리 패션’이 됐다. 그런데 스노보드의 영향력을 훨씬 뛰어넘는 레포츠가 있다. 바로 골프다. 골프는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자신 있게 대중스포츠라고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어지간한 중산층이라면 골프웨어 한두 벌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패션에 관한 한 대중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골프웨어가 대중화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골프웨어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스포츠용품이라 탄력도 좋아야 하고 땀의 흡수·통풍에서도 기능이 좋은 소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골프웨어를 평상복으로 입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호감을 줬다. 고급재질에 세련된 색상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 마땅한 주말 외출복이 없던 중년층을 중심으로 "내가 골프는 못 쳐도 옷은 입을 수 있다"는 심리 아래 골프 의류를 캐주얼로 인식하고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골프웨어는 지난 99년을 기점으로 그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여기에는 98년 IMF 상황에서 미 LPGA무대 신화를 창조한 박세리의 지대한 공헌도 간과할 수 없다. 박세리로 인해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것을 골프웨어의 착용을 통해 나타내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골프웨어 업체들도 요즘은 아예 실제 필드에서 입기 위한 기능성 제품을 더욱 고급화하고, 평상복으로 입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박지은처럼 배꼽티와 카프리 바지(일명 칠부바지)등 ‘튀는 패션’까지 골프에 ‘퓨전’되면서 골프웨어의 다양화가 더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골프웨어 업계는 올해 시장 규모가 작년의 4,500억원에서 20% 이상 늘어난 5,5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직, 간접적인 스포츠용품의 생산은 스포츠 산업의 발전에도 큰 몫을 한다. 국내 스포츠용품업은 전체 스포츠 산업의 총 규모 12조1,343억원 가운데 41.1%에 달하는 4조9,899억원 정도(1999년 기준)였으며 그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레포츠가 영향을 끼치는 분야는 의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나오는 음료를 봐도 ‘스포츠 음료’, 심지어 ‘놀이 음료’라는 카피까지 사용하는 제품들이 많다. 커피 광고에도 낚시터가 등장하고, 카드회사 광고는 아들과 함께 낚시를 가는 아버지가 ‘그 카드’로 낚시장비를 얼마에 샀다는 내용이 줄거리가 되고 있다. 현대인들이 가지는 아웃도어 라이프에 대한 동경 심리를 효과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BMW, 아우디는 물론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오프로드(비포장 도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프형승용차를 앞다퉈 내놓는 것도 현대인들의 아웃도어 라이프에 대한 동경과 무관하지 않다. 중, 상류층일수록 산과 들로 자연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졌고, 이들에겐 도심속 포장된 도로는 물론 얕은 개울 쯤은 거뜬히 건널 수 있는 튼튼한 자동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웃도어 라이프는 인간의 일상에서 ‘절대량’으로 볼 때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웃도어 라이프는 재충전의 차원을 넘어 ‘넉넉한 삶의 향유’라는 것이 목적 자체가 되기도 한다. 여름 휴가를 맞아 해변이나 계곡으로 바캉스를 떠나는 가족들, 한 겨울 스키장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돈을 모으는 젊은이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웃도어 라이프 산업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