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2 : 문화적 영감 - 로맨틱한 크리에이티브 - 고대 문명과 디자인 소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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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 영감  
로맨틱한 크리에이티브 - 고대 문명과 디자인 소스

“쓸 만한 것은 이미 다 나왔다. 우리가 할 일은 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뿐이다.” - 괴테

 

이집트의 벽화에 새겨진 이집트 글자는 상형문자로서 모두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대의 태양신과 왕·역사에 대한 기록과 함께 함축적이면서도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형문자는 현재에도 사인시스템 등에서 픽토그램의 형식으로 발전돼 사용되어진다.


현대의 모든 크리에이터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정작 파랑새는 집에 돌아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역사를 돌아보라’는 말처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는 역설적이게도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찾아진다. 사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열광하는 새롭다는 것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모두 과거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저 먼 옛날의 역사라 치부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대의 문화나 역사들도 알게 모르게 직, 간접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새로운 문화 예술로 거듭나고 있다. 철학이나 문화, 사회적으로 지금의 시대에서도 그 영향력을 펼치면서 현대사상의 근간을 이루어 오고 있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부터,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시대,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까지 수많은 역사, 문화적 유산들이 현대적으로 변환, 반복되면서 진화해 오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이러한 예들은 무수히 많이 발견되지만, 여러 사례들 중에서 우리가 쉽게 가까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돌아보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당시 이집트의 벽화에 새겨진 이집트 글자는 상형문자로서 모두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대의 태양신과 왕·역사에 대한 기록과 함께 함축적이면서도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형문자는 현재에도 사인시스템 등에서 픽토그램(Pictogram)의 형식으로 발전돼 사용되어진다. 빠른 시간 안에 인지돼야 하는 도로교통 사인, 건물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사인시스템, 제품·시스템·기계 등의 설명서, 기업체의 로고·심볼 등으로 확산되면서 빠른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가지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쌍둥이 칼이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는 헹켈 사의 BI는 마치 이집트 벽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독수리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독수리는 제우스를, 부엉이는 아테네를, 산양은 디오니소스를 상징한다.
제우스를 대표하는 새는 독수리이다.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 세상에 내려온다거나, 독수리를 이용해 벌을 주거나 독수리에 태워서 올림푸스에 데리고 온다든가 하는 등 독수리에게 중대사를 맡겼다는 것을 보면 독수리는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신성을 상징하는 신수(神獸)였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 독수리는 신권·왕권, 그리고 권력과 권위를 상징했다.
이런 상징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에도 유럽 전체에 지속적으로 전파되면서 수많은 국가와 왕족의 문장으로 사용됐고, 비잔틴 제국·독일 제국·러시아 제국 등에서는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 셋 달린 독수리 등으로 진화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과대 과시하려는 시도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급기야 대서양을 건너가 현재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뻗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에 대머리 독수리가 많아서 독수리가 미국의 상징이 됐다는 논리는 어쩌면 유럽문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소유하고 싶은 미국인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야누스
야누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문()의 수호신이다. 모든 것, 즉 ‘연·월·일·4계 등의 처음과 끝의 신’으로도 해석되어졌다. 문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전후(前後)가 있다는 것에서 착안, 보통 전 후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모습, 때로는 4두())로 표현됐다. 야누스는 그 독특한 형태와 컨셉트 때문에 인류문화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사랑받아 온 아이콘이다. 이 야누스가 1800년대 프랑스의 삽화가 도미에(Daumier)의 캐리커처로 환생되기도 하고, 당시 무솔리니를 기념해 만들어진 조각작품에서도, 현대에 와서는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앨범 커버에서도, 그리고 요즘 최고로 핫한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는 카림 라시드(Karim Rashid)의 작품집 표지로도 등장하게 된다.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
흔히들 문명 문화 예술의 암흑기, 다크에이지(Dark Age)라고 불리는 중세는 기독교 신에 대한 경배와 칭송 이외의 것들은 모두 금기시됐던 때였다. 지구와 인류의 존재 이유는 종교이어야 하고,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부정과 함께 모든 것이 종교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됐다. 심지어 다른 것들을 숭배하려는 싹을 아예 잘라내기 위해 너무 아름답거나 사실적인 묘사도 금지됐다. 미술은 당시 성당에서 주어지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정한 형식과 양식에 맞춰 제작돼야 하고, 음악 또한 아름다운 소리에 현혹되거나 빠지지 않도록 정해진 악기만을 사용해 일정한 패턴에 따라 연주돼야 했다. 그리고 물론 그 모든 주제는 신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수백 년을 거쳐서 지어지는 성당의 창문을 장식했던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러한 시대의 형식을 충실히 따른 대표적인 이미지다. 검은 선으로 라인과 구역을 나누고 화려한 색으로 그 공간을 채웠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이미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본주의가 정착된 현 시대에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심지어 영국의 사진작가 길버트와 조지(Gilbert and George)는 이런 스테인드글라스의 이미지에 자신들의 주된 주제인 동성애와 파격적인 성적 표현들을 역설적이면서 극대비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이런 길버트와 조지의 순수 사진 이미지들은 다시 광고의 이미지로 거듭나면서 매우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비주얼들을 보여주고 있다.

 

십자군 전쟁
중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과도한 신앙심에 빠진 기독교인들이 군대를 만들어 이슬람국가를 침공하고, 칼과 창의 무력으로 종교를 강제 전파하려 했던 사건이다. 당시 쓰였던 십자가 문양의 방패는 지속적으로 역사를 흘러내려와 지금까지도 건재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방패는 보호막의 의미이자 충성도의 상징, 그리고 견고함·안전함·믿음
직함의 표상처럼 자리 잡아왔다. 11세기 템플기사단의 심플한 모양의 십자가 문장의 방패는 유럽의 많은 기독교 국가에 상징적인 영향을 주었고, 많은 곳에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장의 이미지로 사용됐으며, 그것이 이어 내려오면서 현대에는 튼튼하고 견고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기업이나 어떤 그룹의 로고로 쓰이는 경우로 표출되어진다.

르네상스 - 인간에 대한 연구와 원근법
중세시대가 지나고 신에 대한 일방적, 강압적 충성이 사라지자 인류는 다시 스스로 인간에 대한 고찰과 내면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드디어 신의 지배를 벗어나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모든 것을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기존에는 신의 관점에서 평면적인 시각과 설명적이고 강압적인 레이아웃이 지배적이었던 반면, 르네상스 시대에 오면서부터 인간의 눈으로 실제 보이는 것과 똑같이 표현하는 원근법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내가 서 있고 바라보는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 되고, 나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본 것이다. 이 원근법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원근법은 단지 미술에서의 하나의 기법적 사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철학·사회·역사적인 시각의 전환이 표출된 방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유산의 현대적 활용은 위 사례들 이외에도 무수하게 발견되어질 수 있다. 이는 단지 시각적 이미지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사회·문화·문학·예술적 분야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로맨틱(Romantic)하다’는 말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로만(Roman)’을 지칭한다. 즉 당시의 ‘창조적‘, '독창적', '낭만적’ 등의 의미를 담아 ‘로마스럽다’라고 표현한 의미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로맨틱하다’라는 단어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도 모르게 흔히 쓰는 단어에서까지 고대의 문화가 그대로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잘 활용해 우리도 ‘로맨틱’한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줍시다!”

이준희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 jazz@kookmin.ac.kr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School of Visual Arts 대학원 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모건스탠리 등 아트디렉터. 타임·뉴욕타임스·LA타임스·마이크로소프트·아시아나항공·동아일보·한겨레21 등 일러스트레이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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