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2 : M세대 리포트 - 코스프레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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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냐고? 느껴보지 않고는 묻지마!
 
 
 코스프레
 
이 희 인 대리 | CR1본부
hilee@lgad.lg.co.kr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수상한 일들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8월 부산, <파이널 판타지 8>의 전사들 대거 출몰. 9월 대구, <베르세르크>의 가츠, 자신의 키보다 큰 장검을 들고 활보하다.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유령 가오나시 출현. 같은 장소, 일본 TV 애니메이션 <디지 캐럿>의 삐요코와 데지코 출현.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들이 급작스럽게 출몰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대로 방관하고만 있을 텐가!
이들이 실은 코스프레, 즉 ‘만화 분장’, ‘옷을 입고 즐기는 문화’ 등으로 해석되는 독특한 문화의 향유자란 사실을 이제 웬만한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코스프레가 ‘custume(의상) + play(행위, 연극)’의 합성어인 코스튬 플레이의 일본식 압축 조어란 사실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멀게는 미국·유럽 등의 가장무도회나 핼러윈(Halloween) 데이, 70년대 글램록 등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가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으로 유입, TV애니메이션 붐에 힘입어 생겨났다는 사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전파되었으며 해마다 그 인기가 상승하여 저변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일부에서는 코스프레를 우리의 자생적인 문화로 보고 일본식 조어인 ‘코스프레’ 대신 ‘코스 플레이’ 등의 용어를 대체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19, 20일 이틀간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에서 열린 제26회 코믹월드는 코스프레의 현주소를 실감케 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한산한 토요일 오전 분위기와는 달리, 오후로 접어들며 행사장 주변은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학생들과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한 플레이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돔 형태의 행사장 안에서 아마추어 만화 동아리들이 창작만화와 캐릭터 상품 등을 판매하는 동안, 행사장 밖에서는 여의도 빌딩 숲을 배경으로 자신이 공들여 만든 캐릭터를 뽐내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혈혈단신으로 참가한 개인 플레이어부터, 두세 명씩 짝을 짓거나 많게는 8~10여 명씩 그룹을 만들어 만화나 게임 전체의 캐릭터를 연출하는 팀도 있다. 바느질 솜씨도 흠잡을 데 없고, 들고 있는 소품도 어느 것 하나 대충대충이 없다. 의상뿐 아니라 카메라 앞에 자신만만하게 펼쳐 보이는 포즈도 만화나 영화, 게임에서 그 캐릭터가 곧잘 취했을 법한 포즈 바로 그것! 휘황찬란한 의상을 입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한 그들의 모습에서 스타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과 우쭐함까지 엿보인다.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는 방법도 가지각색. 플레이어 대부분이 집에서 재봉틀로 손수 만드는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근래에는 코스프레 소품대여 전문점, 코스프레 전문의상실 등이 동대문, 홍대 부근에 생겨 외주제작 형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의상을 원하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멋진 변신을 위해 드는 비용은 대략 어느 정도일까? 필자가 직접 취재한 플레이어들의 경우, 국산만화 <선녀강림>의 캐릭터를 천을 끊어다 집에서 직접 만드는 데 든 비용이 4만 5,000원, <아스피린> 의 파이페이 5만원, <디지 캐럿>의 삐요코 7만원, 데지코 9만원, <파이널 판타지 10> 유나의 경우 10만원 이상 등 천차만별인데, 2~3만원 비용만으로도 훌륭하게 변신에 성공한 플레이어도 있다. 그런 가격을 떠나 모두 “저런 부츠를 어디서 구했을까?” “저 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우왓! 저 옷은 영화에서나 본 것!”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캐릭터의 특징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가히 초인적이란 생각까지 든다.
 
행사장 안팎을 기웃거리며 관찰해 본 결과, 코스프레 참가자들은 대개 세 부류로 나뉘는 듯싶다. 간단한 캐릭터 모자나 액세서리 등을 하고 행사의 분위기를 즐기는 소극적 참가자들, 완벽한 의상과 캐릭터의 외모를 재현하여 카메라 앞에 자신있게 포즈를 취하는 디스플레이 중심의 플레이어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영화·게임의 특정 장면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퍼포먼스 중심의 플레이어까지. 특히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무대 위에서 멋진 액션과 안무, 한편의 훌륭한 연극을 펼쳐 보이는 코스프레 퍼포먼스는 코스프레를 거의 예술적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찬사를 듣기에 모자람이 없다.
사실 초창기인 90년대 중반만 해도 코스프레는 특별한 공식무대나 대회없이 소수의 동호인끼리 모여 자족하며 즐기는, 소위 매니아 혹은 일본말로 오타쿠 문화의 전형적인 성향을 띄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과 PC통신을 통해 수많은 동호회·동아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넓혀갔다.
이러한 코스프레가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이벤트·축제 등의 단골 프로그램으로 등장하고 있다. 대학축제나 중·고등학생을 겨냥한 이벤트는 물론 공공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까지 코스프레가 기획되는 것은 코스프레의 대중적 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한마디로 매니아나 오타쿠의 품을 떠나 이제 어디에나 초대받는 스케줄 바쁜 대중스타가 된 것이다.
 
처음 원고를 의뢰받았을 때, 내가 코스프레에 대해 쓴다는 것은 마치 ‘넥타이’가 찢어진 ‘청바지’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잘 모르는 것들에 관해 무엇을 쓰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그러한 부담감으로 시작해 자료와 인터넷을 뒤지고, 급기야 직접 현장을 취재하면서 처음 가졌던 부담감은 차츰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코스프레는 그다지 엽기적이거나 비정상적인 문화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야구, 축구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걸 좋아하느냐고 따지지 않듯이’ 코스프레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문화였다. 문화는 향유자 입장에서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왜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닐진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자 하는 연극적인 본능, 캐릭터를 먹고 자란 세대만의 독특한 감수성, 거기다 의상, 액션 등을 직접 만들고 준비하는 장인적인 즐거움, 카메라 앞에 자신의 작품을 당당히 뽐내는 스타 의식까지, 코스프레는 꽤 자발적이면서 매력적인 청소년들의 문화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코스프레를 취재했던 기자들이 흔히 기사 말미에 남겼던 말, 나도 그 말로 감히 글을 맺고 싶어진다.
“아아… 나도 해보고 싶다… 코스프레…”

Posted by HSAD