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2 : off the record - 응답하라 2013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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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f the record
응답하라 2013

2013년에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능력의 스마트 기기들과 미디어 광고들이 얼마나 쏟아질지도 궁금하고, 새 대통령의 새 그릇에 밥과 반찬이 어떻게 담길지, 내 친구 서희에게 남자친구가 언제 생길지도 궁금하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에게 2013년이 기분 좋은 응답을 해주기를 기원한다.

 

드디어 <응답하라 1997>을 봤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나의 페북과 카톡은 거의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던 나는 도저히 단 한 마디도 대화에 낄 수 없을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다. 바쁘기도 했거니와, 글쎄 뭔가 과거를 회상하며 ‘아, 나도 저랬지…’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지금의 각박함이, 치열함마저 순수했던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을 바라보기엔 너무 버거워서였을까? 하지만 결국은 봐버렸다.
후배 카피라이터가 살포시 넘겨준 USB가 집 컴퓨터에 꽂히는 순간, 45분짜리 16편을 1초도 쉬지 않고 흡입해 버리고는 난 내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던 1997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의 1997
1997년에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사회에 나가서 당당히 내 잠재력을 뿜어대기엔 학사학위로는 모자라다는 생각이었다. 그땐 그랬다. 사실 대학 4년 내내 나는 정말 ‘잘’ 놀았다. 너바나(Nirvana)와 서태지를 들으며 대학입시 준비를 했던 터라 그런지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자마자 정말 공부 ‘외’의 것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신세대·X세대·오렌지족이라는 단어들이 끈질기게 우리세대를 수식했고, 우리는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마음껏 개성을 내질렀다. 세상의 모든 것과 ‘신인류의 사랑’을 하며 하루하루가 가는 것이 아쉬워‘ 이 밤의 끝을 잡고’ 내달렸다.
하지만 ‘굴레를 벗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세대는 그냥 신세대로 명명된 것이 아니니까. 방학이 되면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를 하러 밖으로 나가거나, 세상에 이런 아르바이트도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재미난 일들을 찾아 일도 하고, 소위 ‘인턴십’이라는 것이 붐을 일으키는 시점이었기에 많은 학생들이 미리 사회를 체험해보기도 했다. 나 또한 영어공부를 틈틈이 한 것, 'C’ 광고회사에서 대학생 인턴십을 한 것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은 흘렀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자 뭔가가 턱없이 부족했다. 과연 내가 사회인이 되기에 적합한가를 심각하게 묻기 시작했다. 아직도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도서관과 노래방, 자취방과 과방을 왔다갔다할 시기인 것 같은데(사실 아직도 그렇다), 정장에 하이힐을 신을 자신이 없었다. 94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삶을 마감하며 쓴 “기억하라. 점점 희미해져 가느니 타올라버리는 삶이 낫다는 것을”이라는 문구에 심장을 찔려 삶을 태워버릴 만한 꺼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수많은 영혼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이 머리 크기 가지고 어디 사회라는 곳에 나가서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고, 아직도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모두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응답이!
그리하여 시작된 1997년에 나는 미셸 푸코와 움베르트 에코를 만났다. 나는 이 둘을 나의 ‘위대한 코브라더스’라고 부르는데, 내 생각이라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이자 학자들이고, 내가 정말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멘토들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이 오기 직전까지 난 위대한 코브라더스의 작품들을 읽고 논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점을 탄탄하고 심도 있게 구축해갔다. 그리고 프랑스 68혁명을 마음껏 미화하는 수많은 역사가들과 교수님들도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90년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60〜70년대를 그리워하고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담론들이 꽤 존재했다. 지금의 우리가 90년대를 그리워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때 또한 모든 것이 과도기였던 현실을 부정하고 비판하며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20여 년 전에서 찾으려 한 거센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인간은 원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이니까. 미래는 실체가 없으니 꿈꾸기만을 하다가, 실체가 잡히는 과거를 기억에서 불러내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으로 삼는다.
올해 거의 모든 국제영화제 각본상에 빛나는 우디 알렌(Woody Allan)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도 모든 시대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황금기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응답하라’다. 90년대는 거기 그렇게, 2012년은 여기 이렇게 있는 채로 필요할 땐 불러내서 대화하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미래의 세대들에게 환상적인 과거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2012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늘 하는 얘기지만 정말 올해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동시에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와중에 눈에 좀 띄는 건, 조용히 묻혀 살던 90년대 중반 학번 세대들의 무수한 사연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 다시 한 번 시대의 중심이 된 듯해 우리끼리 기분이 좋았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내년에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능력의 스마트 기기들과 그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 광고들이 얼마나 쏟아질지도 궁금하고, 새 대통령의 새 그릇에 밥과 반찬이 어떻게 담길지도 궁금하다. K-pop의 기세는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하고, 내 친구 서희에게 남자친구가 언제 생길 것인지도 궁금하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 한 해 마무리 잘 해서 소고기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와 소원에 2013년이 기분 좋은 응답을 해주기를 기원한다.

조성은 ACD | chocopy@hsad.co.kr

 

매력적인 오답에서 예기치 못한 정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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