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2 : 상상력 발전소 - 마냥 즐거운 어린아이처럼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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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 발전소  
마냥 즐거운 어린아이처럼

크리에이터들은 마냥 즐겁게 살려고 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야한다. 자신이 숨 쉬고 살고 있는 세상과 동네 친구가 되어 같이 놀아야 한다.

 

2007년 여름, 과학과 예술이 융합해 기존 영역의 틀을 파괴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것에 공감하고 있던 기초과학 분야의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은하도시포럼’을 통해 새로운 융합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 당시 우리나라는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 간의 정책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한 대선후보가 포럼의 취지를 주요공약으로 선정하면서, 그 뜻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영상제작을 하게 됐다.
영상제작을 준비하던 기획단계에서 우리는 ‘생각의 힘’이라는 컨셉트를 이끌어 냈다. 산업을 이끄는 핵심 자원이 철과 같은 원천자원, 반도체와 유기시스템 같은 유형의 물질, 그리고 디자인 시대를 거쳐 ‘생각’이 가장 중요한 자원의 된 시대가 됐다는 의미였다.
‘생각의 힘’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 당시 포럼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각자의 전공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서로의 분야에 대해서도 탐구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융합의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는 환경조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훗날 국제과학비즈니스도시로 이어지게 됐다. 환경이 조성되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조성된 환경에 모인 사람들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생각의 힘’을 만들 수 있는가이다..

상상(생각)의 원천은 욕망
상상은 창의적인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구나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부지불식간에 하게 되는 것이다. 더 좋은 차를 갖고 싶을 때,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을 때, 더 좋은 환경으로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고자 할 때 누구나 꿈을 꾸고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광고계의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상상력은 곧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이 상상을 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을 잃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내일 모여서 회의해봅시다’라는 상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크리에이터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마치 사형수처럼 다가오는 시간에 초조해지고 혼자만의 피폐함에 기죽어있다. 밤에 친구나 애인을 만나 술을 마셔도, 홀로 커피숍에서 백지장과 씨름해도, 심지어 집에서 물구나무서기를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왜 뉴튼의 머리 위로 떨어진 영감의 사과가 내게는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성과 vs 유희
상상이 절실한 사람들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 성과주의자와 유희주의자.
이 두 가지 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꼽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통해 주변의 칭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아 두 사람은 음악인으로 살고자한 절실함은 똑같았다. 그러나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확연히 달랐다. 살리에르에게 음악이란 고행이고 정복해야 할 고지였다. 오선지 앞에 앉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러다 자신보다 게으르고무례하며 못생긴(?) 모차르트의 기이한 퍼포먼스에 대해 대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살리에르는 최선을 다했고 사람들이 완성도 높은 자신의 음악을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장난스럽게 마구잡이로 만들어 낸듯한 모차르트의 음악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바라보며 좌절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정말 천재와 평범한 인물로서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을까? 모차르트는 음악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계획과 부담감이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좋아할까’에만 골몰했던 반면, 살리에르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굳히려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에만 관심이 있었던 모차르트에게는 음악적인 체계인 화성학 등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고, 그랬기에 일반적인 음악적 사고의 한계와 틀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야구선수 고 최동원의 경우,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진이 그가 홈런을 맞았을 때의 표정이다. 홈런을 치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타자를 배경으로 호탕하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은 야구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어쭈, 네가 내 공을 쳤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똑같은 코스와 구질의 공을 던진다. 상대에게 또 한 번 쳐보라는 식이다. 그리고 그는 상대에게 박수를 쳤다.
야구라는 자신의 직업이 사회적인 명예나 몸값을 올리는 수단만이 아닌, 상대와의 진정한 승부를 즐기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멋진 모습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즐기면서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광고계에 필요한 건, 유희적 상상
그렇다면 지금의 광고계는 유희적 상상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까? 의무에 대한 강박이나 성과에 대한 부담 때문에 늘 안전지대에만 머무르려 하진 않는가? 신입사원이 들고 온 아이디어를 광고를 잘 모르는 풋내기의 생각으로 치부하진 않는가?
1990년대, 경제적으로 버블이었지만 광고계 최고의 호황이던 시절에는 주목받는 많은 광고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고주들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로웠고, 광고회사 사람들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안위보다는 작업의 퀄리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광고를 기획하면서 ‘이 작업의 결과가 나쁘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보다는 더 많은 대중들에게 호감을 갖도록 집중했던 시기였고, 좋은 성과를 거둔 사례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어려워진 경제상황은 성과에 대한 무조건적인 요구를 하게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한 모험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즐거운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성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성과를 위한 즐거운 상상은 가능하지 않은데. 환경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의 사람들은 크리에이터들이 부담 없이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크리에이터들은 환경을 방만하게 누리는 것이 아닌, 기꺼이 광고를 즐기는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크리에이터들은 마냥 즐겁게 살려고 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이 숨 쉬고 살고 있는 세상과 동네 친구가 되어 같이 놀아야 한다. '치열하게’가 아닌 ‘즐겁게’가 모든 광고인들의 모토가 되기를 바라며...  

조풍연
CF 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교수 | chpy@codacm.com


서울대 산업미술학과 졸업. 세종문화-조풍연 팀 CM Director, 2000년 (주)코다 프로덕션 창립, 대표감독.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멀티미디어 영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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